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산수유

tlsdkssk 2010. 3. 29. 18:57

산 수 유

남도땅 구례 근처에 금빛 나는 거북송이 있다하여, 불원천리 길을 물어 찾아갔었다. 산림청의 모 인사가 자기도 소문만 요란하게 들었고, 직접 본 적은 없으니 한 번 가보라고 추천을 한 것이다.

봄기운이 아직 이른 초순이지만 때는 춘삼월, 광한루를 구경하고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재를 넘어 도착한 것은 한낮이었다.

“금 거북송이 이 댁에 있다하여 찾아왔습니다. 어디에 있는지요?”

집 주인인 듯한 아낙은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하였다.

“ 거기 있잖아유.”

바로 옆, 발치에 서서 그 ‘금 소나무’를 알아보지 못한 것에 미안해진 나는 더 성의 있게 나무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몇 군데 시들시들하게 황엽이 진 빛깔과 땅에 깔릴 듯이 퍼져 앉은 그 모양을 두고 금빛 나는 거북송이라고 하는 것은 심한 과장이었다. 소문이 소문을 낳은 결과였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그 집을 나서면서 먼 산의 잔설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나는 문득 얼음 풀린 개울물 흐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 개울 양편에는 고목의 행렬이 줄지어 섰고 고목들은 꽃잎들을 온몸에서 뿜어내고 있었다.

화사하게 쏟아지는 봄볕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연한 황금빛 꽃의 축복, 개나리이기에는 아직 이르고 색상도 좀 연한데… 도대체 저것이 무슨 꽃일까.

산수유! 이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화수목(花樹木)과의 만남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수유’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안존한 꽃잎들, 작디작은 꽃잎들이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모여 앉은 모습이란 기대도 실망도 처음부터 허용하지 않는 겸허함 바로 그것이었다. 세상사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지만 때로 텅 빈 마음에 넘치는 감격이 잦아드는 것이 인간사 아니던가.

그 날의 인연으로 우리 회사에는 산수유가 심어졌다. 황량한 공장부지에 조경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중에 처음의 조경설계에 없던 산수유를 서너 주씩, 또는 일여덟 주씩 군식(群植)으로 세 군데에 심은 것이다. 거북송 대신으로 인연을 맺게 된지 어언 7년여, 나무 심어 10년은 잠깐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들은 이제 20년생이 넘는 수령으로 성장하여, 그 날 구례에서 해후한 고목의 자태를 닮겠다는 결의라도 가진 듯 제법 늠름한 운치를 엿보이게 한다.

산수유! 설한 속에서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어느 꽃보다 먼저 봄소식을 알리면서 시샘 없는 평화와 겸손함을 보여주는 꽃. 그 예쁘고도 작은 꽃잎들을 산형(傘形)으로 30여개씩 뭉쳐 터뜨리며 꽃피우고 있으면, 그때사 개나리는 선수를 빼앗겨 분발이나 한 듯이 서둘러 꽃망울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개나리가 함성을 지르며 봄을 찬양하겠다고 나서면 깨끗이 그 자리를 양보하고 봄바람에 흩어지는 산수유의 꽃잎들, 보름 남짓 봄을 찬미하던 수유의 온유한 모습은 겸양지덕까지 보이며 사라지는 것이다.

개나리가 번식력이 강하여 아무 곳에서나, 척박한 토질에서도 잘 자라는 것과 달리, 산수유는 햇빛이 잘 들고, 토심이 깊고 비옥적윤(肥沃適潤)한 곳, 그러면서도 한적한 곳에서 피는 곳이다.

또한 산수유는 낮은 둥치에서부터 우산살처럼 여러 갈래의 가지를 뻗는 형태를 취하지만, 나무의 기품을 탐하여 밑둥치의 직경이 30cm에 이르는 수목이 되도록 성장한다.

꺾꽂이만 해두어도 꽃망울을 터뜨리는 개나리가 민초(民草)의 꽃이라면, 산수유는 내한성(耐寒性)에서만은 민초보다 더 강인하면서도 매사에 품위를 지키려드는 선비의 꽃이다.

수유의 열매는 진홍색 핵과(核果)이다. 대추알 손주만한 크기의 열매가 버찌처럼 탐스럽게 송이송이 달리는데, 10월에 완숙한 열매는 백과(百果)가 모두 땅에 떨어져도 창공을 알알이 수놓으며 늦가을의 정취를 돋구어준다.

마침내 첫눈이 내리고, 설화가 피고, 얼어붙은 가지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도 이 빨간 열매는 겨울 하늘을 지키려든다. 단심일념(丹心一念)이다. 삭풍에 몸을 고스란히 내맡기고 떨며, 외로이 겨울을 벗하겠다는 의지, 단심이다.

이렇게 추위를 견디다 동토에 떨어지는 열매는 반드시 다음 또 한해의 겨울을 노천매장 하였다가 봄에 파종하여야 발아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수유의 씨는 그 단단하기가 살구나 복숭아씨보다 훨씬 더하다.

산수유의 온유와 인내, 외유내강의 품성은 깊어가는 가을, 낙엽을 준비하는 그 모습에서조차 예외가 아니다. 찬 서리 내려 산길에 떡갈나무 낙엽들이 푹신거리도록 깔리고, 들판에는 낟가리조차 다 거두어질 때에 복숭아 빛깔로 붕긋하게 물든 수유 단풍의 모습. 그 의연하고도 풍성한 온화함에서 또 한 번 외유내강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도 천천히, 그리도 조금씩 단풍을 준비하려면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강직함이야 오죽할까. 넉넉함 없이 온유가 어렵고, 내강 없이 진정한 외유가 어려울 것일진대… .

내가 가훈을 액자에 담아 우리 집에 건 것은 약 10년 전의 일이다. ‘溫柔忍耐’는 그 가훈 내용 3개 중의 첫 번째 글귀이다.

그 때 내가 ‘온유인내’를 가훈의 하나로 택한 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어서였고 심사숙고한 끝에 정한 것인데, 산수유와 해후하게 된 후 온유인내의 덕목을 산수유에게서 지켜보면서, 인간과 자연의 만남에서도 필연적 만남 같은 게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연의 일치라는 것도 그 내력을 캐가다 보면 필연적 연분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994년 가을 (200x14매)

산수유는 내게 慕緣이라는 自號를 선물하였다. ‘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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