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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트 갤러리] ‘노래하는 새’ 에디트, ‘그림 그리는 평화’ 프리다

tlsdkssk 2017. 12. 6. 08:00

[아트 갤러리] ‘노래하는 새’ 에디트, ‘그림 그리는 평화’ 프리다

사람이 예술이고 예술이 사람 자체이다. 삶의 기록에 감정을 담으면, 그 글자들이 리듬을 타고 음악으로 표현되며, 손에 리듬을 타면 그림으로 표현된 작품이 된다. 가끔 떠오르지 않은 아이디어로 고민할 때면 나는 나 자신을 그리곤 한다.

나라는 인생을 보여주는 다양한 자화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감이나 느낌의 분위기들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참 매력적이다. 잔잔한 음악과 비 내리는 저녁, 창가에 앉아 친구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눔은 눈물과 웃음이 가득한 예술로 승화되어진다.

프리다 칼로와 에디트 피아프도 그들의 슬픈 인생을 예술을 통해 극복했고, 그 극복의 예술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냈다. 두 여인의 예술은 인생이라는 작품과 같다.


자화상을 많이 그린 프리다 칼로는 뛰어난 외모와 재능이 많지만 불운의 교통사고로 척추와 다리, 자궁을 크게 다쳐 평생에 걸쳐 수술대에 올랐고,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절망에 빠진 나날을 그림으로 승화시켰다. 결혼을 통해 한 남자의 아내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원했지만 남편(디에고 리베라)의 외도와 몇 차례의 유산은 평생을 고독과 외로움으로 점철되게 했다.


특히 리베라와 친동생 크리스티나와의 외도는 프리다 칼로에게 배신이라는 깊은 상처를 안겼다. 결국 이혼 후 홀로 여행하며 방황의 삶을 살았지만 결코 리베라를 정신적으로 떠나 보내지 못했다. 프리다에겐 리베라는 연인이자 동지, 그 이상의 존재였으며 어떤 것으로도 대신 할 수 없는 인생의 동반자였기 때문이다.

1940년대 말 그녀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오른쪽다리를 절단하고 몇 차례의 수술의 실패를 거듭하며 휠체어와 침대 신세를 지고 살았지만 그림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죽기 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일기에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이라고 적었다. 이는 죽음을 오히려 행복한 외출로 받아들이고 삶의 고통과 외로움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에디트 피아프는 ‘노래는 사랑이고 사랑은 노래’라고 말했다. 빈민가 차가운 길바닥에서 방랑곡예사 아버지와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다.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매음굴을 운영하는 친할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아버지와 유랑생활을 하며 노래 동량으로 지냈다. 그녀의 재능을 발굴해준 은인 르프리로 성장하였지만 그의 죽음으로 인해 살해 혐의를 받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이후 작곡가 레이몽 아소가 그녀를 프랑스 국민가수로 성장시켰다.

큰 교통사고, 두 번의 결혼과 이혼, 첫 번째 아이의 사망, 남편의 피살,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남자에게 배신 그리고 ‘마지막 연인’ 권투챔피언 마르셀 세르당은 비행기를 타던 중 추락해 사망했다.


자책감에 칩거하고 삭발, 마약과 알코올중독으로 망가진 몸으로 4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그녀의 대표 곡인 ‘장밋빛 인생’은 이브 몽탕과의 사랑에서 15분만에 탄생했고, ‘사랑의 찬가’는 세르당의 사망 이후 만들어졌으며, ‘난 후회하지 않아요’는 자신의 삶은 투영시킨 곡이다.

 

비록 불행, 비극, 스캔들, 알코올과 마약 중독에 찌든 삶이었지만 노래를 향한 그녀의 진실성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해준다.

 

‘난 후회하지 않아요/삶의 고통도 상처도 지나고 나면 그뿐/나 제대로 살았는걸요’-에디트 피아프

 

<김선아=도다인 아트 컨설던트 대표>

출처 : Aesthetic Life
글쓴이 : 겨울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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