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에 출근(알바)을 하는데, 서울역 건너편 연세 빌딩 근처 나무 아래
웬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모자만 검은 게 아니라 옷도 온통 검은색이었다.
나이는 40 후반쯤 되었을까.
체구는 다소 마르고 품위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이
결코 거리를 떠돌 사람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허탈+자조+달관+무심+ 지성+여유+냉소를 적당히 합한 듯한
매우 복합적인 표정을 담고 있었다.
그래선가 주변의 노숙자들과 확연히 달라보였다.
내가 눈치껏 그를 관찰한 것은
그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주 잠시 그를 머릿속에 담았으나 곧 잊었다.
물론 하루 종일 잊었다.
퇴근 무렵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훅~ 하고 더운 공기가 나를 휘감는다.
진종일 냉방된 사무실에서 지냈더니 그 더위가 한겨울에 온탕에 들어간 듯한
안온함을 안겨주었다.
나는 잠시 그 더위를 온몸으로 맞으며 몸을 뎁혔다.
지하철 역으로 가기 위해 코너를 돌 무렵이었다.
빌딩 옆 나무 그늘에는 아침 보다 더 많은 노숙자들이 누워 있었다.
그제야 '검은 모자'가 생각나서 그 남자를 찾았다.
있으리란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한데 그는 아침에 앉아 있던 그 자리에 그 포즈로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그 나무가 자기 집이라도 되는 듯,
자기 방이라도 되는 듯,
자기 의자라도 되는 듯.
그래선가 그는 본디부터 그 나무아래 설치해 놓은 조각품 처럼 보였다.
다른 이들은 더위를 못 견디고 모두 웃옷을 훌러덩 벗고 누워 있었지만,
그는 팔이 긴 셔츠를 입고 아침과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마치 더위조차도 빈정거리고 있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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