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정호승
호롱불 켜놓고 밤새워
콩나물 다듬으시던 어머니
날 새기가 무섭게 콩나물다라이 이고 나가
온양시장 모퉁이에서 밤이 늦도록
콩나물 파시다가 할머니 된 어머니
그 어머니 관도 없이 흙속에 묻히셨다
콩나물처럼 쓰러져 세상을 버리셨다
손끝마다 눈을 떠서 아프던 까치눈도
고요히 눈을 감고 잠이 드셨다
일평생 밭 한 뙈기 논 한 마지기 없이
남의 집 배추밭도 잘도 잘 매시더니
배추 가시에 손 찔리며 뜨거운 뙤약볕에
포기마다 짚으로 잘도 싸매시더니
그 배추밭 너머 마을산 공동묘지
눈물도 없이 어머니 산 속에 묻히셨다
콩나물처럼 누워서 흙속에 묻히셨다
막걸리에 취한 아버지와 산을 내려와
앞마당에 들어서니 어머니 말씀
얘야, 돌과 쥐똥 아니면
곡식이라면 뭐든지 버리지 말아라
그릇 / 김시천
그릇이 되고 싶다
마음 하나 넉넉히 담을 수 있는
투박한 모양의 질그릇이 되고 싶다
그리 오랜 옛날은 아니지만
새벽 별 맑게 흐르던 조선의 하늘
어머니 마음 닮은 정화수 물 한 그릇
그 물 한 그릇 무심히 담던
그런 그릇이 되고 싶다
누군가 간절히 그리운 날이며
그리운 모양대로 저마다 꽃이 되듯
지금 나는 그릇이 되고 싶다
뜨겁고 화려한 사랑의 불꽃이 되기보다는
그리운 내 가슴 샘물을 길어다가
그대 마른 목 적셔줄 수 있는
그저 흔한 그릇이 되고 싶다
엄마 걱정/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장용림
어머니/ 이해인
당신의 이름에선 색색이 웃음칠한
시골집 안마당의 분꽃 향기가 난다
분꽃 향기가 난다
안으로 주름진 한숨의 세월에도
바다가 넘실대는 남빛 치마폭 사랑
남루한 옷을걸친 나의 오늘이
그 안에 누워 있다
기워 주신 꽃골무 속에
소복히 담겨 있는
유년의 추억
당신의 가리마 같이
한갈래로 난길을 똑 바로 걸어가면
나의 연두갑사 저고리에
끝동을 다는 다사로운 손길
까만 씨알품은 어머니의 향기가
바람에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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