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 행사처럼 봄앓이를 한다.
대개는 이른 봄에 시작된다.
식욕이 없는 건 기본이요,
그와 더불어 모든 욕망은 하향곡선을 그리며
그가 비껴난 자리엔 침울하고도
칙칙한 의식들이 대신 들어 앉는다.
사흘 전 나는 몹시도 힘들었다.
창작의 영감은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지고,
뭔가를, 누군가를 사랑하고픈 열망과 환상도 지워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만이
내 정신을 잔혹하게 졸라대었다.
이럴 땐 차라리 흐린 날이 낫다.
햇볕이 찬란할수록 기분은
반비례하고 마니까.
봄이 올 무렵엔 늘 그랬었다는
익숙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면
나는 얼마나 더 당혹스러웠을까.
조금만 더 기다리자.
봄꽃이 만개하면
이 어찔한 증상은
사라지고 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