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스크랩] 청광 걷기(밤나무골~~~~~~~~광교산-비로봉-형제봉-경기대)

tlsdkssk 2006. 5. 1. 06:26

 길지 않은 내 산행 역사에 드디어 한 획이 그어졌다.

그 이름만 들어도 겁나고 설레던 청광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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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쳐가는 지점만 해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만큼 장거리 코스인 청광 걷기는

작년 11월 서울 산행에서 이미 한 차례 시도한 바 있었으나,

그 때는 사정이 생겨 참석 하지 못했다.

이번엔 몸이 안좋아 그냥 넘기려다, 산우 로이님이 중도 하산한다기에

그것만 믿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기존 회원들 말고도 새로운 얼굴들이 세분이나 보여선지, 출발 전 부터 어떤  든든한

기를 느낄 수 있었다. 참석 인원은 15명.

 

나는 지난 제주도 여행에서 입은 무릎 부상 상처가 완전치 않아 내게 누누히 타일렀다.

'절대 끝까지 가지 않는 거야. 로이님 내려올 때 함께 하산하는  거야.'

몸이 성치 않아선가 초입부터 힘이 들었다.

춘록으로 가득한 숲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지레 내려왔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반들반들 빛나는 연초록 잎새들은  그 신선한 생명의 빛으로

내 가슴을 싱그럽게 물들이며 발길을 밀어주었다.

좀더 가자, 좀더 올라가자. 이 시기가 지나면 산은 또 다른 빛으로 변해 있을 게 아닌가.

 

늘 느끼는 거지만,  푸르른 초목을 바라볼 때면 조물주(자연의 섭리라고 해도 좋다)의

심미안에 감탄을 하게 된다. 만약 초목이 노랗거나 빨갛거나 그외의 빛깔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새로 단장한 숲의 향기에 매혹되어 나는 힘든 걸음을 게속 놀렸다.

듬성듬성 남아 있는 분홍빛 진달래와 푸른 숲을 드문드문 수놓고 있는 산벚꽃의 색상이 대비되면서

춘록의 잎새들은 더욱 매혹적으로 내 시선을 잡아 끈다.

"으랏차차, 으랏차차~~"

처음 나온 나그네님의 구호가 이따금씩 추임새를 넣으며 빙긋 웃음을 짓게 만든다.

 

산을 오를 땐 몹시도 허기가 느껴져 빨리 점심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지만,

정작 도시락을 펼치니 밥알이 모래알처럼 깔끄럽다.

구겨 넣듯 몇 술 뜨곤 결국 밥을 남기고 말았다.

삿갓님이 건내주는 포도알이 깔끄런 입안을 달콤하게 축여주며 일순 기운을 솟게 한다.

나는 심란하여 대장님께 물었다.

"이제 절반 쯤 온 건가요?"

로이님을 따라 내려갈거라면서 이런 질문을 하는 저의엔,

몸이 힘들면서도 끝까지 마치고 싶은 투지가 생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나는 중도 하산을 포기한채, 대장님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평지만 나오면 내 다리는 고성능 엔진이 들러붙는지 씽싱 잘도 달린다.

그러다 비탈만 나오면 내 몸은 폐차 일보 직전의 고물이 되고 만다.

대장님 뒤를 따르던 나는 어느 새 뒤로 쳐졌지만 그래도 오전 보다는 몸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내 뒤를 말없이 따라오는 순돌님과 이따금씩 건네는 대화가 감칠맛이 난다.

헌데 그는 어째 다리가 불편해 보인다.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아니 그럴 필요가 있을까.

속으로 순돌님 걱정을 하며 걷는다. 결국 순돌님도 중도 탈출을 하였다.

회원 두명이 중도 하산했지만, 길을 잘 모른다는 여성 두명이 계속 우리와 산행을

함께 하게 되어 우리 일행은 어느때 보다도 줄이 길었다.

 

 

경기대가 가까워 올 무렵 나의  걷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다면

다소 놀라웠으리라.

'드디어 해 냈다,  다 끝나간다.'

가슴에서 알지 못할 힘이 솟구치며 나는 고속으로 씽씽 전진을 했다.

그때의 기분대로라면 스키어처럼 내달릴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내 남은 힘을 다해 앞으로 앞으로 내달았다.

미리 내려가 기다리고 있던 목돌님이

"와 ~ 애나 형!" 하기에 나는 손가락으로 V를 해보였다.

그리곤 그로기 상태가 되어 저녁을 먹는데, 점심때처럼 밥알이 넘어가지 않는다.

처음 만난 아리아리님이 바로 앞에  있건만, 접대용 멘트조차 잘 나오질 않는다.

늘 만물상처럼 우리 회원을 챙겨주는 목돌님을 보면서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다.

 

사당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니 내 코로 내몸의 땀냄새가 물씬하다.

같은 악취리도 남의 냄새는 더 견디기 힘든 법

옆에 앉은 승객이 냄새 때문인가 차창을 조금 열어 놓는다.

몹시 미안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오늘 처음 나온 아리아리님은 어찌나 잽싼지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식당에서 눈치껏 세수와 머리 감기를 다 끝냈지만, 여자들은 입장이 다르지 않은가.

나는 혼자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미안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해냈어요. 그러니 조금만 참아 주세요.

허지만 두 번 다시 하라면 결코 못할 것 같아요.

청광 걷기, 한번으로 족해요. 절대, 절대 족해요.'

 

청광 걷기. 그야말로 지옥 훈련이었다.

허지만 그게 지옥이었을까?

아니다. 지옥이었다면 두번이나 있었던 탈출 기회에 내가 왜 탈출하지 않았겠는가.

번번이 느끼는 거지만, 등산이란 지옥같은 천국을 맛보는 체험이다.

출처 : 청광 걷기(밤나무골~~~~~~~~광교산-비로봉-형제봉-경기대)
글쓴이 : 애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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