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K 신부님 메일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더러 문장이 끊기는(신부님은 중풍 후유증으로 문자를 쓰는 기능이
퇴화되었다) 신부님의 편지는 이런 내용이었다.
<애나 고생한 이야기 읽고 나니 울고 싶었다.
애나 화이팅. 애나 회이팅. 애나 화이팅.
미사 드리며 애나의 모든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
애나를 사랑하는 매께비가>
*신부님의 메일은 처음보다 많이 나아지셨다.
처음엔 도무지 글을 해석하기가 힘들었다.
계속 메일을 주고 받으면 문자 감각이 살아나지 않을까.
'메께비'는 황해도 사투리로 메뚜기를 뜻한다는데,
신학교 시절 농구 선수를 하며 메뚜기 같이 잘 뛴다고 불려진 별명이란다.
지난번 예산에 다녀온 이후 신부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메일을 보내주셨다.
나는 빠짐없이 답신을 보내드리다가도, 이사 후유증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때에는 두어번 거르기도 하였다.
그럴 때 마다 신부님은 '화이팅 애나'를 연발하셨다.
인터넷 중증 중독자인 내가 이사 후 손가락 놀리는 게 이렇게 힘들어진 건
그동안 내가 여러 문제로 몹시 지쳐있었음을 반증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화곡동에서의 2년 세월은 정말 죽음처럼 힘들었다.
이제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게다가 이사까지 하고 나니 모든 피로가
나를 한꺼번에 에워싸며 무력하게 만드는 것 같다.
사흘 전 나는 신부님께 메일을 쓰며 화곡동에서의 2년 세월을 요약해서 말씀드렸다.
내가 왜 등산을 하게 되었는지도 말씀드렸다.
그에 대한 답신이 어제의 메일이었다.
미사 중에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해주신다니
예수님의 털끝을 만져본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른다.
고마운 신부님.
그분처럼 나와 내 가족(남편)을 잘 아는 분도 드물 것이다.
이제 남은 건,무려 13년 동안이나 고해성사를 보지 않은 사연을 말씀드리며
신부님께 이메일 고해성사를 보는 일이다.
이메일 고해성사. 교회법에 이런 건 없다.
혹자는 이런 나를 비난할는지 모른다.
허나 신부님께서 일단 허락하셨다.
망서려지는 건 그 분이 나를 생각하는 감정이 각별하시어
객관적인 판단을 못하시면 어쩌나 하는 거지만,
그 문제까지 하느님께 맡겨드리겠다.
그 옛날, 고해성사로 내 오랜 냉담의 깊은 아픔을 치유해주신 신부님,
회이팅 애나. 정말 감사합니다.
힘 낼게요,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