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보바리 부인

tlsdkssk 2015. 12. 12. 06:05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은 서울대 측에선 민음사에서 출간한 ‘마담 보바리(2000년)’를 추천한다. 필자는 청목에서 출간한 ‘보바리 부인(2006년)’을 비교해 읽었다. 오영주의 ‘마담 보바리’는 플로베르의 삶과 소설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게 해준다.(보봐리 표기는 ‘보바리’로 통일)

 

“나는 ‘마담 보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플로베르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담 보바리’는 정녕 위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장 폴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사르트르는 1972년 무려 3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가문의 백치’라는 제목의 책을 내놓아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그 책의 분석 대상이 평론가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책은 구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년)에 대한 전기적 비평서였다. 플로베르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플로베르를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르트르가 쓴 플로베르 연구’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친구 뒤캉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뒤캉은 당시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들라마르 사건’을 소재로 작품을 써 보라고 플로베르에게 권유했다.

 

들라마르는 플로베르 부친의 제자였다. 부친은 플로루앙 시립 병원에서 외과 과장으로 일했는데 그의 제자 중 들라마르라는 의학도가 있었다.

 

그는 의사 면허를 얻은 후 노르망디의 벽촌에서 개업하고 델핀이라는 미모의 여성을 아내로 맞이했다. 델핀은 평범한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염증을 느껴 정부를 두고 남편 모르게 돈을 빌려 쓰다 결국 음독자살을 한다. 아내의 부정을 안 들라마르는 비탄 끝에 자살한다. 이게 ‘마담 보바리’의 큰 줄거리가 됐다.

 

뒤캉은 또한 플로베르가 낭만주의에 경도돼 있어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는 여행이 필요하다고 권유했다. 플로베르는 28살 때인 1849년 11월부터 1851년 6월까지 이집트와 아시아로 여행을 했다. 뒤캉도 동행했다. 플로베르는 이 여행을 통해 현실 세계로 눈을 돌리면서 사실주의 기법에 눈을 뜨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플로베르는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집필에 몰입했다. 한 유부녀의 불륜과 음독 사건이라는 뼈대에 살과 혼을 불어넣기 위해 무려 6년여에 걸친 모진 창작의 고통을 거쳤고 드디어 1857년 ‘마담 보바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어쩌면 평범해 보이는 줄거리지만 이 소설은 급기야 ‘보바리슴’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이른바 사실주의 문학으로 우뚝 섰다. 결국 플로베르의 사실주의는 뒤캉과의 우정과 여행의 산물이라고 하겠다.

 

엠마는 그녀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의 현실보다 ‘다른 곳’에 더 많이 집착한다.

 

“그녀를 가까이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권태로운 전원, 우매한 소시민들, 평범한 생활 따위는 이 세계 속에서의 예외, 어쩌다가 그녀가 걸려든 특수한 우연에 불과한 반면, 저 너머에는 행복과 정열의 광대한 나라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생각됐다.” (제1부 제9장)

 

그 ‘다른 곳’ 혹은 ‘저 너머’의 현실이 바로 엠마가 꿈꾸는 몽상의 나라다. 수도원에서 읽은 소설책이며, 그림 속에 나오는 풍경이며, 그가 당장에 갈 수 없는 저 화려한 도시 ‘파리’ 같은 곳이다. 무엇보다 엠마는 현재보다 미래나 과거에 더 집착한다. 미래는 모든 욕망과 환상의 시간이다.

 

“아! 왜 결혼 같은 걸 했지?”

 

엠마의 불만은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결혼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때마다 엠마는 ‘우연한 다른 인연으로 딴 남자를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수도원 시절의 친구들은 ‘결혼을 해서 도회지에 살며 거리의 소음이며 극장의 떠들썩한 분위기 그리고 무도회의 휘황한 불빛 밑에서 마음이 부풀고 관능이 충족되는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반면 지금 자기의 생활은 북쪽 창밖에 있는 창고처럼 쓸쓸하다고 믿는다. 권태라고 하는 지긋지긋한 거미가 엠마의 마음 네 구석에 거미줄을 친 것이다.

 

그래서 엠마는 욕망이 좌절된 현재보다 욕망을 꿈꾸는 미래로 향한다. 이런 욕망하는 엠마를 두고 고티에는 보바리슴이라는 용어를 썼다. 보바리슴이란 현실적인 자아가 이상적인 자아를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상적인 자아가 현실적인 자아의 덫에 걸려 숙명적으로 난파하고 마는 인간의 모습을 말한다.

 

이 소설에서 엠마의 성격을 형성하게 한 것 중의 하나가 책이다.

 

“발코니 난간에서 짧은 외투를 입은 청년이 허리띠에 주머니를 단 흰옷의 소녀를 껴안고 있는 모습이거나 금발을 어깨 위에 늘어뜨린 영국 귀부인이 둥근 밀짚모자를 쓰고 맑고 커다란 눈으로 보고 있는 초상화…수도원 기숙사에서 이런 그림들에 엠마는 도취했다.”

 

엠마는 수도원 기숙사에서부터 닥치는 대로 낭만주의 소설을 읽고 그림책을 보면서 환상 가득한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녀는 중세풍의 아치문 아래서 돌 위에 턱을 괴고 들판 저 멀리서 흰 깃털을 꽂은 투구를 쓰고 흑마를 타고 달려오는 기사를 매일 기다리는 공주처럼 어느 오래된 궁성에서 살고 싶었다.”

 

마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연상시킨다. 기사도 소설에 탐닉한 돈키호테는 유토피아 구현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기사가 돼 풍차로 달려든다. 낭만주의 연애소설에 취한 엠마는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며 욕망을 충족시켜 줄 대상을 찾아 일탈을 꿈꾼다. 플로베르는 너무도 속물적인 이 여주인공의 꿈의 내용을 통해 불륜 심리의 원형적인 구조를 드러냈다.

 

‘돈키호테’와 마찬가지로 ‘마담 보바리’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영원한 투쟁을 보여준다. 다만 돈키호테는 답답한 현실의 일탈을 위한 세계사적인 이상을 품었지만, 엠마의 이상은 답답한 일상의 일탈을 위한 개인적인 이상인 게 달랐을 뿐이다.

 

‘마담 보바리’에서는 ‘불륜 드라마’의 고전적 수법을 엿볼 수 있다. 백마 탄 왕자를 꿈꾸던 엠마는 로돌프가 “엠마!”라고 이름을 불러주면서 “보바리 선생의 부인, 그것은 당신의 이름이 아닙니다”라고 속삭이자 그만 불 같은 사랑에 휩싸인다. 엠마는 “애인이 있다!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며 마치 승리자처럼 가슴 부풀어 한다.

 

결국 아내의 ‘깊은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 행복해했던 샤를르는 그의 마지막 대사인 ‘운명의 장난’처럼 아내의 불륜이라는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고 만다. 그는 아내가 불륜의 밀회를 즐기던 벤치에 앉아 삶을 마감한다. 어린 딸은 고모에 의해 공장에 보내진다.

 

아이러니한 것은 엠마가 로돌프와 레옹과의 불륜 끝에 자살에 이르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따지고 보면 사랑(이상) 때문이 아니라 돈(현실)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엠마가 치른 죄는 간음이 아니라 무절제한 낭비였다. 그녀의 낭비벽은 바로 부르주아 사회의 타락상에 대한 플로베르의 고발이기도 하다. 그리고 엠마의 이상 때문에 엠마 딸의 현실은 엉망이 돼 버렸다.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는 바로 나다”라는 말로 더 유명하다. 젊은 날의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가 보여준 낭만적 경향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젊은 날을 플로베르는 ‘빨갛게 들뜬 낭만주의자’였노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욕망하며, 현실보다는 환상을 꿈꾸던 젊은 날의 플로베르는 바로 마담 보바리였던 것이다.

 

즉 플로베르는 엠마처럼 그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꿈과 현실 생활을 조화시킬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평생 독신으로 지낸 것도 그 자신이 바로 사랑과 결혼, 현실과 이상의 투쟁에서 패배한 엠마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그가 “마담 보바리는 바로 나다”라고 한 이유였던 것이다. 꼭 플로베르만이랴. 엠마 혹은 샤를르는 지금 여기의 누군가이기도 할 것이다.

 

 

최효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