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스크랩] 엄마가 뿔났다

tlsdkssk 2008. 8. 18. 08:34

 엄마가 뿔났다


 수업 시간에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뿔난 엄마가 1년간의 휴가를 얻어 혼자 오피스텔에서 생활한다는 이야기가 토론 주제에 올랐다. 공감한다는 분들이 많았다. 한 수강생은 시집살이가 너무 힘들어 입원까지 했단다. 그러자 병문안 온 시집 식구들이 ‘일꾼이 이러고 있으면 어떡하나!’라고 했단다. 그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단다. 일꾼! 그래, 며느리는 시집에서 일꾼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을까요?” 나는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다들 침묵이었다. ‘무엇이 정답일까’하고 고민하는 눈치였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처참한 일인가. 그러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여자들의 지위가 올라가면서 가정과 사회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남자들은 패장이 되어 일신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러한 세태를 잘 반영해주는 ‘엄마가 뿔났다’는 지금 인기리에 모 TV에서 방영중이다. 나는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런 뿔난 엄마의 반란은 많은 여성분들의 생각일거예요. 하지만 그건 공부하지 않는 여성의 의식에는 맞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처럼 공부하는 사람들은 더 실질적인 여성해방을 이뤄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삶의 해방은 자신의 자리에서 이뤄야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다들 동의하는 표정이었다. 토론은 해방된 삶을 향한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넘어갔다.

 ‘남녀 불평등’은 아주 오래된 인류의 근원적인 문제이다. 평등한 남녀가 평화롭게 살던 원시시절은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종말을 고했다. 농사를 짓게 되자 좋은 땅을 뺏기 위한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은 여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때부터 가부장 사회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일단 힘을 갖게 된 남자들은 사회체제를 남자 위주로 만들어간 것이다. 법과 제도, 도덕으로 무장한 가부장 사회는 철옹성이 되어 버렸다. 드디어 여자의 생존권은 남자 손에 쥐어지게 되었다.

 인터넷은 가부장 사회에 금을 내기 시작했다. 남자의 근육보다는 여자의 섬새한 손가락이 더 유리하게 되자 철옹성 곳곳에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 사회의 기본적인 힘은 경제력이다. 여자들의 경제력은 점차 남자들을 능가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거대한 역사의 전환기에 살고 있다. 이런 시기에 여자의 해방이란 게 고작 집을 나가 혼자 사는 것이란 말인가? 한 십여 년 전이라면 그 엄마는 선구자겠지. 하지만 이미 여자에게 권력이 이동하는 이 시점에서 여자가 왜 자신의 성에서 나가나? 성주가 되어야지.

 나는 남녀평등을 일찌감치 경험했다. 20여 년 전, 전교조 활동을 하고 시민 운동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남녀가 평등하게 사는 삶을 체험했다. 그 당시엔 단체 운영비를 절약하려 사무실에서 밥을 해 먹었다. 그때 남녀구분 없이 식사 준비를 하고 설거지를 했다. 일을 할 때도 남녀구분은 전혀 없었다. 차이가 있었다면 라캉 말대로 ‘남녀차이는 화장실 입구차이’라고나 할까.          

 함께 운동하는 동지들이 우리 집에 올 때도 그런 삶의 형태는 그대로 이어졌다. 보통 손님이 오면 남자는 손님과 젊잖게 앉아 있고, 여자는 부지런하게 부엌을 드나든다. 음식이 나오면 손님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주인 내외는 겸양을 떨고, 이게 일반적인 가정의 손님맞이 풍경이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음식 준비도 함께 하고 설거지도 함께 했다. 가부장 사회의 체면이니 체통들은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가부장의 쓰레기들이 다 사라진 깔끔한 집에서 식사를 하고 담소를 하는 이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상상이나 할까.

 그래서 빼어난 드라마 작가 김수현도 기껏 뿔난 엄마를 가출시키는 것으로 여성 해방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적어도 이 시대의 여성 해방은 ‘가정을 지키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부부가 친구처럼 애인처럼 지내는 게 무에 그리 어렵단 말인가? 남편의 옷도 아내가 챙겨줘야 하고 시아버지 끼니를 며느리가 걱정해야 하는 가정의 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여성 해방은 불가능하다.                        

 물론 아직까지 강고한 가부장 사회를 바꾼다는 게 얼마나 힘 드는 일인지 잘 안다. 하지만 ‘목마른 자 물 찾듯이’ 한다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다. 가족 구조를 탓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

 나는 수강생들에게 말했다. “자신이 먼저 남녀평등의식을 확고히 가지셔야 해요. 변화된 아내를 보면 남편도 변화하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공부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우리가 앞서서 나가는 거예요.”

 사람들은 흔히 남을 탓한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하지만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출발한다. 큰 나무도 작은 씨앗에서 출발하고, 큰 강도 작은 샘에서 출발한다.   내가 씨앗인가? 샘인가? 우리는 항상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출처 : 엄마가 뿔났다
글쓴이 : 허수아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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