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스크랩] 열애 - 신달자 (고통도 종내는 그리움이다)

tlsdkssk 2009. 8. 16. 12:53


    
    
    
    
    ▲ 일러스트=클로이
    
     열애 - 신 달 자 
    손을 베었다
    붉은 피가 오래 참았다는 듯 
    세상의 푸른 동맥속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잘 되었다
    며칠 그 상처와 놀겠다 
    일회용 벤드를 묶다 다시 풀고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딱지를 떼어 다시 덧나게 하고 
    군것질하듯 야금야금 상처를 화나게 하겠다 
    그래 그렇게 사랑하면 열흘은 거뜬히 지나가겠다 
    피흘리는 사랑도 며칠은 잘 나가겠다 
    내 몸에 그런 흉터많아 
    상처가지고 노는 일로 늙어버려 
    고질병 류마티스 손가락 통증도 심해 
    오늘밤 그 통증과 엎치락 뒤치락 뒹굴겠다 
    연인몫을 하겠다 
    입술 꼭꼭 물어뜯어 
    내 사랑의 입 툭 터지고 허물어져 
    누가봐도 나 열애에 빠졌다고 말하겠다 
    작살나겠다. <2007년>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제2번

    F장조 Op.102 ( Andante )

     

     

     


    
    

    고통도 종내는 그리움이다

     

     문  

     

    '봉헌문자',' 아가', '아버지의 빛', '오래 말하는 사이' 등 많은 시집을 발간한 시인이면서도 ,
    <백치애인>, <물 위를 걷는 여자> 등의 소설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로 더 알려진 신 달자 시인이다.

    시인이 쓴 위의시 '열애'를 이해하려면 먼저 시인이 근간에 쓴 자전적 에세이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를 읽어보아야한다.
    시인의 온몸에 난 상처의 깊이를 들여다 보아야 그녀가 연인처럼 소중히 어루며 데리고 노는
    상처의 본질을 이해 할 수 가있다.

    얼마 전에 그녀의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를 읽고서야 시인이 받았던
    끝없는 고통의 세월과 수렁같은 절망의 깊이를 비로소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녀의 삶은 온통 끝없는 고해이고 상처투성이 그것이었다.

    열 다섯 살 연상의 남편은 정상인으로 9년을 살고 이 후의 24년을 앓다가 죽었고
    시모의 병수발로 또 9년을 보내야 했으며   다시 자신이 암으로 투병했었다.
    삼년 부모 병수발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는데 얼마나 그 고난이 극심했겠는가...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포기하지 않고 감당해 냈기에 홀가분하다고 말한다.
    중도에 포기했다면 지금쯤 어디선가 굉장히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라고...

    그런 고난을 겪으면서도 시인은 우리의 생에서 결혼은 중요한 것이며, 가족이란 말에는   따뜻한 물이 고이는 것 같아서 좋다고 말한다.
    .
    시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인내하고 감당하는 방법은
    인간이 가진 결핍성을 이해하는데서부터 시작한다.
    완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제대로 안 맞는 걸 스스로 용인하고
    섞어가면서 사는 게 삶이라고...
    시인의 또 다른시 <여보 비가 와요> 역시 인간의 결핍성을 이해하고 그 상처를 덧내고 어루어서, 종내는 그 고통을 아련한 그리움으로 바꾸어내는 고통의 수심 깊이에서 살아 가는 시인의 특유의 사랑법을 보여준다 

    < 여보 비가 와요>

    아침에 창을 열었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
    그저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소한 일상용어들을 안아 볼을 대고 싶다

    너무 거칠었던 격분
    너무 뜨거웠던 적의
    우리들 가슴을 누르던 바위 같은 무겁고 치열한 싸움은
    녹아 사라지고


    가슴을 울렁거리며
    입이 근질근질 하고 싶은 말은
    작고 하찮은
    날씨 이야기 식탁 위의 이야기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뭐 그런 이야기
    발끝에서 타고 올라와
    가슴 안에서 쾅하고 울려오는
    삶 속의 돌다리 같은 소중한 말
    안고 비비고 입술 대고 싶은
    시시하고 말도 아닌 그 말들에게
    나보다 먼저 아침밥 한 숟가락 떠먹이고 싶다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이 병수발만 들게 했다고 마구 대거리를 해댔던 남편...
    그렇게 자신에게 고통을 안긴 남편이지만 죽고 나서야 비로소
    그런 불평을 늘어 놓을 수 있던 남편의 존재감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는
    시인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시인의 시를 이해 할 수 가 있다.
     
    시인의 '열애'는 고통의 구원은 또 다른 고통이지만 그 마지막은
    고통의 소멸을 통해 또 다른 그리움을 가져다 줌을 알려준다. 


    2008.010. 13. 문향


    출처 : 열애 - 신달자 (고통도 종내는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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