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관해난수觀海難水

tlsdkssk 2016. 10. 1. 16:32

 

칼 세이건] 에덴의 용 칼 세이건 / 책/집중독서

2016.08.01.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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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세이건의 국내 첫 출간작 <에덴의 용> 이 책은 인류가 어디에서 출발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해당하는 책이다. 표지에 있는 부제 또한 '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라고 씌어져 있다.

 책 속 내용에서도 밝혔지만, 칼 세이건은 원래부터 '천문학자'였다. 그런 그가 왜 ​생명공학, 인류학, 나아가 외계생명학이라는 너무도 방대하고 넓은 스펙트럼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언급해야만 했을까? 그 시작은 바로 과학자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것, '지적 탐구를 위한 순수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목적을 우선시 하는 결과지향적인 삶의 태도가 아닌, 말 그대로 과학자로서의 순수한 의미에서의 지적 발견과 그에 따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던 것이다.

'칼 세이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코스모스' 이듯이 '칼 세이건 = 코스모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코스모스'와 같은 인류 역사상 불후의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을 우리에게 선사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바로 이와 같이 평생에 걸친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구의 탄생 이래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만 가지고서도 우리의 조상은 어떠했으며, 향후 인류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그 예측선상에서의 이야기를 이 책 속에서 언급하였다. 全 인류라 함은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미래를 살 사람들, 나아가 지금 현재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그 모든 사람들의 각각의 개별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지, 존재에 대한 이유와 함께 끊임없이 삶의 목적을 찾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인류라는 거창한 단어를 언급하고 있지만 결국은 그 속에서 각각의 개인, 즉 나 자신을 찾아야만 하는 것과도 같다.

  엄청난 속도로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서, 제 아무리 훌륭한 천체망원경이 개발되었다고 해도 당분간은 이 우주속에서 우리 지구 이외에 살아있는 생명체를 발견한다고 하는 것이 요원하기만 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 우주 어딘가에서는 우리와 같은 생성의 역사는 같지 않았더라도(전혀 다른 세계일테지만) 지적 능력을 가진 생명체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단지 믿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는 실제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과학적 결과로써 눈앞에 드러날 것이다.


  神이 스스로 존재하고 난 이후에 세상을 창조하였으니, 우리 이외의 생명체. 즉 또다른 세상 또한 만들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에덴의 용

작가
칼 세이건
출판
사이언스북스
발매
2014.03.28.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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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5)

  예를 들어 생쥐를 수천 미터 깊이의 갱도 아래로 떨어뜨려 보자. 바닥의 지면이 부드럽다면, 조금 어리둥절하기는 하겠지만 생쥐는 멀쩡하게 털고 일어나 돌아다닐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대개 몇십 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면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불구가 되기 일쑤이다. 우리 인간은 몸집이 큰 탓에 표면적에 비해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무 위에서 살던 우리의 조상들은 매사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팔을 뻗어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몸을 옮기는 순간마다 목숨이 걸린 곡예를 펼쳤던 것이다. 도약 하나하나가 바로 진화의 기회였다. 자연선택의 강력한 힘이 매번 작용했고, 그 결과 우아하고 민첩하며 정확한 양안시(binocular vision, 두눈보기)와 만능의 손재주, 뛰어난 눈과 손의 협응력, 뉴턴 중력에 대한 직관을 가진 생물의 진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각각의 기술들은 뇌, 특히 신피질의 진화에서 커다란 진보를 요구했다. 따라서 인간의 지능은 우리 조상들이 나무 위에서 보낸 수백만 년의 세월 덕택이라고 볼 수 있다.

P118)

  아마도 에덴 동산은 지금으로부터 300만 ~ 400만 년 전 우리의 조상들의 눈에 비쳤던 지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는 호모 속의 조상들이 다른 종의 동식물들과 일체가 되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전설적인 황금 시대이다. <성서>에 따르면 인간은 에덴에서 추방된 후에 죽음과 고된 노동의 형벌을 받고, 성적 자극을 막기 위해 옷으로 치부를 가리게 되었으며,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식물을 길들이고(카인), 동물을 길들이며(아벨),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카인과 아벨). 이 모든 사실들은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와 상당히 잘 맞아떨어진다.

P172)

  공룡이 사라진 이후에 포유류들은 낮이라는 생태계의 틈새로 이동하게 된다. 영장류가 어둠을 무서워하는 것은 비교적 나중에 발달한 특징인 것으로 보인다. 워시번은 어린 비비원숭이나 그 밖의 다른 영장류 새끼들은 오직 세 가지 대상에 대한 공포를 타고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추락, 뱀, 어둠이 그 세 가지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는 나무 위에 사는 동물에게 부과되는 뉴턴적 중력의 위험을, 뱀에 대한 공포는 조상 대대로 포유류의 적수였던 파충류에 대한 공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각에 크게 의존하는 영장류로서는 어둠에 대한 공포가 더욱 절실할 것이다.

P230)

  나는 모든 인간 문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창조적인 활동들, 즉 사법 및 윤리 체계. 미술과 음악, 과학과 기술 등은 오로지 좌반구와 우반구의 협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믿는다. 비록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드물게 이루어졌지만 이와 같은 창조적 활동들이야말로 우리 인류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변화시켜 왔다. 어쩌면 우리는 인류 문화는 뇌량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P248)

  놀라울 정도로 발달되어 있는 뇌의 열(fissurization, 뇌 표면의 깊은 홈 - 옮긴이)과 뇌회(convolution, 뇌이랑이라고도 하며 뇌 표면의 주름의 융기된 부분 - 옮긴이) 및 촘촘하게 접혀 있는 피질, 그리고 뇌가 두개골 안에 꼭 들어맞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 들을 고려할 때 지금과 같은 두개 안에 더 많은 양의 뇌를 집어넣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뇌의 크기나 두개골의 크기는 아주 최근까지 계속 증가해 오지는 못했다. 산도나 골반 크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P275)

  책은 쉽게 보관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하지 않고 나의 진도에 맞추어 책을 읽어 나갈 수 있다. 어려운 부분은 다시 읽어 볼 수 있고 유난히 마음에 드는 부분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즐거움을 다시 맛볼 수 있다. 책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대량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읽기는 그 자체로 놀라운 활동이다. 당신이 나무로 만든 얇고 평평한 물체를 들여다보는 순간, 당신의 머릿속에서 저자의 목소리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문자가 발명된 이후 인간의 지식과 생존 잠재력은 엄청나게 향상되었다. (자립심 역시 크게 향상되었다. 주변에 적당한 스승이 없더라도 책을 통해 예술이나 과학을 적어도 기초적인 수준이나마 배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무실 한 켠에 우주에서 바라 본 아름답고 경이로운 지구 사진이 있다. 외계의 시선으로 내 고향 창백한 푸른 점을 종종 바라볼 수 있는 평화는 혼자서 누리기엔 아까운 축복이다. 작은 일에 분개하고, 사소한 슬픔에 좌절하며 비참한 현실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나약한 지구인. 그들에게 우주의 크기를 생각하는 여유를 전파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타인의 아픔을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지만 현실의 벽에서 무너져 가는 친구를 만났을 때 반드시 권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

36년 전에 출간되었으나 여전히 미래지향적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앤 드루얀과 함께 제작한 TV 다큐멘터리로 전 세계 60여 나라 7억 5천만 명의 시청자들이 열광한 불후의 명작이다. 전설적인 과학 다큐멘터리의 종이 버전답게 검고 두꺼운 벽돌같은 책은 참으로 부담스럽다. 모두 13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각 장을 50쪽 정도의 소책자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방식을 권장하고 싶다.

첫 장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를 따분하게 읽었던 필자의 경우는 두 번째 장으로 가는 순서를 따르지 않고 마지막 장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를 먼저 읽고 되돌아와 제대로 빠져들 수 있었다. 시작이 어려울 뿐 한 번 몰입하기 시작하면 특유의 시적인 표현들에 압도되며 밤을 꼬박 샐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과학 분야의 주목받는 그 어떤 책도 코스모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범접할 수 없는 과학계의 바이블이 되어 꾸준히 읽히는 생명력으로 그 가치를 입증하고 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한 권의 책이 독자의 인생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코스모스가 제시하는 우주적 관점으로 세상보기는 존재와 관계를 향한 잔잔한 울림이 될 것이다.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정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아득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는 한다. 코스모스를 정관한다는 것이 미지 중 미지의 세계와 마주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울림, 그 느낌, 그 감정이야말로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하게 되는 당연한 반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36쪽

안타깝게도 칼 세이건은 행성 지구가 태양을 고작 62 바퀴 돌았을 때 지구 여행을 마쳤다. 인간은 기껏해야 100년을 살지 못한다. 최초의 인류는 250만 년 전에 처음 나타났으며, 지구 최초의 생명체는 40억 년 전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지구의 나이도 46억 년이지만 우주의 나이는 세다가 지쳐 죽을 138억 년에 이른다. 우주의 역사를 압축된 1년의 달력으로 만들면 1월 1일 빅뱅을 시작으로 3월 15일 은하가 형성되고, 8월 31일 태양이 탄생하고, 12월 31일 23시 59분 46초부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 칼 세이건의 또 다른 저서 ‘에덴의 용’에서 처음 언급된 이 우주달력은 인간을 한 없이 초라하게 하면서도 삶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 버린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면서 자문위원 칼 세이건을 생각했다.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를 보면서도 원작자 칼 세이건을 생각했다. 리들리 스콧의 ‘마션’을 볼 때에도 바숨(Barsoom)에 열광하던 칼 세이건을 생각했다. 우주를 소재로 한 다양한 콘텐츠들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시대를 관통하는 칼 세이건의 통찰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마이크로코스모스에는 분자를 이루는 원소에서부터, 원자를 이루는 전자와 원자핵,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 중성미자까지 대를 이은 과학자들이 깊이 파고든 끝에 우주와 생명의 원리가 밝혀졌다는 것을 세상에 가장 쉽게 설명해 준 사람도 칼 세이건이다. 서양철학, 동양사상과 현대 사회학, 정치심리학을 융합시켜 그 복잡한 진실들을 그렇게 명료하게 파헤쳐준 사람은 칼 세이건이 처음이었다.

우리가 하늘을 볼 때는 별의 형체가 아니라 그 별이 보낸 빛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빛이 지구에 도달했을 때는 그 별이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없을 수도 있다. 별이 죽으면 폭발하여 먼지가 되지만 중력은 다시 그 먼지들을 끌어 모아 새로운 별을 만든다. 코스모스에서 모든 것은 재활용 된다는 것도 우리 모두는 별에서 나온 존재라는 사실도 그가 알려 줬다. 물론 칼 세이건 혼자서 이 모든 것을 완성시킨 것은 아니다. 혜성을 두려워하던 인류에게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제시했고, 핼리는 그 법칙으로 혜성의 패턴을 알아냈고, 후세 과학자들은 우주선을 발명하고 머나 먼 우주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칼은 그것을 대중화 시킨 것이다.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이들의 권위가 배우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 장애의 요인으로 작용하여, 결국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판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든다. 권위의 무게가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주어진 문제의 답을 스승이 내린 판단에서만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피타고라스학파에서 통용됐던 이와 같은 관행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 366쪽 키케로 인용

칼 세이건은 과학 대중화를 통해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했다.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 간의 대화를 꾸준히 장려하고 반핵 반전 운동과 지구 환경 문제에 한 없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럴수록 동료들의 질시를 받았지만 자신을 하버드 종신 교수 자리에 오를 수 없도록 방해한 헤럴드 유리를 위한 추도사를 썼을 만큼 우주의 시선으로 사람을 대했다. 스탠포드·하버드·코넬에서 학생들과 교유할 때는 직접적인 제자가 아니라도 일일이 편지에 응답하거나 만나주며 친절하고 따뜻하게 멘토가 되어 주었다. 그의 학문적 자식이라 할 수 있는 닐 디그래스 타이슨도 그렇게 데뷔했다. 진로 문제로 고심하며 이타카로 찾아온 브롱스의 흑인 소년은 눈 내리는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하며 친절을 베풀었던 그를 잊지 못한다. 닐은 스승의 부인인 앤 드루얀과 손을 잡고 내셔널지오그래픽을 통해 34년 만에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리메이크하며 코스모스의 새 바람을 일으킨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다.

과학하기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그것은 단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신성불가침의 절대 진리는 없다는 것이다. 가정이란 가정은 모조리 철저하게 검증돼야 한다. 과학에서 권위에 근거한 주장은 설자리가 없다. 두 번째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주장은 무조건 버리거나 일치하도록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코스모스는 있는 그대로 이해 돼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코스모스를 우리가 원하는 코스모스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 660쪽

관해난수(觀海難水),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다고 했다. 우주라는 미지의 바다로 항해할 준비만으로도 우리는 틀림없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코스모스를 읽고 세이건을 읽고, 독자 자신을 읽는 서삼독을 통해 당신이 보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안중찬ahn0312@gmail.com 장거리 출퇴근길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관련 11권의 전문 서적을 집필하고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이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 여러 직업을 경험하면서 삶에 대한 애정과 추억이 많아 세상이 여전히 따뜻하다고 믿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