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제품, 7세 젊고·5kg 줄이고·3cm 가늘게
SENIOR MARKET 불안·불만·불편 등 ‘3不’ 해소하면 지갑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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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시니어 시장은 ‘노인=빈곤 인구’로 여겨지며 아직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빠른 고령화 그리고 한국 가계 자산의 상당 지분을 보유한 베이비부머(1955~63년생)가 은퇴시기에 들어서면서 시니어 시장이 보다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 조선일보DB
# 일본 골프용품업체 브리지스톤이 2012년 시니어 고객을 타깃으로 개발한 골프클럽 ‘화이즈(phyz)’는 실패했다는 게 중론이다. 쇠퇴한 근력을 보강해 작은 힘으로 원하는 비거리를 얻을 수 있도록 13년 만에 만든 전략 모델이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 클럽을 쓴다는 것 자체가 신체 쇠퇴 즉, 노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오히려 시니어 고객이 사용을 꺼린 것이다.
# 일본의 시니어 여성잡지 <이키이키(いきいき)>가 2013년 내놓은 여행상품 ‘보스턴 1개월 여행’은 1인당 120만엔(약 1290만원)에 달하는 초고가에도 불구하고 발매 2주 만에 30명 정원을 모두 채웠다. 단순 관광 대신 동경하던 도시에서 1개월간 주민처럼 생활하며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지식·문화 체험 여행이라는 아이디어가 시장에 통한 것이다.
일본 시니어 시장에서 성공한 케이스와 실패한 케이스다. 브리지스톤 화이즈의 경우, 시니어 시장에 있을 만한 제품 수요였지만 ‘늙음’을 싫어한다는 시니어 고객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노인·고령이란 글자가 들어가면 잘 팔리지 않는 게 시니어 시장의 특징이다. 그들은 ‘젊음’을 지향한다. 이런 이유로 시니어 시장에 떠도는 법칙이 있다. ‘753의 법칙’이 그것이다. 7세 젊게 하고, 5kg 줄이고, 3㎝ 가늘게 보일 수 있는 제품·서비스를 만들라는 것이다.
반면 이키이키는 나이가 들어도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시니어 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행+영어’가 그 수단이었다.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내적 호기심, 해방심리가 늘어난다는 점을 주목한 것이다. 일본의 시니어 비즈니스 전문가 무라타 히로유키(村田裕之)는 “인생 2막 즈음에 발생하는 시니어 고객의 변신 욕구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50대 중반부터 70대 전반을 ‘해방단계’라고 정의하며 기업들이 이들의 변신 의욕에 부응하는 상품·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무라타 히로유키는 조기퇴직 후 해외이민을 가거나 전업주부가 취미강사로 변신하는 추세 등에서 가능성을 읽었다. 더 늦기 전에 자아실현을 하려는 의지발현과 자녀독립, 부모봉양 종료 등 삶의 단계 변화가 맞물리면서 해방심리의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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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여력 부족한 韓 시니어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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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니어 고객은 앞서 일본의 성공 사례처럼 어학연수를 갈 정도로 자금력을 겸비한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의 고령화 사회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점을 준다.
현재 한국의 시니어 시장은 ‘노인=빈곤 인구’로 여겨지며 아직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시장은 사람과 돈이 있어야 만들어지고 규모가 커진다. 타깃 고객과 소비여력은 시장 형성의 필수 조건이다. 한국의 시니어 시장은 사람과 돈 모두 이렇다 할 덩치를 만들지 못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고령 인구는 가진 돈이 별로 없다. 소비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50대 중산층이 60대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비율은 절반에 달한다. 은퇴 이후 중산층, 빈곤층으로의 이동이 심각하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04년 가구주 연령이 50~65세인 중산층 866가구 가운데 2010년 빈곤층으로 전락한 가구는 458가구였다. 빈곤층으로의 전락비율이 무려 53%에 달한다.
멀쩡했던 사람도 은퇴와 함께 금전 갈등에 봉착한다. 은퇴 이후 경제적으로 독립했다는 사람은 10명 중 3명(66%)에 불과하다. 또 한국 노인의 빈곤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49.6%다. 전체 평균(12.6%)의 3배가 넘는다.
그러나 한국의 시니어 시장의 잠재 고객은 엄청나다. 한국의 고령화 비율(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은 2015년 13.1%로, 고령 사회로의 진입 관문인 14%에 근접했다. 통계청은 한국이 2018년(14% 이상), 2026년(20% 이상) 각각 고령 사회, 초고령 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 쇼핑 불편 최소화한 日 다이신 백화점
정리하면 한국 시니어 시장의 타깃 고객은 중(中), 소비여력은 하(下)다. 하지만 앞으로 둘 다 개선될 여지가 있다. 특히 한국 가계자산의 상당 지분을 보유한 베이비부머(1955~63년생)가 60세(환갑)를 넘어 본격적인 고령 인구에 가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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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은 일본의 고령화 사회를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크다. 이런 점에서 일본 기업의 시니어 전략은 한국 기업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사진은 일본의 한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고 있는 일본 고령 부부./ 조선일보DB
이들 700만 거대 인구는 노인그룹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소비여력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본인 노력과 함께 고도성장의 수혜를 입었다. 이들의 대량 은퇴는 시니어 시장이 적어도 지금보다는 커질 것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비교적 고학력에 좋은 건강상태, 넉넉한 경제기반 등이 길어진 노후 생활과 맞물려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소비전선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베이비부머 등 시니어 고객의 소비 트렌드는 무엇일까. 또 기업들은 어떤 대응전략을 펼쳐야 할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 시장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시니어 고객은 까다롭다. 그들은 은퇴 이후 소득이 줄고 건강을 걱정하는 등 불확실성 때문에 지갑을 일단 닫고 생활을 한다. 기본적으로 소비 지출에 방어적이다. 반대로 시니어 고객이 지닌 불안·불만·불편 등 ‘3불(不)’을 해소하면 그들의 지갑을 열 수 있는 확률이 커진다.
건강 불안은 시니어 고객이 지닌 대표적인 불확실성의 요인이다. 특히 건강 불안은 시니어 고객의 숙명이다. 그들은 뇌졸중을 비롯해 치매, 낙상(골절)이라는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주택가에 요양 시설과 정형외과가 많은 이유다. 대응전략으로는 운동을 꼽을 수 있다. 이를 활용해 성장한 기업이 바로 여성전용 피트니스클럽 ‘커브스(curves)’다. 이 업체는 값비싼 헬스장의 반복 운동에 질린 중장년 여성을 공략했다. 커브스의 전략은 ‘Three No M’으로 요약된다. 남자(man)가 없고, 화장(make up)이 필요 없고, 거울(mirror)도 없다는 것이다. 중장년 여성이 느끼는 불만을 제로(0)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동시에 운동을 30분 안에 끝내고, 샤워시설을 없애면서 저가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시니어 고객의 식생활 불안 요소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 건강식을 선호한다. 그런데 마트의 대형화로 신선제품을 사는 게 힘들어졌다. 쇼핑 불편이다. 그러자 신선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이 등장했다. 마트를 편의점처럼 소형화해 채소·고기 등 신선제품을 파는 것이다. 일본의 편의점 체인 로손이 운영하는 ‘스토어 100’이다. 로손은 제품의 용량을 줄여 가격 저항을 없앴다. 집 주변에서 신선제품의 소량 구입은 시니어 고객의 소비 니즈와 결부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 고령 친화적인 쇼핑 환경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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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며 쇼핑 불편을 최소화한 기업도 있다. 다이신 백화점이다. 이 백화점에는 노인이 선호하는 절임 상품의 종류가 300종이 넘는다. 계절과일 단일품목도 20~30종류 이상이다. 반려동물 사료는 그 종류만 1만 가지 이상이다. 또 손님이 원하면 무엇이든 구해주는 게 다이신 백화점의 기본 원칙이다. 1년에 1~2개 팔려 유지비가 더 들어도 이 원칙을 깨지 않는다. 소량판매도 다이신 백화점의 특화 아이템이다. 김밥 한 줄조차 여러 개로 잘라 별도 포장 후 판매한다.
불안·불만·불편 등 ‘3불(不)’의 해소로 인해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곳은 판매 현장이다. 시니어 고객을 상대하기 위해선 그들이 느끼는 쇼핑에서의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매장 배치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 출발점은 노안 대책이다. 광고, 팸플릿은 노안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돋보기를 배치하든가 쉽고 큼직한 글자도안이 필요하다. 빽빽한 상품 정보보다는 몇 가지 어필 요소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게 좋다. 특히 늙을수록 기억력과 분석력이 약해진다는 점에서 복잡한 제품 기능보다 확실한 1~2가지로 설득하는 게 효과적이다.
시니어 고객은 다리도 아프다. 그들을 위해 쇼핑 동선을 최대한 우호적으로 바꾸고, 중간 중간에 의자를 배치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체류 시간이 길어지면 쇼핑 기회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보행 거리가 짧다는 점에서 화장실 위치도 관건이다. 고령일수록 요로기관이 약해져 화장실을 자주 사용한다. 청력을 배려한다면 배경 음악이나 볼륨 선택도 고려해야 한다.
◆ Keyword 시니어 시장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산업시장. 정부통계나 노년학에서는 65세 이상의 인구를 고령자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소비자 집단 관점에서 시니어는 50대 이상까지 포함한다. 이들은 퇴직과 자녀의 결혼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새로운 삶의 패턴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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