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는 병자호란 때보다 더 썩어빠진 질문"
[인터뷰] 100쇄 발행 기념 특별판 '남한산성' 낸 소설가 김훈… "관념 논쟁이 사회 발전 막아"
소설가 김훈(69)은 100쇄 발행을 맞아 기념판으로 출간한 소설 ‘남한산성’ 후기에 ‘(소설의) 결론을 내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썼다. 도덕과 관념의 실체는 모두 부질없는 것이며 “현실을 보지 못하는 자만이 관념에 몰입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7일 자신이 태어난 청운동 인근 청운문학도서관에서 열린 100쇄 기념 간담회에서 작가는 후기에 재차 강조한 문구처럼 “나는 일상의 구체성 안에서 구현될 수 없는 사상의 지표들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하는 질문은 썩어빠진 질문이에요. 북한이 강한 군을 가진 정치적 실체이자 대화의 대상인데, 질문 자체가 성립이 되나요? 5·16이 쿠데타냐 혁명이냐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정변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정의니 부도덕이니 하는 모호한 관념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되잖아요.” 소설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 대군을 피해 인조와 신하들이 남한산성에 머문 47일을 기록한 작품이다. 작가가 주목한 건 그런 치욕이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가치관의 대립’이었다. 대의를 위해 결사항쟁을 고집한 척화파 김상헌, 역적이라도 삶의 영원성이 더 가치있다고 주장한 주화파 최명길의 대립적 ‘관념’과 그럴수록 더 큰 고통의 굴레에 놓일 수밖에 없는 백성의 ‘현실’을 통해 말과 길의 정의를 묻는다. 작가는 "정의의 이념(말)을 가지고 있더라도 현실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현실론’을 꺼내며 “민주투사 김 전대통령이 최명길의 현실론에 긍정하는 걸 보고 놀랐다. 분명한 건 관념의 늪에서 벗어나 존재하는 것들의 실체를 똑바로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시대의 사대주의라는 것은 약자가 강자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술로 어쩔 수 없는 ‘말’이었고 백성을 위한 ‘길’이었어요. ‘북벌정책’이 흐트러진 우리를 모으고 자존심을 지키는 중요한 무기였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건 ‘북학정책’이었어요. 배워서 우리의 주권을 보여주는 것은 현실인 셈이에요. 자기 전환을 하지 못하는 자들은 멸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요.”
“글을 쓸 때 역사적 사실은 제게 중요하지 않아요. 오죽했으면 ‘칼의 노래’에서 당시에 없던 옥수수를 소재로 삼아 학계로부터 비판받았겠습니까. 제게 중요한 건 성 안에 갇힌 인조를 향해 '백성들이 어떤 욕을 했을까' 하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조건들이에요.” 10년간 60만부를 찍어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남한산성’은 100쇄 ‘아트 에디션’ 특별판에서 문봉선 화가의 그림 27점이 추가됐다. 판타지처럼 긴장감 넘치게 읽히는 소설이 더 논픽션처럼 다가온 배경에는 먹의 깊이와 붓의 생동감이 잉태한 진실의 언어가 한몫한 셈이다. 작가는 그런 화풍에 대해 “소설과 직접적 관련성이 있는 그림은 3점뿐이지만 표지 그림에서 느껴지듯 인간이 걸어갈 수 없지만 걸어갈 수밖에 없는 전인미답의 길을 형상화해준 같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여생에 3, 4개 작품만 쓰면 끝날 것 같다고 했다. 그 작품들은 역사나 시대의 하중에서 벗어난, 상상력에 기댄 세계다. 그의 말은 10년간 족쇄처럼 묶인 이념의 굴레에서 이제 해방하고 싶다는 욕구의 동의어로 읽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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