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스크랩] 영화컬럼) 나의 기적은 바로 너야

tlsdkssk 2007. 7. 13. 05:02
 


 

원작이 있는 영화- 샬롯의 거미줄
글/ 임정진

- 나의 기적은 바로 너야 My miracle is you -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떤 영화를 골라서 보고 이 컬럼을 쓸까 고민한다. 이번에는 ‘향수’와 ‘샬롯의 거미줄’ 두 개를 놓고 고민했다. 시간이 촉박하여 영화를  둘 다 보고 결정할 수는 없었다. ‘향수’ 소설은 읽은 바 있지만 너무 오래되어 기억 속에서 온통 가물거렸다. 향수 영화를 본 친구에게 영화감상을 묻자 친구가 인상을 찌그리며 대답했다.
“너무 많이 죽여. 그 예쁜 여자들을 말야.”
사람들을 수시로 죽이는 걸 이 찬란한 봄날에 보고 앉아 있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향수를 쉽게 포기하고 ‘샬롯의 거미줄’을 보기로 하였다.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 그 선택의 상황에서부터 우리의 편견은 효과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한다. 한 철에 상영되는 많은 영화 중에서 어떤 것을 보느냐. 혹은 하나도 안 보느냐. 그 판단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배우를 보고, 혹은 광고 포스터를 보고, 감독을 보고, 소재를 보고, 평론가들의 평을 보고, 혹은 원작을 믿고 영화를 한 편 골라 나서는 그 순간, 이미 많은 게임이 끝나버린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타인을 배려하는 행위이지, 자신에게는 아무 득이 없는 비경제적 행위다. 그 영화가 훌륭했든, 욕이 나왔든지 간에 이미 그 영화를 보았다면 내 금쪽같은 시간 120분 가량을 그 영화에 이미 바친 것이 아니던가. 내가 새로 창출할 수도 없는 시간을 바치고 나서, 그 결과로 알게 모르게 내 감성의 일부는 그 순간 동안이라도 그 영화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화를 보기 전에 따져보려는 경향을 자주 보인다. ‘정 주고 쪽 팔리거나’ ‘돈 주고 마음 상하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다른 영화를 제치고 ‘ 샬롯의 거미줄’을 보겠다고 하는 순간, 우리가 포기한 것과 기대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것이다. 나 혼자의 문제라면 또 비교적 간단하겠다. 영화를 함께 볼 친구를 구한다면 더 많은 변수들을 고려하게 된다.
독립영화제에서 딱 하루만 상영하는 작가주의 냄새 물씬 풍기는 예술영화를 같이 보러 가줘야 하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아주 뻔한 결말의 로맨틱코미디 영화를 볼 때 같이 가고 싶은 친구도 있게 마련이다.
자 그렇다면 , ‘샬롯의 거미줄’을 같이 보러 가자고 하고 싶은 친구는 과연 어떤 성향일까. 짐작컨대 그 친구는 아직 동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성품일테고, 동물들을 따스한 눈으로 볼 줄 아는 태도를 가졌을 테고 세상엔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더 많다고 믿는 배포를 가졌을 테고, 무엇보다도 친구의 의미를 소중히 여기는 그런 사람이리라.
그러므로 어떤 영화를 누구랑 보기로 한 결정....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물리치고  또 다른 많은 것을 얻는 행위를 완결한 셈이다. 멋진 일이다.

문화는 동사라 하였다. 물론 문법적으로 정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란 계속 변하고 교류하고 발전한다. 그러므로 동사이다. 원작 ‘샬롯의 거미줄’은 1952년에 발표되었다.  지금껏 영미권의 어린이들에게 필독서로 사랑받고 있다. 요즘처럼 유행이 빠르고 사람들의 선호도가 변화무쌍한 시절이 또 언제 있었던가. 그렇게 젊은이들이 열광하던 스티커 사진기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으며 골목을 도배하다시피 하던 수많은 조개구이집과 음악에 맞춰 발놀림을 훈련시키던 지금은 이름도 생소한 펌프게임기들은 순식간에 왔다가 그 속도로 자취를 감추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급속 동사의 문화시대에 살아남은 책은 어떤 힘을 내포한  것일까.

영화의 시작은 애니메이션으로 처리되었다. 너무도 평범하여 어제같은 오늘이 계속되는 마을이라 하였다. 돼지가 새끼를 낳는 장면을 보기 위해 달려나가는 소녀의 침실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영화는 시종 부드러운 색채와 담담한 톤으로 진행된다.

 영화 중간중간에 나레이터가 등장하여 책을 읽는 듯한 분위기를 조장한다. 헐리우드적인 스피드감이 살아난 장면은, 쥐 굴 안에서 썩은 거위알이 굴러들어오는 장면과 쥐가 까마귀들의 공격을 피해 달아나는 쓰레기 하치장 씬이다. 동물과 거미의 연기를 위해 컴퓨터 그래픽의 기술이 동원되었지만 다행히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특히 거미의 표정연기는 일품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돼지 윌버일까? 거미 샬롯인가? 동일시는 돼지와 더 잘 되는데 영웅적인 행동은 샬롯이 하므로 무게중심이 샬롯에게로 자주 옮아간다.

윌버는 늘 친구가 필요한 돼지였다. 그리고 놀 줄 아는 돼지였다.
 주커만 농장의 다른 동물들은 놀이의 맛을 외면하고 있었다. 일해서 쓸모있는 동물로 인정받아 살아남기를 원했던 동물들이다. 놀이의 진정한 기쁨을 알고 그걸 즐기려 했던 월버만이 동심을 간직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돼지 월버는 무엇보다 살고 싶었다. 훈연실로 끌려가서 햄과 베어컨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달려보면 기분이 참 좋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무모하게 머리로 울타리를 들이받아 부셔버릴 줄 아는 용기도 있지만 죽는 걸 무서워하는 평범한 돼지이다.

 샬롯은 자신의 목숨을 한번 구해준 윌버에게 은혜를 갚는 거미이다. 자신의 온 힘을 다해 거미줄에 some, terriffic, humble의 형용사를 차례로 직조하여 월버를 띄워주어 월버를 살려낸다. 그리고 알을 514개를 남기고 고요히 죽는다. 샬롯이 죽어갈 때의 그 엄숙하고 아름다운 표정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샬롯은 자연의 순환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헛간의 모든 동물들이 샬롯을 보고는 소름끼치고 흉측하다고 말할 때 월버는 샬롯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주었다. 사랑하는 친구를 바라볼 때는 아름다운 모습만 확대되어 보이는 모양이다. 월버가 말한다. 같은 장소에 오래 있었다고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대화를 하고 서로를 인정해야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 소중한 친구가 되기 위해선 힘든 과정이 하나 또 있었다.
"I never break promise" (난 약속은 꼭 지켜)
처음에 월버 목숨을 구한 펀도 그랬다. 살아남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노라고.
이 영화에서는 약속을 지키는 것에 대해 매우 강조를 한다. 우리가 지켜야 되는 약속은 얼마나 많을까? 그걸 우리는 잘 지켜내고 있는가. 펀과 샬롯이 약속을 들먹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그동안 어긴 약속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펀의 엄마는 다른 아이들과 놀지 않는 펀을 걱정하여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는 보기 드물게 열린 생각을 가진 전문가였다.  동물들이 말을 걸어도 우리가 주의해서 듣지않아서 못알아듣는 것일 수도 있으며 펀의 그러한 지나친 열정을 곧 사그러질 것이라 예언했다.
 주커만 농장 사람들은 또 어떤가. 거미줄에 글자가 쓰여져 구경꾼들이 북적거리는 상황을 즐기게 된다. 관심이 사그라져 관광객이 안 오자 그들은 쓸쓸해한다. 양은냄비처럼 쉽게 열광했다가 쉽게 잊는 현대인들의 속성도 보여준다.  

 우리의 모습과 가장 많이 닮은 주인공은 쥐 템플턴 아닌가 싶다. 틈만 나면 거울을 들여다보고 역시 난 잘 생겼어. 그렇게 자위하는 성격하며 먹을 것이 있다고 하면 어디든 달려가는 순발력과 욕심, 사랑받고 싶어하는 약한 모습까지도 우리와 너무 닮았다. 가장 현실적인 성격이다.

샬롯이 사라진 후, 월버는 얼마나 오래 더 살아남을까.
우리 인생에 있어서 윌버에게 훈연실같은 그런 곳은 무엇일까. 훈연실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슨 노력을 해야할까.

 
 아름답고 순수한 스토리가 살아있는 영화를 보면서 그런 처절한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내가 너무 어른이 되었음을 알겠다.  


우리는 모두 평범하다. 그러나 특별하고자 노력하는 것에서 우리의 삶은 조금 더 전진한다. 평범함과 평범함이 만나서 특별한 것이 되는 그런 일이 기적이다.
일상의 기적들을 놓치지 말기. 그게 이 영화의 화두인 듯 싶다.

- 끝 -

계간 책으로 여는 세상 2007 여름호 수록

출처 : 영화컬럼) 나의 기적은 바로 너야
글쓴이 : Lim정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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