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시인과 소설가/오탁번

tlsdkssk 2014. 9. 16. 10:38

시인과 소설가

                           오 탁 번

어느 날 거나하게 취한 김동리가

서정주를 찾아가서

시를 한 편 썼다고 했다

시인은 뱁새눈을 뜨고 쳐다봤다

  - 어디 한 번 보세나

김동리는 적어오진 않았다면서

한 번 읊어보겠다고 했다

시인은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우는 것을

다 읊기도 전에

시인은 무릎을 탁 쳤다

 -기가 막히다! 절창이네 그랴!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운단 말이제?

소설가가 헛기침을 했다

 - ‘꽃이 피면’이 아니라 ‘꼬집히면’이라네!

시인은 마늘쫑처럼 꼬부장하니 웃었다

 - 꼬집히면 벙어리도 운다고?

예끼! 이 사람! 소설이나 쓰소

대추알처럼 취한 소설가가

상고머리를 갸우뚱했다

 - 와? 시가 안 됐노?

 

그 순간

시간이 딱 멈췄다

1930년대 현대문학사 한 쪽이

막 형성되는 순간인줄은 땅뜀도 못하고

시인과 소설가는

밤샘을 하며

코가 비뚤어졌다

찰랑찰랑 술잔이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