우리집 베란다엔 고추 다섯 포기가 있다.
이미 고추 모종이 시장에서 사라진 후
장샘이 씨앗을 구해 새로 싹을 틔어보내신 놈들인데
친절하신 장샘은 이 놈들이 먹고 자랄 양식(퇴비)까지 함께 보내주셨다.
고추란 놈은 워낙 크게 자란다. 때문에 큰 화분에 한 놈씩 심어야 하건만,
기존의 화초 때문에 자리가 없어 큰 화분 3개에 다섯 놈을 나눠 심었다.
그러니까 넓은 방엔 두 놈씩 , 둥근 분엔 하나 씩.
화분 흙은 일부는 화원에서 사온 인조 흙,
일부는 남편을 시켜 펴온 동네 흙.
균등하게 퇴비를 섞는다고 했건만
분에 따라 배분이 달라졌던 모양이다.
처음엔 똑 같았던 놈들이 차차 성장 속도가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A분엔 퇴비가 많이 들어 갔나 어느 날 아침에 보니 고추 잎새들이
해바라기 잎새처럼 벌어져 있었다.
B 분엔 한쪽으로 모래 흙이 많이 섞였는데, 그래선가 한 놈이 영 부진하기만 했다.
둥근 분에서 독방을 쓰는 놈은 평균치로 자라났다.
그러니까 자이안트 셋에 비실이 한 놈, 그리고 평균치 한 놈.
지난번 순천에 다녀왔더니, 이변이 일어났다.
땡볕 속에 며칠 물을 못 먹어선가 위세를 자랑하던
자이안트들은 잎새를 떨구고 남아 있는 잎새는 모두 오그라져 있는 거였다.
이 넘들이 살려고 잎새를 떨구었던 모양이다. 물이 부족하니
큰 잎새를 달고 있는게 부담되었겠지.'
한데 놀랍게도 난장이는 조금도 손상 없이 그래도 있는 게 아닌가.
그 놈은 잎새가 적고 키고 작아 물이 없어도 견뎌내기가 수월했던 모양이다.
그 이후론 꼴찌가 1등 되고, 1등은 꼴지 되어 자라고 있다.
물을 주고 격려해도 자이안트들은 무슨 병이 들었나
잎새들이 영 기를 못 피고 있다.
그나마 꽃을 먼저 피워 먼저 고추를 달았던 명백을 겨우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아침에 나가 보니 부실한 잎새에 아기 고추만한 열매 둘을 달고 있었다.
알 수 없는건 사람팔자만이 아닌가 보다.
꼴찌는 아직 열매를 못 달고 있으나, 씽씽하게 자라고 있는 걸로 보아
가장 많은 열매를 안겨줄 것 같다.
<아기 고추만한 열매를 달고 있는 자이언트.
잎새는 거의 떨어지고 누렇게 떠 있어 그 위상이 가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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