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혼자 분주하다 / 이기철
저녁이 되면 먼 들이 가까워진다
석양이 만지다 두고 간 산과 나무들을
내가 대신 만지면
추억이 종잇장 찢는 소리를 내며 달려온다
겹겹 기운 마음들을 어둠 속에 내려놓고
지워내지 못한 기억으로 얽은 홀방에서 혼자 잠들면
발끝에 스미는 저녁의 체온은 따뜻하다
오랫동안 나는 보이는 것만 사랑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도 사랑해야 하리라
내 등뒤로 사라진 어제,
나 몰래 피었다 진 들꽃
가을을 남기고 떠나는 철새들의 영혼
한 번도 이름 불러보지 못한 사람의 이름
오래 만지다 둔 낫지 않은 병,
추억은 어제로의 망명이다
너무 가벼워서 가지조차 흔들리지 않는 집
그렇게 생각하니 내 생이 아려온다
짓밟혀서도 다시 움을 밀어 올리는 풀잎
침묵의 들판 끝에서
추억은 혼자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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