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할머니 나이에 이르렀다 해도 여자들은 '할머니'란 호칭 듣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촌수로 인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할머니라 불린다는 건 이미 늙었다는 의미가 내포되기에 이유 불문하고
거부감부터 생길 수밖에 없다.
언젠가 재래시장 상인과 손님이 서로 목청을 돋구는 일을 본 적이 있었다.
손님이 상인에게 '할머니'라 부른 게 발단이었다.
"왜 날 보구 할머니래? 내가 당신 할머니야?"
상인은 손님에게 불쾌한 한 마디를 던졌고 손님은,
"아니, 할머니 보고 할머니라 하는데 뭐가 잘 못 됐다고..."하며 맞받아쳤다.
내가 보니 상인은 정말 할머니 소릴 들을만 했다.
못 돼도 70은 돼 보였다.
하지만 손님은 왕이라는데 그 상인이 그렇게까지 화를 낸 이면엔
뭔가 피치 못할 곡절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보다 겉늙어 보이는 사람이 있다.
남자도 그렇겠지만 여자들은 실제 제 나이보다 많게 봐주는 걸 엄청 싫어한다.
아마도 그 할머니는 실제 나이보다 겉늙어 보여 늘 할머니 소리를 듣는 게
스트레스로 쌓여 있는지도 몰랐다.
지난 일욜, 교우 A와 도봉산에 올랐다.
그녀가 먼저 산엘 가자 졸라 컨디션이 안좋음에도 봉사하는 마음으로 나섰다.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위이지만 신체 연령은 나보다 한참 많은 듯
자세도 바르지 못하고 허리도 구부정하고 군살도 많다.
나는 되도록 천천히 걸었고 자주자주 뒤돌아 보며 산을 올랐다.
등산로도 비교적 걷기가 수월한 보문능선으로 택했다.
우이암 거의 다 가서였다.
암릉지대를 오르는데, 하산을 하던 웬 여자가 A에게 다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할머니, 스틱을 그렇게 들고 오면 위험하잖아요."
A에게 '할머니'라 말하는 사람이 또 있었다.
A가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안나, 들었지? 날 보고 할머니래."
나는 짐짓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우리가 할머니지 뭐야?"
"야, 넌 아직 그런 소릴 들은 적 없지? 넌 뒤에서 보면 30대라고 해도 되겠다.
근데 난 번번히 그런 소리 듣늗단말야"
몹시 서운하고 속상한 모양이었다.
나는 손녀가 생겨 진짜 할머니가 되었지만, 그녀는 아직 손주가 없어
할머니 소릴 듣는 게 아직은 낯설고 억울할 것이다.
한데 날 보고 뒤에서 보면 30대라고?
천만에, 어제 거울을 보았더니 염색을 하지 않아
머리가 희부연한 것이 영락없는 할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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