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중에 3박4일 순천 여행을 마치고 왔다.
그야말로 뜨겁디 뜨거운 여행이었다.
대녀가 사는 순천엘 가면 늘 그 주변을 돌고 오게되는데,
언제나 그랬듯 어디를 가겠다고 작정하고 가는 건 아니다.
그저 그때 그때 순천 대녀가 이끄는대로 따라갈 뿐.
이번엔 곡성, 무안, 목포 등지를 돌고 왔는데,
무안의 박인수 훈장님을 만난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내게 있어 여행의 기쁨이란, 발 딯는 곳의 풍광을 즐김과
그 고장의 음식을 맛보며 그 풍광속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있는데,
이번엔 그 세 가지를 다 만족하고 온 셈이다.
34도를 웃도는 찜통의 더위속에서도 이런 즐거움이 있어
복중 여행이 그리 괴롭지만은 않았다.
박인수 선생,
내년이면 환갑을 맞는다는 그분은 가정을 떠난 가출인(자유인)이자,
대단한 유머 감각과 심미안을 갖춘 예술인으로 보였다.
게다가 서당을 열어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도 하고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랴.
출가를 했으되, 가정을 방치한 무책임한 가장도 아닌 듯 했다.
인천엔 선녀처럼 아름다운(사진을 보니 정말 아름다웠다) 부인과
장성한 두 아들이 유복한(나의 추측) 집안을 지키고 있단다.
원주의 장선생님 서구적 이미지의 자유인이라면
무안의 박 인수 선생님은 토속적 자유인.
토방에서 상투 틀고, 모시 한복에 쪽물 들인 두루마기에 삿갓 쓰고 합죽선 손에 든
선생의 모습은 영락없는 한량이자 가장 사치로운 남성이었다.
모든 걸 자신이 해결하며 산다니 썩 괜찮은(?) 한량인 듯 싶다.
십여년 전 다 쓰러져가는 폐가를 구입하여 선생의 손길로 하나하나
손보고 지었다는 월선서당이 아름답기에 한 마디 하자,
올가을엔 지붕을 갈대로 덮어 더 운치있게 만들어 놓고
입장료를 받아야겠다며 선생은 웃는다.
'비오는 날 오후 3시'를 좋아한다는 그분은 월선리 예술인 마을을 개척한
1호 이기도 하다.
<구 곡성역에서>
곡성역은 드라마 '토지'를 비롯해 태극기 휘날리며 등
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찰영지로 부상했단다.
<무안의 박인수 선생님>
내게 줄 부채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화조가 그려진 부채에 김용택 시인의 싯귀를 적어주셨다.
<에어컨이 있는 서당>
방바닥 밑에 웬 구멍인가 했더니 선생은 '에어컨'이라며,
너희가 발가락 새로 부는 바람 맛을 아느뇨? 한다.
아닌게 아니라 34도의 땡 볕 속에서도 서당의 방은 시원했다.
에어컨 밖으론 채송화가 만발 했는데, 여간 아름다운 게 아니었다.
선생의 서당은 군데군데가 작품 처럼 보인다..
<재래식 뒷간>
재를 덮어 냄새가 별로 안나는 이 뒷깐은 여느 재래식 그것과 많이 달랐다.
우선 분뇨 구덩이가 작고 얕다는 것. 소변을 보면 어디론가 새어버리고.
큰 것을 볼 땐 재로 덮어 냄새와 파리의 출산을 막는다.
바로 옆엔 개집이 있다.
이 개의 이름은 '당구'
풀이하면 서당개란 뜻이란다.
현재 6살인 당구의 나이는 영원한 2년 7개월인데,
방문객들이 당구에게 풍월 읊어보라 할까봐 그렇다나.
선생은 이 개가 여의 개와는 품격이 아주 다르단다.
서당개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올망졸망한 강쥐들이 쥑여주게 이뻤다.
내가 볼일을 보려 하는데 글쎄 요넘들이 발을 들치고 들어와
내 발을 핥아대는게 아닌가.
넘 이뻐서 난 그만 뒷깐에서 까무라치는 줄 알았다.>
<서당 대문깐의 대나무와 돌확. >
<'스카이 라운지'라고 불리우는 부엌의 장미 한송이>
<흙벽에 유리창을 만들어 놓고 창가엔 작은 분을 올려 놓았다.
해병대 출신이라는 분의 심미안이 여간 섬세한 게 아니었다>
<선생이 지었다는 월선리 마을의 정자>
의관을 갖춘 그 분과 민소매에 맨발의 내 막가파적 차림이 넘 대조적이다.
그 분을 뵙고, 맨발로 찾아와 곤혹스럽다 하자, 발은 보지 않겠다며 웃으셨다.
하기사 그 분을 만나는 건 예정이 없었으니 어쩌랴.
<정갈하게 걸어 놓은 대님들>
<술잔과 찻잔으로 그득찬 스카이(?) 라운지 >
밥상 위의 장미 한 송이가 그분의 감각적 센스와 사치로움을 엿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