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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지금의 나는 누구?

tlsdkssk 2006. 1. 24. 16:17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지금의 나는 누구?


‘이상한 나라’가 앨리스에게 던진 철학적 과제

1865년에 출판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문학의 고전이 되었다. 캐럴의 동화는 사실 어린이들이 읽기에 쉽지 않다. 일관성 없는 줄거리와 갑작스런 전환 때문에 독서 의욕을 잃게까지 할 수 있다. 더구나 작가의 해학과 역설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 또한 필요하다. 그래서 캐럴 연구의 전문가인 마틴 가드너도 이 책이 어린이보다는 최소한 청소년에게 맞는 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일관성의 결여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앨리스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화두가 있다. 그것은 이야기의 시작에서부터 관찰할 수 있는데, 바로 자아 정체성의 문제다. 그것도 ‘몸이 곧 나’라는 매우 현대적 개념의 정체성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토끼 굴에 들어간 앨리스가 처음부터 줄기차게 경험하는 것은 ‘몸의 치수 변화’다. 그것은 주위 상황과 대비되면서 ‘차원의 상대성’에 관한 문제에 연결된다. 이런 변화는 앨리스에게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너무 자주 경험하는 몸의 변화에서 오는 불편과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앨리스는 “내가 정말 변했다면, 다음에 해야 할 질문은, 지금의 나는 누구인 거지? 아, 이건 대단한 수수께끼다!” 하고 고민한다. 그 다음 앨리스가 하는 행동은 더욱 흥미로운데, 바로 자신의 기억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친구들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쓰고 학교에서 배운 구구단을 외우기도 한다. 몸의 변화가 정신의 변화에 영향을 준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정체성의 문제를 주로 정신의 차원에서 논한 전통 서양 사상을 역전시키는 것이다.

이윽고 정체성의 문제는 앨리스가 쐐기벌레를 만날 때 절정에 이른다. 쐐기벌레의 첫 질문도 “너는 누구냐?”이며, 반복되는 이 질문은 앨리스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 날 아침부터 하도 여러 번 몸이 바뀌었고 그 때문에 전에 알고 있던 것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아서,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다는 사실을 앨리스는 울상이 되어서 고백한다. “죄송하지만,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요. 알다시피 지금 나는 나가 아닌 걸요.”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은 서양 사상의 오랜 전통이다. 하지만 그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인식의 도구로서 나름대로 기능을 한다. 그런 구별이 전혀 없는 인식적 사고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대해 깊이 있으면서도 다양한 관점에서 사고하는 것이다.

몸의 변화가 정신과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 한 사람의 정체성 구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우리 일상에서도 포착할 수 있다. 성형수술은 분명히 사람의 정신과 마음에 변화를 일으킨다. 흔히 지나치는 것이지만 화장과 머리 모양도 마찬가지이며 옷도 마찬가지로 변화의 동인이 된다. 즉 여러 가지 차원에서 몸의 변화가 마음과 영혼에 변화를 일으키며 정체성 구성에 참여한다. ‘옷이 날개’라는 속담은 옷이 사람의 신체를 달리 보이게 하지만, 바로 그 날개는 또한 ‘정신의 중력’을 조정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서양 철학에서 몸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은 20세기 후반에서야 주로 있었다. 더구나 그것을 정체성 구성의 요소로서 진지하게 다룬 적은 드문 편이다. 이런 점에서 캐럴의 앨리스 이야기는 시대를 앞서 철학적 과제를 던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용석/영산대 교수 anemoskim@yahoo.co.kr

출처 :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지금의 나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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