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이병률 끌림

tlsdkssk 2017. 8. 1. 15:32

● 서평


이병률 – 끌림, 내 심장이 뛴다, 당신의 글 때문에

 

 

여행을 다녀오면 마음이 단단해질 줄 알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 모진 풍파를 견뎌 온 사람들이 드세게 변한다는 말을 나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을 줄 알았다. 때로는 못 먹고, 또 때로는 억수같은 비를 맞았고, 또 때로는 낯선 곳에 덩그러니 던져진 것처럼. 그렇게 힘들고 고된, 그렇지만 또 갈 수만 있다면 기꺼이 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이전의 나보다는 더 지독한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근데 오히려 먼 여행을 다녀온 지금, 나는 더 작은 일에도 울컥, 뭉클한 사람이 된 듯하다. ‘진짜 여행’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은 지금, 나는 나보다 훨씬 여행을 사랑하고, 또 여행을 많이 즐긴 어느 선배의 글을 읽으며 자주 눈물을 글썽거릴 수밖에 없었다. 단단해지기는 무슨. 이병률 작가의 한 문장, 한 마디에 가슴이 턱 하고 막혔다가 다시 뻥 뚫리기도 하고, 내 마음을 대변하는 그의 글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도 했다가 더 이상 글을 읽기가 아까워 책을 가슴에 안고선 한숨만 푹푹 내쉬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여행에세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책. 이 책이 내 책장에 찾아온 건 2년 전 봄이었다. 업무 상 책을 소개하는 글을 작성해야 했고, 그래서 이 책을 출판사측으로부터 받았다. 몇 개의 에피소드만 읽고 책이 주는 느낌을 짧은 글로 풀었다. 그리곤 읽지 않았다. 여행을 다녀와서 이 책에 눈길이 갔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던 책이었는데 갑자기 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하루하루 잠들기 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이 책을 아끼듯이 읽었다.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은 예순일곱개의 에피소드 모두에 들어있었지만 그 중에서 몇 가지만 뽑아서 마치 작가가 된 것 마냥 천천히 자판을 두들기며 그 글들을 옮겨 적어보기도 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안다.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안다. 어떠한 상황이든 자신이 마주하는 모든 상황을 글로 표현하지 않으면 몸이 간지럽다는 걸. 누구를 만났고 어디를 다녀왔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자신만의 문장력에 투영시키는 행위, 글쓰기. 그걸 하지 않으면 답답한 사람들은 분명 이병률 작가의 책을 읽으며 감탄할 거다. 좋아할 거다. 두고두고 그의 글을 곱씹을 거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 공통점이 존재하고, 그 공통점이 바로 모든 삶의 순간순간을 글로 풀어내려는 마음이라는 걸 나는 알기 때문이다. 

 

 

 

 

 

 

 

 

 

 

마음에 새긴 에피소드 속 문장들

 

 

 

 

7번째 이야기,
당신에게

 

청춘을 가만 두라. 흘러가는 대로. 혹은 그냥 닥치는 그대로.
청춘에 있어서만큼 사용법이란 없다. 파도처럼 닥치면 온 몸으로 받을 것이며 비갠 뒤의 푸른 하늘처럼 눈이 시리면 그냥 거기다 온 몸을 푹 담그면 그만이다.
주저하면 청춘이 아니다. 생각의 벽 안쪽에 갇혀 지내는 것도 청춘이 아니다. 괜히 자기 자신을 탓하거나 그도 아니면 남을 탓하는 것도 청춘의 임무가 아니다. 청춘은 운동장이다. 눈길 줄 데가 많은 번화가이며 마음 들떠 어쩔 줄 모르는 소풍날이다.

 

 

 

 

 

 

 


11번째 이야기,
어쩌면 탱고


사랑을 하면 마음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돼요. 마음이 엉키면 그게 바로 사랑이죠.

 

 

 

 

 

 

 

 

 


34번째 이야기,

 

발걸음을 멈춰 서서 자주 뒤를 돌아다본다.
그건 내가 앞을 향하면서 봤던 풍경들하고 전혀 다른
느낌을 풍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지나온 것이 저거였구나 하는 단순한 문제를 뛰어넘는다.
아예 멈춰 선 채로 멍해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는 일도 생겨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뒤돌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냥 뒤로 묻힐 뿐인 것이 돼버린다.
아예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린다.
내가 뒤척이지 않으면, 나를 뒤집어놓지 않으면
삶의 다른 국면은 나에게 찾아와주지 않는다.
어쩌면 중요한 것들 모두는 뒤에 있는지도 모른다.

 

 

 

 

 

 

 

 

 

 

44번째 이야기,
영국인 택시 드라이버


상대를 일방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위한 방법은,
완전히 이해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됐다면 아무리 늦었다 해도,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건 분명 사랑인 거다.

 

 

 

 

 

 

 

 


50번째 이야기,
환상의 바다에 몸을 담그고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젊은 여행자들 중에는 상상력으로 단련되어 있는 친구들이 많다. 나천 것에 온 몸을 빠뜨려 흠씬 몸을 적실 준비를 하고 상상할 꺼리들을 채집하러, 머리와 어깨에 힘을 빼고 상상력을 배우러 기차를 탄 것이다. 그들은 세상의 ‘잣대’나 ‘기준’들이 가장 더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과 풍경으로 끊어 넘치는 세상의 순간순간들을 잘 기워내 세상 풍파를 막아낼 양탄자를 만든다. 상상력은 한 뼘의 사고를 한 품의 사고로 확장시키며 사람을 단단하게 한다. 상상력만으로 아픈 사람 앞에 바다를 데려다 보여줄 수도 있으며, 힘겨운 하루하루의 창 밖에 소나무 한 그루씩을 심을 수 있다.
그러니 떠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기갈 들린 사람처럼 천박해 보여도 좋다. 떠나서만큼은 닥치는 일들을 받아내기 위해 조금 무모해져도 좋다. 세상은 눈을 맞추기만 해도 눈 속으로 번져들 설렘과 환상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54번째 이야기,
그때 내가 본 것을 생각하면 나는 눈이 맵다.

 

여행은, 120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곳’을 찾아내는 일이며
언젠가 그곳을 꼭 한 번만이라도 다시 밟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키우는 일이며
만에 하나, 그렇게 되지 못한다 해도 그때 그 기억만으로 눈이 매워지는 일이다.

 

 

 

 

 

 

 

 


57번째 이야기,
당신이 머물고 싶은 만큼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의 그 찬란함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아픈 뒤에 일어난 몸은 금방이라도 날 것처럼 등등해 있었고, 눈은 가장 멀리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씻겨져 있었으며 심장은 모든 풍경 위로 미끄러져 들어갈 것처럼 이완되어 있었다. 장염을 겪은 자격 때문인지, 아니면 밤새 꿈속에서 들었던 ‘티베트에 들어오는 모든 이는 아파야 한다’는 말 때문인지 훌쩍 고산병을 뛰어넘은 아침이 사방을 밝히고 있었다. 눈물을 쏟아야 할 것만 같은 아침.

 

 

 

 

 

 

 

 


66번째 이야기,
나는 뭔가를, 세상에 가져오는 사람입니까

 

세상으로부터 뭔가를 받을 것만 생각하지 않는
세상에게 뭔가를 줄 수도 있는 사람입니까.

누군가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 믿어도 되는 겁니까.

그 한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나는 세상에 뭔가
어떤 식으로든 보탬을 주고 있다고 믿어도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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