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다빈치 코드'가 드뎌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을 앞두고 있는 모양이다.
그 소설은 애당초 영화를 목적으로 썻다는 느낌이 들만큼,
서술이 영상적이라 나는 문자를 읽어나간다기 보다
줄곧 헐리웃 영화를 감상하듯 읽어나갔다.
그 소설의 줄거리를 단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예수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데 그것이 단순한 작가의 상상만이 아닌
종교적 역사적 근거를 조목조목 명시하여
픽션을 이끌어감으로서
독자는 가상과 실제 사이를 오가는 재미와 함께
종교적 카오스에 빠져들게도 된다.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선 그 영화의
상영을 금하는 운동을 벌린다는 모양이다.
나는 좀 별스런 종자인지, 내가 믿는 예수가
여자와 정사도 벌리고 결혼도 했었다는 사실에 그닥
충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실은 도리어 반갑기조차 하다.
예수가 한 여인을 사랑하고 그녀와의 사이에
자식까지 두었다면 그는 적어도 인간의 정욕을 이해하고
부자지간의 끈끈한 애정을 헤아릴 줄 알지 않겠는가.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을 육화된 체험으로 겪어낸 예수는
보다 인간을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인간을 보다 폭넓게
헤아려 구제할 수 있을 것이다.
성모마리아의 동정 여부를 두고 신구교는
지금도 논란을 벌리고 있으나,
성모의 동정 여부와 종교의 본질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나는 지금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예수가 결혼을 했던 아니든
그건 나와 별 상관 없는 일이다.
기실 종교가 해야 할 일은 매우 단순한 것이라고 본다.
인간성을 회복시키며 모든이에게 가급적
행복을 누리게 해주는 것.
구원은 결코 내세적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에수가 결혼했다 하여,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분 말씀이
망실된단 말인가.
다빈치 코드를 보고 예수에게 떨어져 나갈 신자가 있다면
그는 떨어져나가도 좋다고 본다.
아니 어쩌면 그는 이미 떨어져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는 어차피 예수가 가리키는 달(진리)을 본 게 아니라,
예수의 손가락을 보고 있었던 것이기에.
그 손가락이 검든 희든 누렇든 문드러졌든 중요한 건
손가락이 지향하는 하는 달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한기총은 그 영화를 겁낼 게 아니라,
더욱 더 예수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예수장이들의 무서운 사랑의 힘을 보여주면 될 것이다.
태양은 비나 눈이 온다고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