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루이스 부르주아의 조각 '마망(엄마)'
높이가 9m쯤 되는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거미 '마망', 즉 엄마는 가늘고 연약한 발끝으로,
알집에 하얀 거미알을 품은 무거운 몸집을 지탱하고 서 있다. 서울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는 '마망'이다.
<9> 루이스 부르주아의 조각 '마망(엄마)'
높이가 9m쯤 되는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거미 '마망', 즉 엄마는 가늘고 연약한 발끝으로,
알집에 하얀 거미알을 품은 무거운 몸집을 지탱하고 서 있다. 서울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는 '마망'이다.
뉴욕 록펠러센터 앞에 설치되었던 '마망'. '방문객들을 위한 뉴욕시티 가이드'에 실린 사진이다.
내가 갔을 때는 아쉽게도 이 작품은 그 자리에 없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자신의 트라우마(외상)를 작품 속에 정직하고도 대담하게 드러내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나에게 예술은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한 작업이다."
"자아표현은 신성하고 숙명적인 것이다. 나는 현재의 내 조각 작품에서 지난날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말하고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고백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 아버지와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가 오랜 세월 그녀를 지배했고, 그러한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조각이었다. 자신이 겪은 고통의 체험을 돌을 쪼고 나무를 깎는 거친 작업과, 천을 꿰매어 인체를 만드는 부드러운 작업의 양면적 방법을 통해서 스스로 심리적 치료에까지 나아간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거짓 없이 순수하게 드러낸다. 그리고는 그 기억의 공간들을 '밀실연작' 같은 작품 속에서 공격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술은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한 작업
1911년 프랑스의 태피스트리(tapestry·융단) 사업을 하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방탕했으며 어머니는 온화하고 인내심이 강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자기를 끔찍이도 위하던 언니 같은 영어가정교사가 아버지와 한 침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배신과 함께 큰 충격을 받는다. 아버지와 가정교사의 불륜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1932년)까지 1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아버지의 불륜을 묵인했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괴로워했다. 성적으로 문란한 그녀의 언니나 남동생의 새디즘적인 성향도 그녀를 힘들게 했다. 가족들뿐만 아니라 집안 일꾼들의 성행위까지 목격한 어린 그녀의 외상은 깊었다. 그녀는 가족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다.
1938년, 그녀는 결혼과 함께 프랑스를 떠난다. 여성으로서의 자아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정착한다. 뉴욕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그녀의 작업은 무한히 확장되었다.
'20세기 최고의 페미니즘 작가'라고도 하고 '20세기 조각의 거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여성 작가의 작업장이 첼시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갔지만, 막상 뉴욕에 도착해서는 어쩐지 그녀에게로 가는 문턱이 지레 높게만 느껴졌다. 내심 우물쭈물하다가 그만 시간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뉴욕에서 못 만나고 한국에서 찾다
그 대신 조금 손쉬운 방법이 인터넷의 '뉴욕시티가이드'에 소개된 록펠러센터 GE빌딩 앞에 가보는 것이었다. '2001년 6월에 설치된 맨해튼 거리의 조각'에 분명히 '마망(엄마, MAMAN, 1999, 청동 스테인리스스틸 대리석, 927.1×891.5×1천23.6㎝)'과 '새끼거미(SPIDER)'가 나란히 록펠러센터 GE빌딩 앞에 설치된 사진이 실려 있었다. 사진으로만 봐도 이건 대단한 작품이었다. 맨해튼 거리를 지치도록 걸어다니면서 록펠러센터 앞을 지나갔지만 9m가 넘는 그 거대한 청동조각 '마망'과 '스파이더'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모 신문사 기자가 쓴 2008년의 기사에도 '마망'이 록펠러센터 앞에 있다고 나와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뉴욕시티가이드'에는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어쩌면 '마망'이 2001년 6월께 한동안 록펠러센터 잎에 전시되고 난 뒤에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것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어쨌든 뉴욕에서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업장도, 그녀의 작품 '마망'도 만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할 일은 아니다. 간절히 원하면 꼭 길이 열린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은 청동주물로 뜬 똑같은 여섯 작품이 전 세계에 퍼져있다는데, 그중 한 작품이 다행히도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다는 게 아닌가(똑 같은 크기의 마망은 전 세계적으로 6점이 있으며 그중 하나가 리움에 있는 것이다).
나는 주말에 딸아이에게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엄마거미'와 '새끼거미'를 함께 보러가자고 제안했다. 좀 즉흥적이었지만 너무나 멋지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나는 생래적으로 '엄마와 딸'이 있는 풍경에 약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오랫동안 엄마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모성상실이 그 원인일 것이다. 내 유년의 침묵과 우울과 조숙한 포즈들은 모두 모성결핍에서 비롯되었다. 어린 시절의 내 일기장은 엄마의 얼굴을 스케치한 낙서와 원망과 그리움으로 바짝 타버린 내 가슴속의 그림지도였다.
·엄마와 딸이 있는 풍경…기억 속으로
"누군가가 예술가라는 사실은 그가 온전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떠맡을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올해로 100세가 된, 마망, 루이스 부르주아의 말이다. 그녀는 "나에게 예술은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한 작업"이라고 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트라우마는 자신의 작업의 원동력이었고 '모성'은 그녀의 작품 세계를 지배하는 주된 요소였다.
루이스 부르주아에 비하면 '외상'이랄 것도 '작품'이랄 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작가인 나 자신도 그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던 모성결핍의 외상을 온전히 문학을 통해서 치유했다고 믿는다.
첫애를 낳던 날, 어머니가 산바라지를 오셨다. 그런데,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외할머니를 모시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때 외할머니는 뇌졸중 뒤끝에 치매를 앓고 계셨다. 큰외삼촌과 작은외삼촌 댁,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핑퐁처럼 왔다갔다 하시던 외할머니가 안쓰러워서 어머니는 우리 집에 오면서 할머니를 두고 올 수가 없었다고 했다. 9남매의 맏이인 어머니가 외할머니에게 얼마나 지극정성인 줄 익히 아는 바여서 처음엔 이해를 했다. 하지만, 난산인 데다 인큐베이터에 넣어야한다는 체중 미달인 갓난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온 나는 거의 실신 지경이어서 외할머니는 안중에 없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나보다는 외할머니를 챙기는 데 더 열중했다. 입에 힘이 없어 퉁퉁 불은 젖을 빨지도 못하는 아기 때문에 나는 하루하루 거미 같이 말라가는데 어머니는 외할머니랑 뭐가 그리 즐거운지 희희낙락이었다. 알 수 없는 질투심이 끓어올랐다. 나는 어머니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제발 할머니 좀 모셔가라고, 어르릉거렸다. 나는 누구와도 나누어 갖고 싶지 않은, 온전히, 새끼 낳은 딸인 나에게만 집중된 어머니의 사랑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순간, 유년의 외상을 온전히 보상받고 싶었던 것 같다.
·"마망, 우리 엄마 같더라"
'리움'에 있는 높이가 9m쯤 되는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거미 조각은 가늘고 연약한 발끝으로 알집에 하얀 거미알을 품은 무거운 몸집을 지탱하고 서 있었다.
그 옛날, 갓난아기였던 딸아이가 엄마거미의 알집을 올려다보았다. 딸아이의 얼굴이 햇살에 눈부시게 환했다. 그녀는 하얀 달걀 같은 거미알을 올려다보면서 연방 사진을 찍기도 하고 역시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인 화강석으로 만든 아이 벤치(Eye Bench)에 앉아서 '마망'을 바라보기도 했다.
최근에 허리가 아파서 입원한 외할머니를 걱정하던 딸아이가 말했다. 옛날에 외할머니랑 한집에 살면서 싸울 때 보면, 엄마 눈에서 불이 팔팔 나는 것 같았다고. 아직도 할머니를 미워하느냐고.
나는 까마득하게 잊은 옛날이야기라고. 다 용서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우리는 미술관을 나와 저녁을 먹고 서울역에서 또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헤어졌다. 기차가 대전역쯤 도착했을 때 딸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마망 말이야. 우리 엄마 같더라. 엄마의 사랑. 엄마가 바로 엄마거미야." jul60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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