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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움베르토 에코 칼럼 中 ... 말씀 낮추십시오. 저는 이제 겨우 쉰 살인데요.

tlsdkssk 2006. 1. 27. 07:12


내 친구 교수에게 다른 친구의 아들을 소개한다. 두 사람은 친절하게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이 든 교수가 말한다.
<미안하지만, 말을 낮추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군.> 상대방이 대답한다.
<물론입니다. 저는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이 일화는 나에게 충격적으로 보인다. 내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어느 낯선 사람이(만약 성직자가 아니라면) 나에게 말을 낮추라고 했다면, 나는 그를 좋지 않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스물다섯 살이 아니라 가령 열여덟 살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당시에는 반바지 차림에서 긴바지를 입을 무렵부터 존칭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하물며 대학을 졸업한 스물두 살의 나이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 가족의 친구인 어느 나이 든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당신을 박사님이라 불러야겠군요.> 그러면 우리는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입장에서 겸손한 태도를 보일 줄 아는 사람처럼, 흡족한 마음으로 <천만에요, 아닙니다. 전처럼 말씀 낮추십시오... ...> 하고 말했다.


며칠 전 보스턴에서 나는 마빈 민스키(인공 두뇌 분야의 학자. 현 MIT교수)와 어느 토론회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21세기에 관한 대화였고 우리는 가설들을 세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민스키는 다음 천 년의 가장 두드러진 사실 중 하나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죽는 나이가 서서히 늘어나 2백 살까지 살 것이라고 가정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든 살에서 2백 살 사이에 아무도 모르는 질병의 희생자가 될 것이며, 점진적인 면역 과정을 통해 서서히 적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단순한 산책이 아닐 것이다. 수십 억의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쓰러질 수도 있다. 그리고 간단히 말해 우리의 먼 후손들이 태어날 것이다.


나는 이렇게 지적하였다.
만약 백쉰 살 먹은 사람이 자신의 지적 능력을 그대로 간직한다면, 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엄청나게 방대한 경험을 쌓게 될 것이라고. 우리의 먼 후손들과 비교하자면, 현재 우리에게 격언처럼 지혜를 상징하는 솔로몬은 미숙한 청소년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모든 동물에게 나타나는 사춘기는 탄생부터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날 때까지의 기간이다. 고양이에게는 단지 몇 달이고, 다른 종에게는 훨씬 더 짧을 수도 있다. 인간에게 그 기간은 비교적 길다. 문화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열두 살에서 열여섯 살까지의 기간이라 말할 수 있다. 그 다음에 통과 의례가 있고 성인이 된다.


그 기간은 고대 로마 시대에서 우리 세대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이동하였다. 그것은 하층 계급보다는 지배 계급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기간까지를 일종의 잠정적인 휴지기로 간주한다면, 성인 나이로 이행하는 시기는 2천 년이 지나는 동안 열네 살에서 스물네 살로 이동하였다. 결과적으로 생식 순환기로의 진입 시기와 결혼, 즉 책임 있는 출산의 시기도 이동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부모의 평균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쉰 살 <노인>의 경혐과 비교하여 청소년이 쌓은 경험이 비율상 적합하다고 간주 되었을 때는 열네 살에도 성인이 되었다. 부모가 여든 살, 심지어 아흔 살까지 살아도 별로 놀랍지 않은 사회에서는, <젊은이>에게 적합한 경험을 인정해 주기까지 최소한 30년의 시간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 중반부터 오늘날까지 이행기 곡선의 급격한 상승과 함께 최소한 10년이 연장되었다. 그리고 대학은 아직 생식 순환기에 집입하지 않은 30대 젊은이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평균 수명이 백쉰 살인 인류를 상상해 보자.
통과 의례는 쉰 살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말을 낮추어도 이해하게.> <물론입니다. 저는 이제 겨우 쉰 살인데요... ...>
그렇지만 훌륭한 영양 섭취로 인해(오늘날의 열여섯 살 청소년은 백 년 전의 열여섯 살 청소년보다 더 크고 튼튼해지게 되었다) 생식 능력이 줄어들거나 늦춰지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여전히 청소년기에 성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쉰 살의 나이까지 자식을 낳지 말라고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무책임한 아빠 엄마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마치 오늘날 갑자기 열세 살 소녀들이 모두 자식을 낳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회는 그 아이들을 돌보아 주어야 할 것이다. 어머니(그리고 아버지)는 아직 성숙하지 않아서 적절하게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서른 살 또는 마흔 살의 성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식을 낳기 시작하는 사회에서는, 국가가 개입하여 그들에게서 자식을 데려와 집단 교육 기관에 맡겨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흥미로운 예상을 할 수 있다. 즉 수명 연장으로 인해 독재적 통재와 스파르타 식 교육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1993)


-레스프레소 잡지에 실린 칼럼글. <미네르바 성냥갑>에서 옮김.


-서문 中... 이 <성냥갑>들은 즐거울 때도 거의 언제나 성난 어조를 띠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글은 거의 없고, 주로 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분노해야 할 것들은 너무나도 많아서, 다른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한 것에 대해 내가 침묵하였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양해를 구한다. 아마 그 순간 내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모양이다.
-2000년 1월 5일 밀라노 -



출처 : 움베르토 에코 칼럼 中 ... 말씀 낮추십시오. 저는 이제 겨우 쉰 살인데요.
글쓴이 : v선인장v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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