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곳간

[스크랩] 고난주간...그리고 말러의 교향곡 "부활"

tlsdkssk 2016. 4. 22. 09:14







사진을 찍겠다고 지난 주말 찾아간 사막,

남가주는 도심을 벗어나면 온통 사막입니다.

사방을 돌아봐도 바위들과 모래와 가시덤불과 바람 뿐...


그나마 겨울철에 비가 내려서 

황량하기 그지 없는 너른 모래 사막 위에

누가 심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았을 터이지만

야생화들이 곱고 예쁘게 피어서

세찬 바람에 마구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야생동물들도 많이 서식하지만 별로 눈에 띄지는 않더군요.

그리고 산...

장엄하게 멀리서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하다보니 참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됩니다.

보이는 것을 렌즈에 담는 것이 사진寫眞일진데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담고 싶기도 하답니다.

야생화들을 흔드는 거센 사막의 바람을 담고 싶기도 하고

그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듯한 다정한 목소리들도 담고 싶고

조그만 일에도 쉽사리 흔들려 휘청거리는 내 마음을 담고 싶을 때도 있답니다.











우리네 인생사... 참 그렇습니다.

고뇌하며 방황하던 젊은 시절도 다 지내고 이제 살 만큼 살았다 싶은데

감정이나 감성은 늙지도 않는 것인지 아직도 때로는 기쁘고 즐거워 크게 웃기도 하고

때로는 행복에 겨워 마음이 교만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슬퍼서 남 몰래 울기도 하고 

때로는 아픈 상처로 괴로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외로워서 우울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요한 시간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죄들이 들어있는지,

죄가 죄인 줄 알면서도 외면하기도 하고 합리화 시키기도 하고...


그러므로 혼탁해진 마음을 안고 겨울바다를 찾아가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시린 바람에 나를 씻어내고 싶어지기도 하였고...

사막에 갔을 때는 사막 어딘가에 나 자신을 버려 버리고 싶기도 하였지만

이도 저도 아무 것도 못하고 갈등은 여전하여 괴롭기만 합니다.


그래도 매년 이맘 때 쯤 고난주간이 다가오면

이제까지 나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고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존재 앞에

내 모습 그대로 숨기지도 못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갑니다.

방탕하여 아버지의 집을 떠나 헤메이던 탕자가 가진 것을 다 탕진하고

돼지우리에서 쥐엄열매를 먹으며 지내다가

비로서 그립고 따뜻한 아버지의 집, 아들을 나무라지도 아니하시고

잔치를 벌려 반겨주시는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듯이...


다시 맞이하는 고난주간,

부끄러운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 5-6)


*****










지난 2014년 1월 20일에 이태리의 볼로냐에서 81세로 타계한 이태리출신 세계계적인 지휘자

Caludio Abbado(1933 - 2014)가 지휘하는 Lucerne Festival Orchestra와 합창단의 연주로

구스타브 말러 (Gustav Mahler, 1860 - 1911)의 교향곡 2번 '부활' 'Die Auferstehung'입니다.


Gustav Mahler: Symphony No. 2 "Resurrection" 

Recorded live at the Lucerne Festival, Summer 2003
Culture and Convention Centre Lucerne, 21 August 2003

Eteri Gvazava - soprano
Anna Larsson - mezzo-soprano
Orfeón Donostiarra
José Antonio Sainz Alfaro - chorus master
Lucerne Festival Orchestra
Claudio Abbado - conductor

1:18   I. Allegro maestoso (21:10)
22:26 II. Andante moderato (9:24)
32:18 III. [Scherzo] In ruhig fließender Bewegung (11:18)
43:48 IV. Urllicht. Sehr feierlich, aber schlicht (5:05)
48:42 V. Im Tempo des Scherzo. Wild herausfahrend - "Auferstehn" (37:25)




말러는 1888년에 그의 첫번째 교향곡 1번 '거인'을 작곡한 후 곧 이어서

교향곡 2번 작곡을 시작하면서 교향곡 1번에서의 주인공 '거인'의 죽음을 구상하며

단악장의 교향시 '장례식'이라는 곡을 작곡했는데

안타깝게도 '장례식'을 작곡한 다음 해 1889년에 그는 가족의 잇달은 죽음을 경험합니다. 

2월에 아버지 베르하르트가, 10월에는 어머니 마리가,

그리고 사랑하는 여동생이 뇌종양으로 그의 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8년 뒤 1907년에 그의 큰 딸 마리아의  죽음도 맞이합니다. 

죽음은 그의 일생을 통해 가장 큰 슬픔을 안겨준, 극복할 수 없는 명제였던 것같습니다. 

실로 우리 인생 어느 누구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그러나, 교향곡 '부활을 작곡한 말러는 결코 죽음에 패하지 않았습니다.

거인의 죽음을 생각하며 작곡한 '장례식'은 교향곡 '부활'의 1악장이 되었고

독일의 시인 클로프슈토크(1724 - 1803)의 시 '부활'에서 영감을 받아

부활의 소망으로 힘을 얻어 마지막 4악장과 5악장을 완성하여

그토록 그를 괴롭히던 죽음을 딛고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말러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에 큰 영향을 받아 이 교향곡 2번에 처음으로

성악과 합창을 넣었으며 여러가지 시련을 겪느라 곡을 완성하기까지 6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더 나아가서 음악으로 표현한 것을 듣는 감상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교향곡의 각 악장마다 음악해설노트를 아래와 같이 썼다고 합니다.


*1악장:  우리는 매우 사랑했던 한 남자의 무덤 앞에 서 있다. 

우리는 그의 이승에서의 삶과 분투, 고통, 포부에 대해 묵상한다. 

이윽고 눈앞에 드리워진 덮개와도 같은 나날의 혼돈과 마음 고생을 걷어내는 이 엄숙하고 감동적인 순간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만큼 장엄한 목소리가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일상의 망상에 가려 늘상 지나치던 그 목소리는 묻는다. 

"죽음 다음은?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는가?

이 모두가 헛된 꿈인가 아니면 우리의 삶과 죽음은 의미있는 것인가?"

계속 살아가야겠거든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2악장:  떠나간 소중한 사람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그의 젊음과 잃어버린 순수함에 대한 슬픈 회고


*3악장:  의심과 부정하는 마음이 그를 사로잡는다.  그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길을 잃고

어린이의 직관력과 사랑만이 줄 수 이는 통찰력을 잃는다.  그는 자기 자신도 신도 버린다. 

세상도 삶도 거짓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존재와 진화의 모든 양상에 대한 염증이 그를 거세게 사로잡고 고문한다. 

그는 마침내 절망의 울음을 터뜨린다.


*4악장:  소박한 믿음을 담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그의 귓전에 울린다:

'나는 신에게서 왔고 신에게로 돌아가리라. 

신은 나에게 빛을 내리시어 영원히 축복 받은 삶으로 안내하시리라.'


*5악장:  '절망의 외침'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공포스러운 질문과 마주치고 분위기는

제3악장의 끝과 똑같다. 호출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종말이 닥쳐 최후의 심판이 준비되고 가장 중대한 날의 공포가 우리를 엄습했다. 

땅이 진동하고 무덤이 활짝 열리며 죽은 자는 일어나 끝없는 행렬을 따라 앞으로 전진한다. 

이 땅의 가장 높은 자와 낮은 자, 왕과 거지, 정의와 불의가 다 함께 밀려 나아간다. 

'전율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의 끝없는 행렬'이다.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두려움에 찬 외침이 귓전에 들린다. 

울부짖음이 점점 격렬해진다.  영원한 성령이 다가올수록 모든 감각과 의식을 잃어간다. 

 '최후의 나팔'이 울린다.  요한계시록의 나팔 소리는 '모든 육신과 영혼'을 향해 외친다. 

이어지는 섬뜩한 정적 속에 저 멀리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이승의 삶을 상기시켜주는 최후의 떨리는 메아리이다.

'일어나라 그대여 일어나라'라는 성인과 천사들의 부드러운 합창 소리가 들려온다. 

영광의 하느님이 모습을 드러낸다.  형언할 수 없이 부드러운 빛이 우리 가슴에 스며든다. 

고요 속의 행복이다.  그리고 보라, 심판은 없다.  죄인도 의인도 없다.  대단한 것도 하찮은 것도 없다. 

징벌도 보상도 없다.  벅찬 사랑의 느낌이 우리로 하여금 앎과 삶의 기쁨에 젖게 한다.

'말러, 그 삶과 음악' (스티븐 존슨 지음, 임선근 옮김)에서




*****


세기의 지휘자 브르노 발터가 스승인 말러를 찾아 슈타인바흐 호숫가를 방문했을 때(1895년),

발트가 창 밖에 펼쳐진 아름다운 호수와 멀리 보이는 산이 아름답다고 감탄을 하자

말러는 자신의 스코어를 가르키며

"발터군, 구태여 밖을 내다볼 것 없네. 그런 것들은 이미 이 속에 다 들어있네"라고 했다지요?


그래요, 위의 해설노트를 읽다 보니 이 교향곡 안에 

어차피 죽음을 선고 받고 태어난 우리네 인생의 모습이 다 들어있는 것같고

마치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을 펼쳐 놓은 듯한 5악장...

'일어나라, 그대여 일어나라' 는 마지막의 합창으로

말러는 1악장에서 제시한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의 답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일어나라, 그대여 일어나라

내가 받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리

나는 살기 위해 죽으리라

부활하리라

내 영혼이여 너는 일순간 다시 부활하리라

그대가 받은 고통

그것이 그대를 신에게 인도하리라!"


마지막 이 합창은 얼마나 감격적인지,

얼마나 새 힘을 주는지...


나는 왜 그동안 말러에게 다가 가지 못하고 있었을까?

이토록 아름답고 심오한 음악을 왜 외면하고 있었을까...

'말러, 그 삶과 음악'이라는 책 한 권을

그의 음악을 들어가면서 읽고 있자니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

그러나 이제야 조금씩 들리고 희미하게 나마 보이고 있답니다.

그의 음악과 삶이...


"죽음 다음은?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는가?

이 모두가 헛된 꿈인가 아니면 우리의 삶과 죽음은 의미있는 것인가?"

계속 살아가야겠거든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cello911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