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스크랩] 간암, 폐암, 인파선 암을 인간 승리로 극복한 청계산 ‘맨발맨’ 이주선

tlsdkssk 2008. 11. 18. 06:13

간암, 폐암, 인파선 암을 인간 승리로 극복한

청계산 ‘맨발맨’ 이주선

 [레이디경향]

기적이라는 걸 믿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웃으며 한 귀로 듣고 흘릴 말이 바로 ‘기적’이라는 단어다. 하지만 기적을 믿었던 이주선씨는 병원에서도 포기한 말기 암을 극복하고, 멀쩡해진 몸으로 산을 활보하고 다닌다. 정말 기적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되는 일을 몸소 겪은 청계산 맨발 산행의 달인, 이주선씨를 만났다.

11년 전 6개월 시한부 인생 선고받아

간암, 임파선암, 폐암, 무려 3개의 암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려야 했던 이주선씨(58). 그가 맨발 산행을 통해 암을 극복했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것도 의사가 “당신이 살 수 있는 확률은 1천분의 1도 안 됩니다”라며 사실상 진료 포기를 선언했던 말기 암 환자가 말이다. 기자는 이 놀라운 소문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10월 어느 날 오후, 청계산을 찾았다. 청계산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이주선씨. 맨발에 등산복 차람의 그를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을 지닌 그는 “멀리서 오느라 수고했다”며 “그럼, 올라갈까요?”라면서 바로 청계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의 집에서 청계산 입구까지는 걸어서 10여 분 거리.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살기 때문에 그동안 맨발로 청계산을 수천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가능했단다. 발 밑에 유리 파편과 거친 돌이 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 잔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고 지나갔다. “조심하세요~!”라고 기자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자 “이 정도쯤은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괜찮다”며 웃어 넘긴다.

밝은 혈색과 천진난만하게 웃는 표정이 과연 죽음 문턱에까지 갔다 온 사람이 맞을까 의아할 정도였다. 그에게 암 판정을 받게 된 게 언제쯤인지 물었더니 “내가 병원을 나온 지가 벌써 11년이나 됐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그는 원래부터 간이 좋지 않았다. 1995년에는 간경화가 악화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2년 뒤 1997년 4월 속이 아파서 다시 병원을 찾았고, 그 사이 간경화는 간암으로 발전해 있었다. 그것도 간암 말기에 혈관에까지 전이가 돼서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이었다.

의사 앞에서 태연하게 모든 설명을 들으며 김씨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다음해인 1998년 5월과 8월에는 잇따라 3cm 정도 크기의 암세포 덩어리가 그의 간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게 시련의 끝이 아니었다. 1999년 3월에는 임파선과 폐에도 암 덩어리가 보인다는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혈관에까지 전이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아도 힘들다”며 “지금 상태로는 항암제밖에 방법이 없는데 항암제가 생명을 연장시킬 수도 있고, 후유증이 심해서 생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으므로 잘 결정하라”고 전했다. 이씨의 주장으로 항암제를 투입했더니, 백혈구 수치가 1,500 이하로 떨어져서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병원에서는 “이런 경우 살아날 확률은 거의 없다.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이주선씨는 “내가 기적의 주인공이 되겠습니다”라며 병원을 박차고 나왔다. 그때가 1999년 6월이었다.

가족과 지인들은 장례 절차 의논

병원에서 나왔지만 막상 어디서부터 무얼 해야 할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문득 집 뒤에 있는 청계산을 바라보니 푸르른 산이 그렇게 웅장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집을 나와 산을 향해 걸었다.

“맨발로 걷게 된 것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그냥 산 속을 맨발로 걸어다니면서 유리 조각에도 찔리고, 밤송이에도 찔리면서 고통을 견뎌야만 이 병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예요. 사실 잘 모르고 시작한 건데, 알고 보니 오장육부가 발로 통해 있기 때문에 자극을 주면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유리와 밤송이에 찔려 피가 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오면 아들이 발에서 밤송이 가시를 빼내면서 일부러 상처를 내기도 했다. 이제 그만 맨발로 다니시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상처가 아물어서 걸을 만하면 다시 맨발로 집을 나섰다. 그의 맨발 산행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지금처럼 건강한 상태에서는 1시간이면 올라갈 거리를 처음에는 무려 백 일이나 걸려서 올라갔던 것.

“청계산 꼭대기 옥녀봉까지 오르는 데는 1시간 정도가 걸려요. 그런데 암세포가 온몸에 퍼진 환자가 무슨 힘이 있어서 산을 오르겠어요. 게다가 병원을 나왔으니 진통제도 못 맞아서 통증이 엄청났거든요. 그래서 이를 악물고 조금씩 올라갔죠. 결국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데 석 달 하고 열흘이나 걸리더라고요. 그런데 그 꼭대기 위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세요? ‘아, 이제 난 살 수 있겠구나였어요’

그가 처음 병원에서 나왔을 때 사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포기 상태나 다름없었다. 가족과 교회 지인들, 친인척들 모두 그가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산 사람을 옆에 두고 장례식 준비를 의논했다. “교회장으로 치러야 하느니 어떠느니” 하면서 말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아직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 그러나 정작 그는 한 번도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신앙이 있어서 그런지 죽음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없었어요. 병으로 잘못된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그냥 살 것 같았어요. 사실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알고 나면 두려움에 못 견뎌서 더 고통스러워해요. 내 친동생도 1998년에 간암으로 죽었어요. 저녁에 무서워서 잠을 못 자더라고요. 그게 병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죽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가족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해요. 환자에게 희망을 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99%가 그렇지 못하더라고요.”

맨발 산행 1년 6개월 만에 암세포 없어져

새벽에 일어나서 해가 질 때까지 그는 청계산을 놀이터 삼아 돌아다녔다. 정신력을 키우기 위해 한겨울에 냉수 마찰도 강행했다. 영하 10~15도의 추운 겨울 날씨에 계곡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서 이를 악물고 냉수 마찰을 했다. 얼음물에서 나오면 바람이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그 정도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면 병과 싸울 수 없다는 생각에 계속 마음을 다잡았다. 주위 사람들도 “암세포 덩어리가 얼어 죽을까봐 무서워서 도망가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어느 날은 그의 기인 같은 행동을 본 꼬마 아이의 제보 때문에 SBS-TV의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MBC-TV의 ‘특종 놀라운 세상’, 경인 방송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을 했다.

산을 오르다가 배가 고프면 집에서 싸간 도시락을 꺼내 먹으면서 자연의 향취를 느꼈고, 피곤이 몰려오면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했다. 봄과 가을에는 소나무 밑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이 들었고, 여름에는 웅덩이 위 나무에 그물 침대를 쳐놓고 시원하게 물 위에서 잠을 잤다. 또 겨울에는 따뜻한 햇볕이 비치는 곳에 침낭을 깔고 잤다.

“내가 웅덩이 위에 그물 침대를 쳐놓고 잠을 자고 있으면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신선놀음’ 하는 것 같다며 무척 즐거워하더라고요.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고, 자연만 느끼면 되니까 마음이 정말 편해지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그렇게 그는 병원에서 이야기한 몇 개월을 훨씬 넘기고도 멀쩡히 청계산을 휘젓고 다녔다. 시간이 지날수록 암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길은 ‘맨발 산행’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낮에는 맨발로 하루 8시간씩 산에서 생활을 하고, 저녁에는 교회에 가서 기도를 했다. 그렇게 생활하기를 1년 6개월이 지난 2001년 2월, 이씨 본인이 느끼기에는 몸이 상당히 가벼워진 것 같은 기분에 병원(국립의료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암세포 덩어리가 한 개도 보이지 않았던 것. 이씨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는 살았구나”를 외치면서 병원을 나왔다.

하지만 그는 맨발 산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 전보다 더 열심히 맨발로 산을 누볐고, 사람들과 즐겁게 인사를 나누었으며, 아무거나 다 열심히 먹었다. 평소 좋아하는 라면과 커피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 마신다.

“지금 와서 내가 현미밥을 해 먹자고 하면, 우리 아내는 힘든 투병생활에도 안 먹었던 현미밥을 왜 먹냐고 투정이에요. 하하하.”

암 환자에게 필요한 건 살 수 있다는 자신감

언론을 통해 몇 번 알려진 덕분에 암 환자들은 그에게 상담 요청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나처럼 자연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는 맨발 산행이 무조건 암을 고쳐준다는 말은 절대 안 해요. 병원에서 치료를 다 받고 나서 퇴원 후 잘 먹고, 자연과 더불어 살라고 말하죠. 저 같은 경우는 병원에서 더 이상 할 게 없었으니까 퇴원을 한 거잖아요. 병원 치료도 받지 않고 산에만 다니는 건 무모한 짓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가 암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살 수 있다’는 자신감과 좋은 체력 덕분이었다. 보통 암 환자들은 제 몸조차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져 있다. 게다가 수술로 인해 장기를 절단할 경우에는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해서 체력이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역시 처음부터 체력이 좋은 건 아니었다. 다만 열심히 노력했을 뿐이다.

또 오후에는 집 근처 양재 맨발 공원에서 사람들을 만나 ‘웃음 치료’를 병행했다. 3년 전에 우연히 한 웃음 치료사의 강의를 듣고 난 후, 웃음이 몸에 얼마나 이로운 일을 하는지 알았다는 것. 그래서 이씨는 앞장서서 웃음 치료 모임을 만들고 매일 하루 2시간씩 사람들과 웃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는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것보다 ‘건강’이라고 강조한다. “수억을 벌면 뭐 하겠어요. 가정에 암 환자가 있으면, 식구들이 모두 암 환자가 되어버리거든요. 젊을 때부터 건강을 열심히 지켜서 서로 건강하게 살아주는 거, 그게 행복인 거죠.”

이씨는 맨발로 제주도 한라산도 등반했고, 청주 속리산에도 갔다 왔다. 교회 산악회에서 한 달에 한 번 산을 다니기 때문에 웬만한 산은 모두 돌아다닌다. 지난 10월 3일에도 맨발로 대관령을 등반했다. 요즘 그의 새로운 목표는 겨울에 알몸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사실 지난 1월 20일에도 평창 횡계에서 열린 알몸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맨발에 반바지만 입고 10km를 뛰고 돌아왔다. 하지만 맨발로 뛴 덕분에 성적은 저조했다. 올겨울에는 꼭 알몸 마라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그의 소망이다.

“사람들은 제가 쉽게 병이 나은 줄 알아요. 아니면 특이한 사람이거나요. 사실 저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거든요. 피눈물을 쏟으면서 살려고 발버둥을 쳤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거죠. 암 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세요? 바로 나 자신을 믿는 거예요(웃음). 난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에요.”

■글 / 김민주 기자 ■ 사진 / 이성훈

출처 : 간암, 폐암, 인파선 암을 인간 승리로 극복한 청계산 ‘맨발맨’ 이주선
글쓴이 : 시보네/54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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