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난
유 산
당신께서 한평생 마음속에 넣고 다니다 조용히 꺼내놓고 가신 그 손바닥만한 맑은 거울과 아무도 모르게 물려주고 가신 가난이라는 큰 재산이 얼마나 귀한 선물이었으며 얼마나 소중한 상속이었는지를 조금은 알만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버지.
김용오 시집 ‘사부곡’에 실린 시
방 2개와 거실과 부엌방이 있는 집 청소를 한다.
시집보내는 딸아이의 신접살림 집이다. 내가 결혼했을 30여 년 전이 떠오른다. 부엌 딸린 방 하나가 전부였다. 그것도 전세였지.
사위가 자격증 소지자여서 주려고 산 집이다. Key 세 개를 주어야 된다는 자격증이니 Key 한 개는 너무 적지만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나는 소년시절 어렵게 살았다. 밥은 굶지 않았지만 겨우 먹고 살았다고 해야 한다. 눈깔사탕 한 개를 갖고 한 번씩 빨아 먹었다. 형님이 빨면 “히야 맛있나?”했다. 그런데도 형제들 정이 두터웠고 화목하게 살았다. 조그만 것에도 만족할 줄 알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나보다 못한 사람은 도우면서 살았다.
버리지 않는 편지 한 장이 있다. 사장으로 재직 시 비서실 직원이었는데 이렇게 썼다. “밖이 추우니 문 닫아라!’고 겨울이면 말 들 하죠. 하지만 문을 닫아도 여전히 밖은 춥습니다. ‘안’보다는 ‘밖’을 더 많이 생각하시는, 밖의 사람들을 걱정하시는 사장님을 존경합니다.”
카드 한 장도 있다. 거래처 사장이 보내온 것이다. ‘이타행(利他行)을 늘 실천하는 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내가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은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집 청소는 5만원을 주어야 해준단다. 아내를 거들면서 열심히 했다. 가래가 나오기에 뱉으니 새까맣다. 이런 가래는 처음이다. 탄광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돼지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들었다. 오랜만에 돼지고기에 기름까지 발라내지 않고 먹을까보다.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닦으니 운동이 된다. 접착제까지 긁어내야 하며 세 번을 닦아야 한단다. 운동은 걷는 것밖에 안 하는데 오늘은 제대로 한다.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됐다.
사위는 시골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공부했단다. 꼭 ‘전원 일기’에 나오는 곳 같단다. 서울 와서 대학 다니고, 시험 합격하고 가니 ‘개천에서 용 났다’고 마을 사람들이 잔치를 벌여 주었단다.
가축으로 치면 거두며 키우지 않고, 방목(放牧)한 거다.
그런 그가 Key 한개 받고 고맙다며 만족해한다. 어렵게 자라고, 열심히 공부해서 자립할 수 있게 되었는데 살 집을 사준다니 고마운가 보다.
혼사 진행 중에 혼수 문제로 싸우다가 성사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유산인 가난’을 고맙게 생각하는 젊은이다.
집 등기를 할 때 지분을 어떻게 하느냐고 등기소 직원이 묻기에 부부 공동등기니 당연히 반반이라 했다. 그러나 10% 대 90%도 있다 한다.
등기한 후 사위는 동료에게 자랑을 못했단다. 동료는 Key를 한개도 받지 못했는데 받았다고 자랑하는 게 미안하다며….
한 개도 못 받은 그 친구도 ‘아버지의 유산’을 고마워하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에 보면 왕자들은 왕권을 쥐기 위해 형제들을 죽인 게 나온다. 왕자로 태어나지 않고 ‘겨우 밥 먹고사는 집’ 아들로 태어난 걸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다.
2007년 1월 (200x9매)
'사랑방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려 (0) | 2007.02.04 |
---|---|
[스크랩] 탄허스님의 미래예고 (0) | 2007.02.02 |
[스크랩] 녹슨 삶을 두려워하라... - 법정스님 (0) | 2007.01.29 |
[스크랩]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랱터 윌슨 스미스 (0) | 2007.01.26 |
[스크랩] 측신(厠神) (0) | 2007.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