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빈자리

tlsdkssk 2009. 7. 19. 15:00

빈 자 리

결혼식에 갔다. M여사의 장남결혼식이다. 예정시간보다 여유 있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가볍다. 오늘 이 식장에 참석하는 일에 내가 성의를 보이고 있음은 M여사의 남편인 L사장에 대한 마음의 빚 때문이다. 3년 전 그가 홀연히 세상을 떠나버렸을 때 문상을 가지 못한 빚인 것이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관련하여 나는 대학 동창회지의 수필 칼럼에 ‘메시지’라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우리는 한국 경제성장사의 도약기에서 젊음의 열정을 쏟아 부었고, 지금은 성숙기에 접어든 우리나라 경제와 더불어 일하고 있다.

성숙기는 W.Rostow 교수의 경제발전단계설에 있어 제4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제 3기인 도약기를 지나 제5기인 대량소비단계를 준비하는 시기이다.

그의 학설을 우리 인생과 결부시켜 보면 재미있다. 즉 인생을 유년, 소년, 청년, 장년, 노년기로 분류할 때, 경제발전의 도약기는 청년기에 해당하고, 경제발전의 성숙기는 장년기에 해당하며, 대량소비단계는 노년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대량소비단계를 맛보지 못한, 인생에 있어 제4단계에 있는 우리 동문들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 문제란 아무 일 없던 친구가 갑자기 죽었다고 하는, 참으로 어이없는 건강문제인 것이다.

얼마 전 나는 거래처로부터 ‘L모 사장 별세’라는 FAX를 받고 ‘부친인지 모친인지도 안 써 놓았나?’ 하면서 L모 사장 이름 다음에 몇 자가 빠져 있다고 생각하다가. 본인임이 확인된 후에 망연자실한 적이 있다. 삼복더위 속에 필드를 돌 때나 눈 덮힌 설경 속에서 빨간 공을 굴릴 때나 L사장은 늘 건강미가 넘쳐흘렀었다. 그는 나와 같은 나이인 해방동이이다.… “

식장에 차가 도착한 것은 그날 내가 왜 L사장에게 문상을 가지 않았는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것은 불안감과 공포증 때문이었다. 50대 전후의 나이에 갑자기 가버리는 그 ‘준비 없는 죽음들’에 대한… .

나는 혼주인 M여사와 신랑 L군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한 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식장은 매우 호화로웠다. 신부가 입장하였을 때 비누방울이 환상적으로 날아오르고, 아이스카빙이 예단 옆에서 여러 빛깔의 조명을 받으며 회전하는 것이 보기에 좋았다. 덕분에 나는 예식장에 오는 동안 가졌던 무거운 기분을 잊고 예식의 진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어느 한 순간, 앞좌석에 자리한 나의 시야에 양가의 부모석이 똑바로 들어왔다. 나란히 앉은 신부 측 부모의 맞은편에 M여사가 혼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옆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의 자리는 빈자리인 채….

내 눈에 비치는 M여사의 얼굴은 미소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침착함과 의연함에서 오는 미소였다. 하지만 그 미소 속에는 아쉬움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것은 감춰진 애잔함이었다.

그 애잔함은 나에게 낯설지 앉은 것이었다. 30여년을 혼자 사신 어머니의 얼굴에서 내가 몇 번 보았던 애잔함, 내 결혼식 날에도 애써 감추시던 것, 바로 그것을 그녀는 감추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빈자리 때문이었다. 저 자리는 L사장이 지금 앉아 있어야 할 자리이고, 내 결혼식 때는 내 아버지가 앉아 계셨어야 할 자리였다.

예식장의 ‘빈자리‘에는 흔히 가까운 친척 중의 한 사람이 앉아 있기는 한다. 특히 신부 측의 경우에는 그러하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빈자리로 아는 사람의 마음은 빈자리인 것이다.

병원에 몇 차례 입원한 적이 있는 나는 건강 문제에 얼마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그 자식의 짝을 지워주는 혼례의 자리에 그가 현직으로 있음으로 하여 많은 하객들이 와 주는 것을 소망하고 있다.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정으로 아버지가 그저 자리만 지켜주는 것도 대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아이들의 결혼식장에 나의 자리를 비워 아내에게 그 외로운 짐을 지우고 싶지 않다. 남편의 사업을 이어 받아 회사 경영을 잘 하고 있다는 M여사에게조차 저 자리는 어쩔 수 없는 슬픔의 자리인 것을… .

내 글 ‘메시지’의 마무리 구절로 생각이 이어진다.

‘현재의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마지막으로 발휘함으로써 인생에서 꽃을 피워야 할 나이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갑자기, 너무 빨리 가버리는 친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과로나 심한 스트레스에서 헤어나지 못하여서는 안 되며, 건강에 관한 한 너무 자신만만할 일도 아니라고 그 메시지는 말하고 있다.

노인이 되어 쇠잔해진 육신으로 죽음을 앞두고 인생의 죄업들을 돌이켜보며 보속(補贖)할 기회를 가짐을, 나의 주관적인 신앙개념에 비추어, 나는 그것을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

 

예식장을 나오는데 투병중인 K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에게 해 줄 말도 생각이 났다. ‘그래, 이렇게 말해주자. 빈자리를 만들지 말라고… . 빈자리는 허전한과 슬픔을 남기며, 일찍 비운 자리일수록 큰 슬픔을 남기는 것이라고… .’

뇌졸중으로 반신을 못 쓰는 것은 노인들에게나 있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우리에게K군은 고혈압으로 경종을 울리며 쓰러졌었고,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의 10년 학우이기에 나는 그에게 문병 가서 진심으로 해 줄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꾸준한 치료와 극기의 재활운동을 통하여 K군은 일어서야 한다. 정상에서 이탈한 자리, 고통스러운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플지도 모르는 그의 몫, 그러나 그는 자기의 자리를 지켜 주어야 한다.

빈자리 옆에 앉은 사람은 그 허전함과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하며, 그 빈자리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허허로운 바람이 불 것이기 때문이다.

                                                         1996년 여름 (200x16)

   세월이 흘러 2008년 원단 안부전화 했는데, 3월에 갔단다.

의사가 "혈압이 많이 좋아졌으니 약을 2알에서 1알로 줄여서 처방전 끊어주겠소." 했단다.

       일주일 후 갔다 3번째 쓰러졌고 전화하니 중환자실... 면회가 안된다 했다. 10여년 전교하여 '요셉'세례명으로 데세 받고 갔다.

** 9년 동안 감기 한 번도 걸리지 않은 비결…. 여름엔 찬 물에 목욕하고도 감기 걸렸다는 사람들에게 “바이엘 아스피린 1알을 아침에 복용하는 게 비결이요!” 했는데, ‘약이 내성이 강해진다는 본문의 말처럼 이번 장마에 감기 걸렸다. 콧물 질 질 질, 재치기 시도 때도 없이… 나는 ’심장 약 보조제‘로 복용하는데, 열은 없고, 기침도 별무이니 감기는 아닌 듯… 어쨌든 감기에 약한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