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不在)
김춘수
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맨드라미 나팔꽃 봉숭아 같은 것
철마다 피곤
소리없이 져 버렸다.
차운 한겨울에도
외롭게 햇살은
청석(靑石) 섬돌 위에서
낮잠을 졸다 갔다.
할일없이 세월(歲月)은 흘러만 가고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
출처.김춘수 시집 '늪' (문예사) 1950 에서 옮기다.
존재는 항상 허상의 실상이 되어
실상을 가리는 것이고
실상은 또 허상이 되어 상상의 이성을 가리는 것이다.
산다는 것들의 공동목표는 삶의 이웃이라는 것인데
이웃이 슬퍼하면 다른 이웃도 슬퍼한다.
반복되는 이야기가 곧 부재의 현상일 것인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잊혀져야할 과거로 부터
삶은 가두어진다.
그것들이 빛나는 것은 언제나
부재의 몫이다.
세상을 떨구어버릴 용기처럼
부재는 행복해한다.
이민영(시인, 시사랑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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