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하룻밤 인연

tlsdkssk 2006. 7. 20. 06:18

방금 <미루>를 보내주었다.

어제 밤 잠자리에 들면서 정이 깊어지면 곤란하니

'아침이 되면 마음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밤에 혼자가 되자 미루는 몇번 크게 울었다.

낮에는 진수성찬으로 배를 불리고, 우리 부부가 저를 이뻐해주니

좋아라고 지냈는데, 밤이 되자 집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나는 방으로 불러들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마음도 정하기 전이니 안 될 것 같았다.

만약  저 녀석을 밖으로 내치면 다시 찬 이슬, 찬비를 맞아가며

쓰레기주변이나 배회해야 할 텐데, 편한 맛을 알게하면 어찌 되겠나.

 

나는 미루 걱정 때문에 두어번 잠을 깨어 거실로 나갔다.

"미루, 심심했니?"

"미루야, 무서워서 울었니?  엄마 생각이 났어?"

말을 부칠 때마다 녀석은 대답하듯 야옹, 야옹, 한다.

뒷 베란다에 가보니, 밖으로 나갈 궁리를 한 듯 몇가지 잡동사니를 엎어놓았다.

바람부는 창문으로 엄마 냄새가 풍겨 왔을까?

마음껏 뛰놀던 풀향기를 맡았을까?

난 고양이의 의중을 알 수 없지만 순간 마음을 정했다.

자유를 주자고,

아침밥을 배불러  먹여 어제 녀석을 만났던 자리에 갖다 놓자고.

이렇게 되면 딱 하룻밤의 인연이니, 내가 쓴 글 <도둑고양이 미루>가 현실로 실현된 셈이다.

어제 뜯은 참치캔을 덜어 밥을 비벼주자 녀석은 냠냠 맛나게 먹는다.

 

잠시 뒤, 나는 식사를 마친 녀석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어제 올라온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리곤 놀이터 옆 쓰레기 통 근처에 내려놓았다.

녀석은 야옹, 야옹, 하면서 주변을 살피더니 내 뒤를 졸졸 따라 온다.

나는 애 버리고 도망치는 나쁜 에미처럼  얼른 뛰어 아파트 안으로 들어왔다.

딱 한가지가 걸린다.

어제 향기 좋은 샴프로 목욕을 시켜준 것 말이다.

지 어미를 찾아가도 어미는 냄새가 바뀐 새끼를 못 말아보고 물거나 물리치지 않을까.

사람으로 치면 미루는 초등학교 고학년 내지 중학생 정도일 게다.

야생 고양이었으니, 설령 어미가 내쳐도 저혼자 살아갈 테지만,

아무튼 그 일이 걸린다.     

만약 어미 고양이가 다시 새끼를 가졌다면 이래도 저래도 내침을 받을 게다.

 

미루가 어른이 되어도 난 녀석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 다쳤는지 녀석은 꼬리가 약간 꺾여 있으니까.

녀석은 암컷이고, 누런 털에(꿈에 본 고양이는 젖소무늬에 회색 눈이었지만) 눈은 호박(보석)색이다.

배는 표범처럼 얼룩무늬요, 네 발은 흰 양말을 신은 듯 일부분이 하얗다.

이따금 쓰레기장 주변에 먹을 것을 놔줘야겠다.

미루가 먹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암튼 잘 살아라, 미루.

내 하룻밤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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