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이야기 no. 19 -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
‘꽃’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
조지아 오키프, <붉은 양귀비>, 1927
유럽의 미술이 피카소와 마티스를 선두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을 무렵, 신대륙 미국의 미술은 여전히 전통적인 미술양식을 벗어나지 못한 채 소수의 예술가들만이 전위미술을 개척하고 있었다.
대도시의 풍경을 현실적으로 묘사한 ‘에이트 그룹(The Eight)’과 추상과 재현의 경계를 오가며 형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 ‘정밀주의’ 화가들은 미술의 현대적 해석을 시도하며 전위적인 흐름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거대하게 확대된 꽃그림으로 잘 알려진 조지아 오키프(1887.11.15-1986.3.6)는 당시 남성들의 독무대였던 미국화단에서 어떠한 사조와도 연관되지 않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하며 미국 미술계에 모더니즘 사조가 주류를 이루는데 앞장섰다.
“나는 그저 내가 본 것을 그리고 싶었을 뿐이다”
오키프의 그림으로 대표되는 주제는 꽃과 동물의 뼈 등 자연물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확대된 꽃은 어떠한 배경처리 없이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져 관람자를 근접하여 압도시키며 투명한 색채처리에도 얇은 깊이감이 느껴져 신비로운 추상성이 돋보인다.
조지아 오키프, <밝은 붓꽃>, 1924
조지아 오키프, <검은 붓꽃>, 1926
왜 꽃을 확대해서 그리느냐는 질문에 오키프는 “아무도 진정한 자세로 꽃을 보지 않는다. 꽃은 너무 작아서보는 데 시간이 걸리는데 현대인은 너무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꽃을 거대하게 그리면 사람들은 그 규모에 놀라 천천히 꽃을 보게 된다”고 설명한바 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의도에도 불구하고 초창기 꽃을 그린 작품들은 여성의 생식기를 은유하는 성적 암시와 관능적인 상징주의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그녀는 이러한 프로이트식의 해석을 완강히 거부했지만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1916년, 오키프가 미국서부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틈틈이 그린 그림을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Alfred Stieglitz)는 단번에 그녀의 예술성에 감탄하고 자신이 운영하던 ‘291화랑’에 전시하게 된다. 스티글리츠는 이 일을 계기로 그녀와 가까워지고 결국 동거하게 되는데, 문제는 당시 스티글리츠가 ‘미국 근대 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향력 있는 작가인데다가 유부남이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오키프를 ‘성공을 위하여 스무 살이 넘게 차이 나는 유부남 스티글리츠를 이용한 요부’라는 아니꼬운 색안경으로 바라보았으니 그녀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아줄리 없었다. 더군다나 스티글리츠는 그녀와 함께하는 동안 누드를 포함한 그녀의 사진을 수백 장 찍어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의 사진에 대한 평단의 호평은 좋았지만 오키프와 그녀의 작품 이미지는 점점 더 편파적으로 왜곡되어 굳어져갔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조지아 오키프의 초상>, 1918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조지아 오키프>, 1920
평범한 미술교사였던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의 사진과 함께 단번에 미술계의 중심으로 떠올랐으며, 그로인해 그녀의 그림도 잘 팔렸지만 오키프는 이러한 세간의 얼룩진 평판과 가십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더욱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가벼운’ 평가는 더욱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오키프는 이에 직접 나서서 해명하기 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작품 세계를 그려나갔다. 특히 1917년 콜로라도 여행에서 처음으로 뉴멕시코 고원의 사막과 깊은 계곡을 본 그녀는 강한 영감을 받고 뉴욕과 뉴멕시코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는데, 특이한 형태의 바위나 강렬한 햇빛에 새하얗게 육탈된 동물의 뼈 등을 작품에 담았다.
조지아 오키프, <캘리코 장미와 소의 두개골>, 1931
조지아 오키프, <양의 머리와 흰 접시꽃 그리고 작은 언덕>, 1935
오키프의 그림은 처음에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상형태의 작품이지만, 감상이 지속될수록 자연을 내면화 하여 표현한 신비스러운 아우라에 감상자 또한 내면의 울림을 느끼게 되고 새로운 의미를 찾게 만든다. 자신을 둘러싼 소음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그림에만 몰두하여 창조해낸 그녀의 독창적인 작품에 세간의 평가도 달라진다.
대중과 평단은 오키프의 작품에서 독특한 예술적 감성을 알아보게 되고 그녀를 ‘스티글리츠의 여자’가 아닌 현대적이고 독립적인 작가로 인정하기 시작한다. 한때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앓기도 했지만, 스트글리츠의 그늘을 벗어난 오키프는 서유럽계의 모더니즘과 관계없는 그녀만의 추상환상주의의 작품세계를 꾸준히 펼침으로써 20세기 미국미술계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고독한 사막에서 꽃피운 예술과 삶
1946년 스티글리츠가 사망하자 오키프는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뉴멕시코 산타페로 완전히 이주한다. 광활하고 고독한 사막에서 그녀는 외부와의 관계도 멀리하고 자신의 작품세계에 몰두하며 명작을 쏟아냈다. 추상성이 더욱 강조된 그녀의 후기 작품들은 사물이 거의 패턴으로 전환되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띄고 특히 전후 미국미술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평면성’의 요소 또한 함축하고 있다.
조지아 오키프, <어두운 나무둥치>,1946
조지아 오키프, <초록잎과 파티오 문>, 1956
조지아 오키프, <달을 향한 사다리>, 1958
조지아 오키프, <파랑, 검정, 그리고 회색>,1960
오키프는 98세라는 긴 삶을 살았는데, 노년에도 작품 활동을 결코 느슨하게 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캔버스를 붙들었다. 여든 후반부터는 시력이 점차 약해서 사물을 자세히 보기 어려워지자, 점토를 이용한 도자기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1986년 사망한 오키프는 그녀의 유언대로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뉴멕시코 고스트 랜치 근처에 한줌의 흙으로 뿌려졌다. 그녀가 남긴 초월적인 시각방식의 작품들은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소개하며 극사실주의와 팝아트 등 미국의 현대 미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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