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스크랩] 그 바람을 걸어야 한다/ 신용목

tlsdkssk 2014. 8. 20. 05:44

 

 

신용목/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갈대 등본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러진 촉 끝처럼 박혀 있었다

 

  휘어진 몸에다 화살을 걸고 싶은 날은 갔다 모든 謀議가 한 잎 석양빛을 거느렸으니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다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초승의 낮달이 그리는 흉터처럼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家長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은 먼 곳에서 태어나는 줄 알았다

태풍의 진로를 거스르는 적도의 안개 낀 바다나 계곡의 경사를
단숨에 내리치는 물보라의 폭포
혹은 사막의 천정 그 적막의 장엄
아랫목에 죽은 당신을 누이고 윗목까지 밀려나
방문 틈에 코를 대고 잔 날 알았다
달 뜬 밖은 감잎 한 장도 박힌 듯 멈춘
수묵의 밤 소지 한 장도 밀어넣지 못할 문 틈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고 고 고 좁은 틈에서 달빛과 섞이느라 바람을 만들고 있었다
육체의 틈 혹은 마음의 금
그 날부터 한 길 복판에서 간절한 이름 크게 한 번 외쳐보지도 못한
몸에서도 쿵쿵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나와 나 아닌 것 삶과 삶 아닌 것이 섞이느라 명치끝이 가늘고 번져 있었다

 

 

 

 

새들의 페루


새의 둥지에는 지붕이 없다
죽지에 부리를 묻고
폭우를 받아내는 고독, 젖었다 마르는 깃털의 고요가 날개를 키웠으리라 그리고

순간은 운명을 업고 온다
도심 복판,
느닷없이 솟구쳐 오르는 검은 봉지들
꽉 물고 놓지 않는
바람의 위턱과 아래턱,
풍치의 자국으로 박힌

공중의 검은 과녁, 중심은 어디에나 열려 있다

둥지를 휘감아도는 회오리
고독이 뿔처럼 여물었으니
하늘을 향한 단 한 번의 일격을 노리는 것
새들이 급소를 찾아 빙빙 돈다

환한 공중의, 캄캄한 숨통을 보여다오! 바람의 어금니를 지나
그곳을 가격할 수 있다면

일생을 사지 잘린 뿔처럼
나아가는 데 바쳐도 좋아라,
그러니 죽음이여
운명을 방생하라

하늘에 등을 대고 잠드는 짐승, 고독은 하늘이 무덤이다, 느닷없는 검은 봉지가 공중에 묘혈을 파듯
그곳에 가기 위하여

새는 지붕을 이지 않는다

 

 

 

 

 

     산수유꽃 

     

데인 자리가 아물지 않는다
시간이 저를 바람 속으로 돌려보내기 전 가끔은 돌이켜 아픈 자국 하나 남기고 가는 저 뜨거움
물집은 몸에 가둔 시간임을 안다

마당귀에 산수유꽃 피는 철도 독감이 잦아 옆구리에 화덕을 끼고 자다 나는 停年이 되어버렸다

노비의 뜰에나 심었을 산수유나무
면도날을 씹는 봄 햇살에 걸려 잔물집 노랗게 잡힐 적은 일없이 마루턱에 앉아 동통을 앓고 문서처럼 서러운 기억이 많다

한 뜨거움의 때를 유배시키기 위해 몸이 키우는 물집 그 수맥을 짚고 산수유가 익는다고 비천하여 나는 어깨의 경사로 비탈을 만들고 물 흐르는 소리를 기다리다 늙은 것이다

시간의 문장은 흉터이다 둑 위에서 묵은 편지를 태웠던 날은 귀에 걸려 찢어진 고무신처럼 질질 끌려다녔다 날아간 연기가 남은 재보다 무거웠던가
사는 일은 산수유 꽃빛만큼 아득했으며

나는 천한 만큼 흉터를 늘리며 왔고 데인 데마다 산수유 한 그루씩이 자랐다

 

 

 

   다비식

 

바위 위에 바위보다 한 발은 더 바다로 나가 석양볕에 늙은 뼈를 태우는 해송을 본다

 

서해 변산
물 위에,
하늘의 다비식

 

가지 저 끝에 타올랐으니 그래서 어두웠으니
휘어진 허리 감고 사리 같은 달과 별 더러 나오리

 

날마다, 그러나 파도 끝 붉게 젖는 때

 

또 한 줄 바람을 긋고 갈라지는 채석강

 

신용목

1974년 경남 거창 출생.

서남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성내동 옷수선집 유리문 안쪽」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출처 : 에세이스트
글쓴이 : 조정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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