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산 아래 어리석은 사람 하나가 살았다. 말씨는 어눌하고, 성품은 졸렬하고 게을러 세상 일을 알지 못하였으며, 바둑이나 장기 같은 잡기는 더더욱 알지 못하였다. 남들이 욕을 하여도 변명하지 않았고, 칭찬을 하여도 잘난 척하지 않았으며, 오직 책 보는 일만을 즐거움으로 삼았기에 춥거나 덥거나 배고프거나 병드는 것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하루도 선인들의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그의 방은 매우 작았지만 그래도 동, 서, 남쪽 삼면에 창이 있어, 동에서 서쪽으로 해 가는 방향을 따라 빛을 받아가며 책을 읽었다. 행여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책을 대하게 되면 번번이 기뻐서 웃고는 했기에, 집안 사람들 누구나 그가 웃는 모습을 보면 기이한 책을 얻은 줄 알았다.
특히 두보의 오언율시를 좋아하던 그는 골똘히 시를 생각할 때면 앓는 사람처럼 읊조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심오한 뜻을 깨치기라도 하면 매우 기뻐하며 일어나 이리저리 왔가갔다하기도 하였는데, 그 소리가 마치 갈가마귀가 우짖는 듯하였다. 때로는 조용히 아무 소리 없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하다가, 때로는 꿈꾸는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책에 미친 바보’ 라 불렀지만 그 또한 기쁘게 받아들였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전기(傳記)를 지어주는 이가 없기에 붓을 들어 그 일을 쓰고는 <간서치전(看書痴傳)> 이라 하였다. 그의 이름과 성은 기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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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슬픔이 밀려와 사방을 둘러봐도 막막하기만 할 때에는 그저 땅을 뚫고 들어가고 싶을 뿐,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두 눈이 있고 글자를 알기에 한 권의 책을 들고 마음을 위로하면, 잠시 뒤에는 억눌리고 무너졌던 마음이 조금 진정된다. 내 눈이 제아무리 다섯 색깔을 구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책에 대해서는 깜깜한 밤과 같다면 장차 어디에 마음을 쓰겠는가?
선비가 한가로이 지내며 이렇다 할 일도 없을 때 책을 읽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작게는 정신없이 잠자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게 되고, 크게는 남을 비방하거나 돈벌이와 여색에 힘쓰게 된다. 아아! 그러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책을 읽을 수밖에.
만약 덥지도 춥지도 않고 배고프지도 배부르지도 않고 몸도 건강하고 마음도 평화롭다면, 붉은 등불이 창을 환히 밝히고 책들은 잘 정리되어 있으며 책상과자리가 깨끗하다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뜻이 높고 재주가 뛰어나며 아울러 나이도 젊고 기운도 건장한 사람이라면 책을 읽지 않고 그 무엇을 하겠는가? 무릇 나와 뜻이 같은 사람은 책을 읽는 데 힘쓰고 또 힘쓸지어다.
내가 만일 사시사철 공양할 것이 있어서 늙은 부모님들을 굶주리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과거 공부를 일삼겠는가? 어찌 내가 도를 행하고, 어찌 내가 백성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단지 밥만 먹을 줄 알고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일 따름이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내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서 하늘의 이치를 잊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비록 세상물정에 어둡다 하더라도 열세 개의 경서와 22대 역사책을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조정에 나아가 임금의 계책을 돕지 못한다면, 초가집에 웅크리고 앉아 13경주소(十三經注疏)의 같음과 다름을 살피고, 21사(二十一史)에 실린 기전(紀傳)의 잘잘못을 평론함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 두 끼 밥을 먹는 것도 부끄러울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마음을 닦고 성정을 기르는 것보다는 못하다.
최근 하루 일과로 책을 읽으면서 네 가지 유익한 점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것은 지식을 넓히고 깊게 알아서 옛 일에 통달하고 뜻과 재주에 도움이 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첫째, 조금 배고플 때 책을 읽으면 소리가 두 배로 낭랑해져서 책 속에 담긴 이치와 취지를 잘 맛보게 되니 배고픔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둘째, 조금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몸 안으로 흘러 들어와 편안해져 추위도 잊을 수 있게 된다.
셋째, 근심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은 글자와 함께 하나가 되고 마음은 이치와 더불어 모이게 되니, 천만 가지 생각이 일시에 사라져버린다.
넷째, 기침이 심할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통하여 막히는 것이 없게 되니 기침 소리가 순식간에 그쳐버린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예절에 관한 책을 읽으면,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멈추는 행동에서 도리에 어긋난 점을 절로 깨닫게 되니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의학에 관한 책을 읽으면, 한 번 주리고 한 번 배부른 일에서 위태롭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되니 번민하는 마음이 생긴다. 법률에 관한 책을 읽으면, 한 번 처리하고 한 번 시행하는 것이 법에 어긋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뉘우치고 후회하는 마음이 든다. 문자에 관한 책을 읽으면 한 획 한 점이 어긋나고 비뚤어진 것을 깨닫게 되니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솟는다. 이때는 세상에서 잘못 살았다는 탄식이 저절로 솟아나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무릇 유령(劉伶)과 완적(阮籍), 혜강과 왕융(王戎) 같은 이들은 스스로 이런 데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이것들을 외물(外物)이라 지목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욕심 없는 마음 때문에 세속의 더러운 것들과는 확실히 구별되었다. 만일, 이러한 성품을 가지고 욕심을 부렸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였겠는가.
출 처 : <책에 미친 바보> 지은이 이덕무 / 편역 권정원
윗 글 : 이덕무, 책에 미친 바보, 영처문고(嬰處文稿) 中
1761년 이덕무가 책읽기를 좋아하는 자신에 대해 직접 쓴 글
아랫글 : 이덕무,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선귤당농소. 이목구심서 中
-- 이덕무 : 1741년 출생, 일생동안 책을 읽는 일에 전념, 평생 읽은 책이 이만 권이 넘고 스스로 베껴
둔 책도 수백 권, 39세에 규장각 검서관, 41세에 적성 현감, 서자의 아들로 태어난 신분 제약으
로 가난이 늘 함께 했고 내성적이었으며 세속적인 영화 보다 내면적 가치와 행복을 추구하고자
노력, 관직에 있을 때는 근검과 청렴으로 충실히 일하는 훌륭한 관리로서의 자세를 보여 주다,
1793년 독감으로 일생을 마치다, 그가 남긴 방대한 저술은 <청장관전서>에 담겨 있다.
자료:안개의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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