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立春大吉(계주)

tlsdkssk 2008. 2. 5. 10:45
 

                 계 주 (繼 走)

    ‘적설(積雪)과 한월(寒月)을 대비적 배경으로 삼은 다음이라야만 고요히 피는 매화의…        .특히 영춘(迎春) 관상용으로 재배되는 분매(盆梅)에는 담담한 가운데 창연한 고전미가 보이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청고(淸高)해서 좋다.’

    ‘… 매화 한 분(盆)을 이바지하고 폐문십일(閉門十日)을 해 보려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다.’


   앞의 인용구는 김진섭의 ‘매화찬(讚)’, 뒤의 인용구는 상허(尙虛) 이태준의 ‘매화‘에 나오는 글이다. 내가 매화 한 분을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은 위의 두 글에서와 같았다.

   그렇지만 분재는 건사하기가 어렵고 일주일만 등한시하면 실패한다는 말을 들었는지라 감히 키울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조금만 시들한 것이 발견되면 소생시키기에는 늦다니, 나처럼 손이나 눈이 바지런하지를 못한 사람이 과연 ‘매화 한 분을 이바지할’ 자격이 있는지 자문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이고, 고교도 동창인 정헌택군이 보낸 소포가 배달되었다. 그는 내가 보내준 ‘창작수필’겨울호를 받고 거기에 실린 내 글 ‘산수유’가 정초에 산뜻한 기분을 주었다는 과찬의 인사를 전화로 하면서, 답례로 선고(先考)의 유작집(遺作集)을 보내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도착한 소포는 크기와 무게가 백과사전 한 권 만하였다. ‘雲步影 雲步 鄭鎬康 遺作集’이라 쓰여진 표지를 읽은 후 앞부분의 어느 한 페이지를 편 순간 나는 흥분을 감출 길이 없었다.

   진흑색을 배경으로 찬연히 빛나는 나목(裸木)한 그루! 겨울 느티나무 분재 사진이었다. 다음 장을 넘겨보니 거목(巨木)의 형상을 연상케 하는 소사나무 분재가 나왔다. 이어 겨울 느티나무가 봄을 맞아 잎들이 풋풋하게 돋아 있는 모습을 찾아내고는 그저 탄성을 지를 뿐… .흑송, 진백, 과일나무 등을 감상한 후 수석(水石)편의 첫 번째에 실린 ‘김삿갓’을 보고 내가 지른 소리는 “이건 국보급이다!”였다.

   삿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채 죽장을 휘저으며 걸어가는 모습. 현무암을 배경으로 하여 흰 무늬의 화강암이 어쩌면 그런 조화를 이루어 놓을 수 있는지… .김삿갓이 신선이 되어 돌에 영인(影印)된 것 같아 인간의 작품으로는 창안해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 - 그것은 곧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다. - 마저 들게 한다.

   책의 구성은 분재, 수석 편과 한시(漢詩)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분재와 수석을 칼라사진으로 담았으며 신문에 게재된 ‘분재강의록’과 ‘수석감상’등도 실었다. 또한 160여 수의 한시에는 한글 번역시가 곁들여졌다. ‘雲步影’이라는 책 이름은 선고께서 생전에 손수 정해두셨던 것으로 아호(雅號)인 운보에다 그림자 ‘영‘자를 붙인 것이며, 한시의 한글 번역은 헌택군 자신이 오랜 공부 끝에 완성했다고 한다.

   “분식(盆植)이란 난초 등의 화초류나 작은 나무를 생긴 그대로 분에 담아 키우는 것이고, 분재(盆栽)는 나무를 분에 담아 자연의 풍경미를 연상할 수 있도록, 그 나무에 인공을 가하면서 자연미 있게 키우는 것이다. 즉 분재는 대자연의 풍경을 곁에 두고 감상하려는 목적으로 큰 나무의 작은 모형에서 새로운 창작미를 키워내는 것이다. 인간의 심미안에 의해서 창작되지 않고서야 한 자(一 尺)의 소목(小木)에서 대수(大樹)의 자태를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분식과 난분(欄盆) 여남은 개를 키우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의미 있는 말이다.

   수석의 해설편인 ‘수석 감상’을 보니 운보께서는 수석인들이 ‘一生一石’으로 치는 돌로서 정작 ‘김삿갓’을 꼽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대목에 관하여 헌택군은 ‘아버지를 그리며’라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한 번은 경주 남천에 탐석을 가셨는데 그날따라 별 소득이 없어 울적하던 차, 해거름에 넓적하고 네모난 돌 하나를 주웠으나 별 생각 없이 버리고 온 후 밤에 생각해보니 ‘그 돌의 흙이나 한 번 씻어 볼 걸’하는 후회가 생겨서, 새벽에 다시 경주로 내려가서 그 돌을 찾아내신 것이 일생일석이라고 늘 자랑하시던 명석 ‘寒春’입니다.”

   “한겨울의 지루함을 이겨낸 실버들이 오는 봄을 향해 기지개를 켜고 있고, 호반 옆의 외로운 사슴 한 마리가 봄 이른 풀을 찾고 있는 문양석.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농도 짙게 함축시킨 명석…” 신문에 실린 해설기사이다.

    분재와 수석을 사랑하는 운보의 마음은 한시에도 잘 나타나 있는데, 간결한 시 두 편만 옮겨 본다.


         除夜詠盆松

     盆松老益堅 / 不變歲寒前

     窓外紛紛雪 / 共君又一 年

         제야에 소나무 분재를 보며 읊다

     화분의 소나무 갈수록 견실하고 / 세월과 추위에도 여전하여라

     창 밖에 휘날리는 눈발을 보며 / 어느덧 그대와 둘이서 또 한 해를 보내는구나. 


          探 石

     探石日將暮 / 不知溪月明

     搠流收一品 / 是緣奇也平

          수석 하나 고르고

     수석을 찾다 보니 날은 저물어 / 어느덧 냇물에 달빛이 밝았고나

     흐르는 물 속에서 명석 한 점 얻으니 / 예사롭고도 기이한 게 인연이로다.


     ‘雲步影’을 내 주변의 몇 사람에게 보였다. 문학을 좋아하는 S양은 이렇게 썼다. “너희인들 그리움이 없었을까, 고향의 산과 바다 바람의 내음. 너희인들 서러움이 없었을까, 가지마다 인내하는 순명의 나날들. 하지만 임의 뜻을 따라 ‘그림자’에 담겨 떠나신 먼 길 지켜보려 하였음을 알 것 같구나. 지금도 ‘그림자’로 남아  임의 손길 살포시 회상하고 있구나.”

    

     매화 분재에 물을 주었다. 정성스럽게, 조금씩 고루고루 주었다. 분재 가꾸기를 시작하는 사람이 새겨야 할 마음의 자세에서부터 분재를 키우는 방법까지를 자상하게 기술하고 있는 ‘雲步影’을 읽고 매화 한 분을 건사할 용기와 자신감이 생겨 오늘 한 분 들여놓은 것이다.

     베란다에서 물을 주고 서재로 들어왔는데 한동안 매화 향기에 취해 그냥 서 있었다. 어찌나 천천히 물을 주었던지 몸에 암향이 배었나보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雲步影’이 눈에 들어왔다. 일주일 동안이나 밤이 이슥하도록 나를 붙잡아 두었던 그 책을 집어 들어 서가의 한 자리에 소중히 꽂았다.

     그 때다. 문득 ‘繼走’라는 詩생각이 났다. 평소 틈틈이 습작시를 써두는 노트를 뽑아 들고 ‘계주’를 찾은 다음 선 채로 읽어 보았다.


   (前略)

    인생이란

    인간들의 끝없는 繼走

     한 인간이 쥐고 달렸던 바톤을

     자식과 후배들의 손에 넘겨주고

     가는 것이네.


     ‘雲步影’의 발간 취지는 어쩌면 ‘繼走’의 내용과 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운보영을 소장하기 위하여 서가에 꽂은 이 행위 또한 운보어른의 계주에 뛰어든 나의 몸짓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천천히 책상에 앉으면서 나 스스로에게 말했다.

     “인간에게는 자기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본질적 욕구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서전이나 회고록, 불후의 명작 등을 통하여 그들의 큰 흔적을 후세에 남긴다. 그런가 하면 비록 큰 흔적은 아니라 해도 한 인간의 ‘보람 있었던 흔적’이 유고집을 통하여 인연 있는 이들에게 전해지기도 하는데, 매화의 암향처럼 은은한 이 흔적 역시 매우 가치 있는 것이다.”

     날을 봐서 매화분을 내 서재 방에 옮겨 놓아야겠다. 우선은 통풍과 햇살이 좋은 베란다에서 적응을 시키다가, 꽃이 지기 전에 내 방에 두려 한다. 내 비록 상허(尙虛)의 ‘폐문십일’을 탐할 자격까지는 못된다 하더라도 한 사나흘 동안 분매와 더불어 같이 지내고 싶은 것이다.                                                             

                                                       1995년 7월 (200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