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스크랩] 죽은 시인의 사회 / 최인호

tlsdkssk 2013. 1. 10. 10:33


 

죽은 시인의 사회


                                                                                     최인호 (1945 ~ )

 

 

 

 



 K형, 나는 후배작가 중에서 K형을 눈여겨보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비록 평소에 작가들과 어울리지 않아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K형의 작품만은 일부러 찾아 읽고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K형의 작품 속에는 독특한 재능 같은 것이 번뜩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나는 질투심을 느낄 수 있는 젊은 작가의 작품을 만나게 되기를 고대해 왔었습니다.

 마치 74세의 노인 괴테가 보헤미아의 온천지대에서 19세의 소녀 울리케 폰 레베초프를 본 순간 첫눈에 반해 구혼까지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괴테가 울리케에게 매혹 당한 것은 애욕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그 눈부신 젊음의 생명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울리케와 같은 싱싱한 생명력을 가진 젊은 작가를 고대해왔던 것입니다.

 K형, K형에게는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보입니다. 따라서 나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가지고 K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내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가지고 K형을 지켜보고 있다고 표현한 것은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많은 작가들의 전철을 K형도 똑같이 밟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입니다.

 따라서 K형에게 선배작가로서 몇 가지의 충고를 해드릴까 합니다.

 K형.

 니체는 `모든 조직은 광기에 젖어 있다` 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문단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지는 마십시오. 그곳은 작가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 아니라 이해상관으로 얽매인 먹이사슬의 광기 어린 조직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물론 문단에는 몇 개의 조직이 있고, 그곳에 안주하면 조직의 보호를 받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K형이 소설을 쓰면 그곳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기대 이상의 평가를 받는 특혜를 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조직깡패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K형이 그들이 운영하는 출판사를 골라 다니면서 책을 출판한다면 K형의 소설은 순수문학이라는 처녀성을 보장받으며 상업적 성공까지 거두는 이중의 혜택을 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결국 순결성을 증명하기 위해 처녀막 재생수술을 받는 교묘한 속임수인 것입니다.

 나는 K형이 가능하면 `죽은 시인의 사회` 인 문단에 휩쓸리지 아니하여서 소위 영향력을 가진 문학 권력자들에게서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져 있길 바랍니다.

 문학상을 받는 것은 작가의 이미지를 높이고 특히 신인작가들에게는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문학상을 받기 위해 어느 영향력 있는 사람을 의식하거나 평론가들과 어울리려 하지 마십시오.

 문학을 학문화시켜야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평론가들로부터 차라리 스스로 소외돼 K형의 작품에 대해 말하는 자유를 박탈하십시오.

 문제는 K형이 좋은 작품을 쓰느냐, 쓰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좋은 작품을 쓰기보다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로 인정받으려는 그 어떤 홍보적 방법에도 연연하지 마십시오.

 신문에 이름을 한 줄 내기 위해 담당기자들과 우정을 유지하지 마십시오.

 고독과 잊혀지는 것이 무서워서 끊임없이 모여 문학 얘기를 하는 것은 사교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K형의 창작정신에는 치명적인 독이 될 것입니다.

 그들과의 대화는 객장에 앉아서 하루 종일 주식 시세를 떠들어대는 개미군단의 아우성과 같습니다. K형, 차라리 잊혀지십시오.

 그리하여 오직 고독과 마주 서십시오. 고독 속에서 절대의 독자인 자신과 마주 서십시오.

 그래야만 K형의 문학은 그 무엇보다 단단하고 자유의 광채를 뿜어내는 금강석으로 승화될 것입니다.

 1890년 7월 29일 오전 1시30분. 가슴에 피스톨을 쏴 자살한 고흐의 주머니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들어있었습니다.

 "진실로 나는 그림으로밖에는 그 어떤 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

 K형. 우리는 소설을 말하는 문학가가 아니라 고흐의 말처럼 소설로밖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말할 수 없는 운명적인 소설가임을 우리 함께 잊지 맙시다.

 

 

 

최인호 : 소설가. 극작가. 작품집으로 소설집으로 〈별들의 고향〉(1973)·〈우리들의 시대〉(1973)·〈내마음의 풍차〉(1975)·〈천국의 계단〉(1979)·〈고래사냥〉(1983)·〈잃어버린 왕국〉(1986) 등을 펴냈고, 수필집으로 〈누가 천재를 죽였나〉(1978)·〈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1987)·〈길없는 길〉(1993) 등이 있다. 

 


 

이 글은 2001년 6월 2일자 중앙일보 7쪽에 발표된 글이다. K라는 후배 유명작가에게 쓰는 편지 형식을 띤 이 수필은 한국문단에 만연한 파벌주의와 상업주의에 대해서 준엄하게 경고를 하고 있다. 재능과 싱싱한 생명력을 가진 젊은 작가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길을 예시하면서 그것은 바로 조직깡패들이나 하는 짓거리라고 선을 긋고 있다.

 

 몇 달 전 모 유명 여류시인의 블로그를 우연히 발견했다. 십 년전 반복되는 건조하고 딱딱한 직장생활을 하던 내게 다시 문학을 접하게 해주었던 계기가 된 것은 그 시인의 시집과 수필집이었기에 금년에 새로 낸  시집을 구입해 읽으면서 반가움은 배가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해당 블로그의 방명록에다 신간 시집에 대한 소회를 적었는데 답글이 달렸다. 시인의 답글은 ‘금번 시집은 광고를 치지 않아서 걱정을 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기쁘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시인은 그런 의도로 한 이야기가 아니지만 이 시대에 문학 작품의 가치는 작품 자체보다는 대형서점과 신문, 방송, 잡지 등의 광고에 좌우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거기에다 유명 문학평론가나 메이저 신문사의 문화담당 기자의 호평이 곁들인 기사가 붙고 대형서점의 순위가 조작되면 단번에 베스트셀러가 되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책을 구입하고 읽는다.

 위의 수필에서 최인호 작가는 이러한 구조의 문단을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칭하면서 문학상을 받는 것은 작가의 이미지를 높이고 특히 신인작가들에게는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지만 그 문학상을 받기 위해 어느 영향력 있는 사람을 의식하거나 평론가들과 어울리려 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더욱이 문학을 학문화시켜야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평론가들로부터 차라리 스스로 소외돼 그들로부터 자유로운 작품을 쓸 것을 주문한다. 이유는 작가의 존재 이유는 좋은 작품을 쓰느냐, 쓰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이 글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이  빛난다.

 

‘오직 고독과 마주 서십시오. 고독 속에서 절대의 독자인 자신과 마주 서십시오.

 그래야만 K형의 문학은 그 무엇보다 단단하고 자유의 광채를 뿜어내는 금강석으로 승화될 것입니다.‘

 

 비단, 문단이라는 집단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부분이 이렇게 조직적으로 흐려져 있다. 화엄경에 나오는 '인다라의 구슬'처럼 서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한없이 가지려 하려고 할 게 아니라,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며 세상살이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주는 주옥과 같은 글이다. 그런데 최인호 작가가 말하는 후배 소설가 k형은 누구일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출처 : B l u e & B l u e
글쓴이 : 언덕에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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