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은희경

tlsdkssk 2007. 9. 29. 08:50

“그녀의 소설은 속이 풀리는 뜨끈한 국밥”




▲ 은희경(왼쪽)과 천운영이 만나면 함께 할 재미있는 일을 궁리하며 즐거워한다. 작품 얘기로 말문을 연 두 사람은 함께 볼 영화를 고르는 것으로 대화를 마쳤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2007 동인문학상’의 수상작 선정을 10여일 앞두고 후보작을 낸 5명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 문단의 동료와 선·후배 작가들이 직접 소개하는 연재 특집을 마련해 5회에 걸쳐 싣는다. 곁에서 지켜본 동료 소설가들이 쓸 수 있는 차별화된 작품론과 작가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 들을 소개한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내가 단 두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한 풋내기 작가였을 때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그녀. 경쾌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옷차림, 단호한 눈매와 야무진 입술.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의 은희경이었다.

그녀는 핑퐁을 치는 소녀 같았다. 누군가 핑, 대화를 시작하면 퐁, 하고 가볍게 받아치는 핑퐁 소녀.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좌중의 시선을 모을 만큼 강력했고, 그녀가 구사하는 기술은 포핸드 백핸드 속공에 블록까지 다양하고 정확했다. 그녀가 받아치지 못할 대화는 없어 보였다. 젊은 애건 늙은이건, 진중하건 가볍건, 호의적이건 적대적이건, 그녀에겐 문제되지 않았다. 그녀가 드라이브를 넣을 때마다 좌중에선 웃음꽃이 부서졌다.

그날 나는 그녀를 시기했던가. 긴장되고 주눅 든 풋내기 작가에게 그녀가 가진 여유와 능란함은 그야말로 부러움의 대상 그 자체였다. 일체의 망설임도 없고, 철저하게 준비된 듯 매끈하기까지 한 대화기술. 발랄한 옷을 입고 핑퐁을 치는 소녀. 그것이 은희경에 대한 내 첫인상이었다.

내가 가졌던 일종의 시기심은 비단 풋내기 작가에게만 유발되는 것은 아닌 듯했다. 동료 후배작가들은 물론 평단이나 문단의 어른들조차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냉소와 조롱의 작가. 화사한 꽃무늬 블라우스 같은 하나의 브랜드. 얄밉도록 철저한 자기관리와 반듯한 태도. 냉소와 위악을 유전자로 갖고 있는 하나의 장르. 단박에 베스트셀러작가가 된 그녀에게 쏟아 붓던 시기와 의심의 눈초리들은 그녀를 끊임없이 하나의 브랜드로 규정하고 싶어했으니까.



그리고 7년여의 세월이 지났다. 나는 그녀가 문단에 얼굴을 내밀던 때의 나이가 되었고, 그녀는 아홉 번째 책을 냈다.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7년 전이었다면 나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처럼 근사한 제목은 어떻게 만든단 말인가, 아름다움과 멸시, 고독과 발견, 의심과 찬양은 어떻게 조합했단 말인가, 이 얼마나 영특한 발견인가. 그러면서 또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살 빼는 사람 얘기(수록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라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로키산맥은 아니더라도 여행과 지도(수록작 ‘지도중독’)라면 내 전문인데, 한발 늦어버렸어, 아무튼 얄밉지 뭐야, 라고…. 그렇게 삐딱한 독서를 마치고 책장을 탁,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게 얘기하지 못한다. 아니 안 한다. 지난 세월 동안 브랜드로서의 은희경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은희경을 엿보았기 때문일까?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책장을 덮고 난 후, 나는 어쩐지 슬픈 마음이 되어버렸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훔쳐본 소설 속 주인공처럼. 가냘픈 알몸으로 조개껍데기 위에 선 비너스, 그리고 그 너머 너머에 거룩한 밥의 모습으로 서 있는 또 다른 비너스. 그 사이에 은희경이 있었다.

그녀는 새까맣게 어린 후배작가들에게 ‘한국문학을 책임질 내 동료작가들’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그녀의 외모와 행동들을 생각한다면 이상할 것도 없다. 어떤 이는 그것도 은희경 식의 위악이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이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문학에 대한 열정, 혹은 소설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 진심이라는 걸. 자기 밥그릇 찾기도 바쁘고 자기 문학 생각하기에도 급급한 소심쟁이 콤플렉스 덩어리인 작가들 사이에서, 그런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이 문학판에서, 그녀의 태도는 울컥하면서도 속이 풀리는 장례식장 뜨끈한 국밥 한 그릇에 다름 아니다. 그녀의 소설 역시 그러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나는 말하고 싶다. 아직도 은희경을 위악적인 브랜드로 가두려는 누군가들에게. 그녀는 하나인 동시에 여럿인 크로스오버 장르라고. 그녀는 지독한 고독 속에서 몸부림치며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는 작가라고.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정말 아니라고 말고 싶은가? ‘소설 한번 두고 보자, 내가 기어이 쓴다’라며 눈을 부릅뜬 은희경이 보이지 않는가?


은희경(왼쪽)과 천운영이 만나면 함께 할 재미있는 일을 궁리하며 즐거워한다. 작품 얘기로 말문을 연 두 사람은 함께 볼 영화를 고르는 것으로 대화를 마쳤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집에서도 정장 입고 집필… 안풀릴땐 가출도


소설을 대하는 은희경의 태도에는 회사원의 직장 생활을 연상케 하는 데가 있다. 그녀는 오전 9시에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출근한다. 마루를 건너가는 짧은 출근길이지만 정성을 다해 옷을 갖춰 입는다. “꽉 끼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소설이 나와요. 출근할 때처럼 제대로 옷을 입어야 ‘이제 일을 시작한다’는 긴장감이 생기거든요.”

냉소와 위악으로 무장하고 생에 대한 철학적 통찰을 잽처럼 쏘아대는 그녀의 소설은 절묘하면서도 거침없고 자유롭다. 그녀 자신도 “성실하고 고지식하게 살고 싶지 않아 소설가가 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써보니 저는 영감이 떠올라 열정적으로 쓰는 천재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골똘히 생각하고 공을 들여 착실하게 쓰는 노력형에 가까웠죠.”

소설이 나오지 않으면 가방을 싸서 집을 나선다. 신춘문예 당선작과 첫 장편 ‘새의 선물’(1995)을 쓸 때도 집을 떠났다.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 수록된 단편 ‘날씨와 생활’ 등 2~3편도 지난해 3월 원주의 토지문학관에서 썼다. 문학동네 소설상(1995), 동서문학상(1997), 이상문학상(1998), 한국소설문학상(2000), 한국일보문학상(2002), 이산문학상(2006)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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