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또 신탄리에 갔었다.
고대산에 오르려 간 거였는데, 눈이 아직 녹지 않아 중도에 하산을 해야했다.
지난번 수락산의 공포가 되살아 났다.
아직 몸도 완쾌되지 않아 급하게 비탈진 등산로의 얼음을 보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번에 오른 제 2 등산로는 경사가 심해 하산할 때 바짝 긴장을 하며 내려왔다.
대신 마을 길도 걷고 자갈 천지인 냇가도 거닐었다.
구제역의 여파로 휑하니 비어버린 소 축사에선 그들이 남기고 간 분뇨 냄새가 아직 맴돌고 있었다.
봉우리마다 도톰하게 물오르고 있는 나무들이며 작고 소박한 교회당 건물이며,
'다방'이라는 간판이 나붙은 찻집 등 거닐며 바라본 풍광들이 아주 마음 편하게 내 시선을 흡인하였다.
연천 신탄리의 고대산은 이번이 두번째인데 갈수록 정감이 가는 곳이다.
서울 근교산과는 달리 복닥거리지도 않고 지하철과 기차를 번갈아 타며 2시간 남짓 달리는
시간동안 봄이 오는 들녘을 바라보며 갈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신탄리행 기차에는 단연 노인들이 많다. 지난번엔 평일이라 그런가 했는데,
주말인 어제도 노인이 많기는 매 한가지였다.
내 뒷좌석에 앉은 두 노인들이 주고 받는 목소리가
귓전을 스치기에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초면인듯 자기 소개를 하며 인생의 허무를 얘기하고 있었다.
고향이 이북이라는 한 노인이 말했다.
"저는 자식이 넷입니다. 이젠 다 살만들 해요. 그런데 늙으니 할 일도 없고
말 벗도 없고 참 허무하네요. 인생 참 잠깐입니다.
그래 저는 산이나 바라보려 이렇게 나왔지요. 산을 보면 그냥 좋아요....."
그는 철원까지 간다고 했다. 경원선 기차는 신탄리가 종점이라 철원까지 가려면
또 버스를 타야하는데, 노인은 혼자 버스를 타려는 모양이었다.
고향 산천이 한발자국이라도 가까운 거리에 닿고 싶어 그랬을까. 그는
"소원이라면, 그저 죽기 전에 나 살던 고향 산천 한번 다녀왔으면 하는 거지요, 뭐."
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