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곳간

내 젊은 날의 라보헴(1)

tlsdkssk 2005. 10. 27. 20:10

푸치니의 오페라 중 <라보헴>을 특히 좋아한다.

<라 보헴>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보헤미안적 생활과

비극적 사랑을 다룬 아름다운 오페라이다.

서정적이며 드라마틱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건

모든 푸치니 오페라가 담고 있는 공통점이나,

내가 특히 라 보헴을 좋아하는 건,  

일찌기 보헤미안을 닮고자 했던

내 젊은 날의 추억이 있기에 그런지 모른다.

'방랑'이나 '짚시'란  단어는 '신' '영웅'이라는 말과 함께

사춘기적 내 가슴을 뒤흔드는

몇 안되는 어휘 중 하나였다.

 

그리하여,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가장 친한 친구 H와

가출을 계획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만 마치면 우리는 세속을 등지고

먼 오지로 떠나 숨어 살 예정이었다.

우린 서로  다짐을 주고 받았다.

"변심하기 없기다."

친구는 한 수 더 떠, 내가 설혹 변심한다 해도

자긴 혼자 떠나고 말거라고 했다.

 

그러나 먼저 떠난 건 나였다.

도망 가방에 십자 고상을  집어 넣으며 기도드렸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인간적으로 망가지지 않게 해주소서.'

동반자가 있었다.( 그 동반자는 결국 내 남편이 되었지만)

집을 나와 1년 동안 객지를 떠돌았다.

때론 굶주렸으며, 때론 친구 H가  옷가지 등을

소포로 조달해주기도 했다.

우리 부모님께는 철통같이 입을 닫은 채.

 

1년  후 서울로 돌아와 이대 입구 빌딩 4층에

세를 얻어 살게 되었다.

40평의 홀을 반으로 갈라, 그 반은 살림집을 만들고,  

작은 부띡을 꾸려, 성악을 하던 남편의 친구와 동업을 하였다.

그 친구도 홀의 일부를 차지하여, 한지붕 두가족으로 살았다.

당시 그 공간은 그야말로 온갖 보헤미안(?)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홍대 미술 학도인 남편 친구의 동생,

김자경 오페라단의 합창단원들,  

약간 데카당스에 빠져 있던 이대 약대생 친구 등이

출입하면서, 그곳에선 오페라 아리아와

독일 가곡과 라쿰파르시타  같은

음악들이 떠날 날이 없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