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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프랑스대혁명사`를 알면 교회개혁의 길이 보인다 -첫번째 이야기 `앙샹 레짐`

tlsdkssk 2017. 1. 24. 06:03
  '프랑스 혁명'이라 하지 않고 '대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것이 인간의 역사에서 수없이 일어난 혁명들 중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큰 혁명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백여 년 전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 혁명을 계기로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근대사회가 개시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그 단초가 되는 프랑스 대혁명사를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시대적 배경을 보면,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조 정조시대, 다산 정약용이 많은 활동을 하던 시기이고, 중국은 청나라가 융성하던 때입니다.
  그러나 동방의 여러 나라들이 이같은 분위기를 누리면서도 그 결실을 옳게 맺지 못한 데 비해, 프랑스 인들은 현대적 정치사회적 용어들을 몽땅 만들어낼 정도로 앞서 있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루이14세라고 아시죠? 태양왕이라는 별칭을 가진 절대군주였습니다. 그 다음이 루이15세, 그 다음이 루이16세입니다.
  루이16세의 부인은 바로 마리 앙뜨와네뜨지요. 오스트리아의 여왕인 마리 테레지아의 딸입니다.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애들 만화에 등장하기도 하지요.
  프랑스 대혁명은 바로 루이16세 때 일어난 일입니다. 때는 1780-1790년대 입니다.
 
  이때는 아직 봉건왕조시대였지요.
  하지만 과학의 발달로 산업이 일어나고 생산이 증대되면서 자본의 집중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토지보다는 지식과 자본을 바탕으로한 상공업이 힘을 얻어가고 있었습니다.
  귀족들은 여전히 과거의 관습에 얽매여 있었으나, 부르좌지들은 실질적인 파워 면에서 귀족들을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부르좌지란 부르그 즉 도시[城市]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중견 시민들을 가리킵니다)
  귀족들 다시 말해서 특권계급은 다른 무엇보다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파워를 누려왔는데, 그들의 파워를 지탱해주는 것은 농업조직이었습니다.
  그들은 출신성분상 특권을 세습하고 있었고, 가난한 농민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 나갔습니다.
  이러한 체제를 앙샹레짐(l' Ancien Regime) 즉 구체제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다 건너 영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죠? 
  스티븐슨에 의한 증기기관의 발명, 방직기의 발명 등등 , 온갖 발명들이 이루어져 세상이 정신없이 바뀌고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귀족과는 달리 비토지적(非土地的) 부(富)를 바탕으로한 대규모의 상업과 공업이 나타났고, 여기에다가 여러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나타나 의식의 전환을 가져온 까닭에 프랑스 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게 되었습니다.
  계몽주의 철학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에밀>의 저자 장 자끄 루소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정확히 1789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렇다면 1787-1788년의 사회 분위기는 어땠을까요?
  루소 등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절대왕권에 도전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면서 힘을 키워가자 이른바 특권 기득권 계급의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개혁 시도에 대한 귀족층의 집요한 반대가 일어난 것이지요.
  이런 현상을 일러 반동(反動)이라고 합니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있어서 반작용과 같은 것입니다. 
 
  당시 특권 소수층들은 모든 국가 직위를 독점하고 있었기에, 절대적인 권위를 상층 부르좌지와 함께 나누는 데 대해 완고한 거부감을 드러내었습니다.
  그 결과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프랑스 대혁명은 폭력적 성격을 띠게 되었지요.
  아무튼 대혁명 직전에는 프랑스 인의 평균 수명이 29세였는데, 당시에 사망률이 너무 높다보니 어차피 죽을 아기에게 젖을 먹여 뭣하느냐 하는 비관적 생각에서 엄마들은 비정해지고 아빠들은 무능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각국의 인구는 크게 증가하는 추세에 있었습니다.
  인구가 증가한다는 것은 사회가 변동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인구가 늘어나니 소비가 증가하고 그래서 물가도 상승하였습니다.
  1785-1789년 사이에 밀은 66%, 호밀은 71%, 육류는 67%, 땔감은 91%, 포도주는 14%, 섬유는 29%, 철은 30%가 상승했습니다.
  통계에서 보듯이 프랑스 인들이 좋아하는 포도주는 14% 밖에 상승하지 않았는데, 주된 식량류는 엄청나게 뛴 것을 알 수 있지요.
  드디어 1789년 한 해 동안에는 밀 가격이 127-150% 상승했고,  호밀 가격이 136-165% 상승하는 등 최악의 국면이 되고 말았지요.
   
  한편, 특권계급이라는 사람들은 제1신분인 '고위'성직자(여기에서 '고위'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직자 중에서도 '하위'는 특권계급이라고 할 수 없었거든요. 고위 성직자란 주교, 수도원장, 교회참사회원을 가리키고, 하위 성직자란 평민 출신의 사제, 수사를 가라킵니다 )와 제2신분인 귀족을 가리킵니다. 제3계급이란 바로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가리키지요.
  귀족의 수는 35만 명 가량으로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궁정출입귀족은 불과 4천 명에 지나지 않았어요.
 
  * 참고: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양반의 인구 비율은 1% 가량 되었지요. 어느 마을에 100여 채의 집이 있는데, 그 가운데 커다란 기와집이 단 한 채 있었다면 그게 바로 양반이라는 얘기지요.
출처 : 플레비언 교회개혁연대
글쓴이 : manofGod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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