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곽재구

tlsdkssk 2017. 4. 27. 10:29

 

 






......시인의 말


  와온 바다 가는 길에 꽃 많이 피었습니다. 하양 노랑 분홍 보라……
  꽃들의 얼굴은 어질고 착하게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 얼굴을 닮았습니다.
  내가 쓸 맨 나종의 시 한편 또한 그런 얼굴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머물렀던 일년 반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시를 선물해준 산티니케탄 사람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드립니다.
  그들의 맑은 눈망울과 따스한 마음이 없었으면 이 시집은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2012년 물앵두꽃 환한 철에
                                                                                                                 곽재구




 








"숲길"
..........

 

 

       - 곽재구 시인 -



숲은
나와 함께 걸어갔다

비가 내리고
우산이 없는 내게
숲은 비옷이 되어주었다

아주 천천히
나의 전생이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숲의 나무들은
자신들의 먼 여행에 대해
순례자에게 얘기하는 법이 없었다

세상의 길 어딘가에서
만년필을 잃은 아이가 울고 있을 때
울지 말라며 아이보다 많은 눈물을 흘려주었다

목적지를 찾지도 못한 내가
눈보라 속에 돌아올 때도

숲은
나와 함께 걸어왔다



.#
   곽재구 詩集(창비시선ㆍ346)

 

  『와온 바다』에서 -



 





 



  "적빈7"
     

.................- 곽재구 시인 -



    풀들이

    제 몸 끝에

    별 하나씩 붙들고

    이승의 끝까지 걸어간다

    순례자가

    오체투지를 멈추고

    얼굴을 풀밭 위에 부빈다

    풀과 인간이

    함께 껴안고

    우는 아침

 

 

    

     - 동시집에서, -



 




 

 

 

 

"청진에서 온 젓갈"

- 중국 동포 김철 시인의 시에 부쳐

 

 

              - 곽재구 시인 -

 

 

 

나도

청진에서 온 젓갈 맛보고 싶다

과꽃 늦핀 가을날

자전거 탄 우편배달부가

도장 주세요 청진에서 소포 왔어요

큰 소리로 부르는 소리 듣고 싶다

 

겉보리 서말만 있어도

바닷가 갯마을로 시집가지 않는다고

가마 타고 가던 날 아침

퍽도 많이 울었다던 누이야

눈두덩이가 복숭아만큼 부풀어 올랐다는 누이야

 

자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사리원에 살고 있는지

원산에 살고 있는지

아니면 삭주 구성 가랑잎처럼 몸 편히 뉘었는지

 

누이야

바닷가 마을에 시집가 살면서도

새우젓 한 통 부쳐오지 않는 누이야

오십년 넘게 편지 헌장 이 빠진 사진 한장

부쳐오지 않는 누이야

청첩장도 부고장도 소식 없는 누이야

 

나도 청진으로 소포 부치고 싶다

외갓집 개울에서 잡은 토하젓이랑

목포 창란젓이랑 진도 돌미역이랑

충무 앞바다 성게알젓이랑 함께 넣어

 

누이야

청진으로 시집간 누이야

나도 네게 그리운 소포 부치고 싶다


 

 

 - 동시집에서 -


 

 

 

 

 

 

 

 

   ■뒷표지 글 -

 

  지난해 초가을 ‘사평역’의 시인으로부터"와온으로 오세요. 달빛으로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란 매혹적인 초대를 받은 바 있지만 짬이 없어 가지 못했다. 와온은 어떤 곳인가, 또 어디에 있는가?

「와온 가는 길」을 읽고 언덕에 한 뙈기의 홍화밭이 있는 바닷가 마을이란 사실은 알았지만, “등이 하얀 거북 두 마리가 불빛과 불빛 사이로 난 길을/리어카를 밀며 느릿느릿 올라간다”는 구절과 “새벽이면/아홉마리의 순금빛 용이/인간의 마을과 바다를 껴안고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는 (「와온 바다」)서사를 읽고는 그곳이 범상치 않은 신화적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와온은 어디 있는가, 지금 그곳에는 누가 살고 있는가? 와온의 시인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두만강 국경지역의 마을이다. 시인은 그곳에서 데즈루나야라는 여자로부터 마라화차를 얻어 마시고 문득 해방되던 해에 박인환 시인이 종로에 냈다는 서점 이름, ‘마리서사’를 떠올린다. 여행은 이렇게 과거의 일을 추억처럼 떠올리게 하는 효능이 있나보다. 그의 여정은 계속되어 인도와 네팔까지 이어지는데, 그곳에서도 수많은 인연과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고 싶은 사색에 잠긴다. 특히 “맨발인 아이들이 연을 날리는/불가촉천민의 마을을 지나” 갈 때는 그들이 “언제부터/나를 기다렸을까” 생각하며 “적멸의 시간”을 명상한다(「적빈 5」). 적멸은 단지 사라지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승에서 선하게 살아 새 새상을 찾아가려는 마음이다.

곽재구의 시는 급히 서둘거나 과장된 무리한 몸짓을 하지 않는다. 강물이 흐르듯 유연한 그의 시가 독자들의 눈과 마

음에 기쁨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민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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