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나가는 소리
글 / 서 병 태
우주의 천지간에는 수많은 소리가 있다.
물리적으로 움직이거나 화학적으로 반응을 하는 사물에는 소리가 따르며, 생명체가 내는 소리들도 많다. 한편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없는 동물의 소리는 인간에게는 "침묵의 소리"이다.예를 들자면 박쥐는 초음파의 소리를 내는데 사람의 귀는 그들의 높은 주파수를 따라잡지 못하여 듣지 못한다.
꼬끼리의 무리가 가던 길을 멈추고 몇 분 동안이나 꼼짝 않은 채 귀를 펼쳐들고 수 km 덜어진 다른 무리들의 소리를 들은 다음 방향을 바꾸는 것은 사람에게는 신기한 광경이다. 꼬끼리가 의사소통을 하는 초음파의 소리는 주파수가 너무 낮아 사람의 귀로는 감지될 수 없으나 그 파장은 십리 넘어까지 간다는 것이다.
인간의 가청 주파수는 20Hz-20KLz인데 꼬끼리와 박쥐는 이 주파수대를 벗어난 소리를 내는 것이다.현대과학의 발달은 주파수의 특성을 이용하여 인간이 개발하는 기계의 소음을 없애는 데에까지 이르고 있다. 즉 시끄러운 기계의 전력주파수를 고추파로 변환시키는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그 기계가 내는 소음을 없앤다. 엄밀히 말하면 없앤다기보다 인간의 가청주파수대를 피하게 하는 것이며 그 기계가 내는 소리는 존재하므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은 그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귀는 주파수대역이 무한대일 것이므로 하느님은 단 한순간도 조용할 수 없는 소음 속에서 사실 것이다.
아이슬란드 포피(화초 양귀비)가 꽃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꽃망울이 벌어지기 시작해서 꽃잎들이 만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5초였다. 그 꽃잎들에 공기가 살랑인 소리를 나는 들을 수 없었지만 구도자나 시인의 귀에라면,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속에서 우주를 본다는 그들의 세계에서라면 그 소리도 들릴 것이다.
소리는 그것을 듣는 정황에 따라 매우 다른 느낌과 의미를 부여한다.천둥 소리를 예로 들자면, 나는 어느 여름날 낮잠에서 깨어나면서 먼 천둥 소리를 듣다가 문득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저 천둥 소리 나는 곳에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가까움이 현실이요 생활이라면, 멂은 원천이요 본질일 것이다.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는 먼 천둥소리의 영역이 아닐까 하고.....
나는 밤의 정적을 가르며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듣기를 좋아한다.질주하는 소리를 남겨놓고 가는 그 소리의 의미를 나는 "지나감"에 둔다. 인생은 만남과 머무름의 연속이지만 그것은 결국 지나감이며, 나는 밤의 적막속에서 나의 인생을,나의 지나감을 음미해보곤 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먼 비행기 소리의 아련한 추억이 있다.그것은 6.25 동란이 일어난 여섯 살 때의 기억이다.
우리 집이 있던 대구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전화(電禍)를 입지는 않았지만 비행기는 쉬지 않고 하늘을 누볐는데,대개는 먼 하늘을 지나가는 수송기였다. 마당이 넓고,우물이 깊고,큰 감나무가 있었던 우리 집에서 나는 긴 여름날의 반나절동안 혼자서 집을 지키곤 했다. 아마도 어머니는 가계를 도우시느라 막내둥이인 나를 자주 혼자 내버려둘 상황이셨던가 보다. 나는 친구들을 불러다 마당에서 구슬치기와 땅뺏기,숨바꼭질 등을 하였고 그런 것들이 시들해지거나 점심때가 가까워 오면 우리는 으레 닭싸움을 하였는데 그러다가 한꺼번에 친구들이 다 가버리면 나는 꼼짝없이 외톨이가 되었다. 그 때 멀리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그 외로움과 서러움과 무서움이란!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는 신통하게도, 우물물을 길어 걸레를 빨고 마루를 닦기 시작했다. 마당에 물을 뿌려 빗자루로 쓸고 대문 밖까지 빗자루 쓴 자국을 남긴 다음 누나와 형들과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마당에 뿌린 물이 마르면 물을 자꾸 뿌리면서 조마조마해 했다. 어린 마음에 칭찬이 듣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누나에게 여러번 칭찬을 들었고 동네 아주머니들에게서도 착한 아이라고 칭찬받았던 기억이 난다.
혼자만 있는 공간을 창조적 공간이라고 했던가 .생각해 보면, 마당이 넓고 큰 감나무가 있는 빈 집, 그곳은 어린 나에게 창조적 공간이었음에 틀림없다.그 때 들었던 "착한 아이"의 자긍심은 외로움 속에서 이루어낸 창조였을 터이다.그 외로웠던 비행기 소리의 기억은 지금 내 의식 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주의 수많은 소리들 속에서 나는 나의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고 있다. 내가 지나가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남들이 듣기 싫은 소리만 내면서 지나가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다 한 번씩은 남의 추억에 남을 소리를 내기는 하는 것인지....
나는 먼 천둥 소리 나는 곳에서 태어났고, 한밤의 비행기 소리처럼 지나가고 있으며, 아련한 비행기 소리의 외로움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남에게 작은 감동이나마 안겨줄 수 있는 소리를 내고 싶다.그 소리는 크거나 요란하지 않아도 좋고,아이슬란드 포피의 꽃피는 소리만큼이나 작아도 괜찮겠다. 그것이 인정(人情)의 기미(機微)를 느끼게 할 수만 있다면,미세한 정(情)의 흐름을 감지하여 전달시켜주는 소리이기만 하다면....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질주한다. 나는 지금 그 소리를 듣고 있다.
내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밤이다.
글 / 서 병 태
우주의 천지간에는 수많은 소리가 있다.
물리적으로 움직이거나 화학적으로 반응을 하는 사물에는 소리가 따르며, 생명체가 내는 소리들도 많다. 한편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없는 동물의 소리는 인간에게는 "침묵의 소리"이다.예를 들자면 박쥐는 초음파의 소리를 내는데 사람의 귀는 그들의 높은 주파수를 따라잡지 못하여 듣지 못한다.
꼬끼리의 무리가 가던 길을 멈추고 몇 분 동안이나 꼼짝 않은 채 귀를 펼쳐들고 수 km 덜어진 다른 무리들의 소리를 들은 다음 방향을 바꾸는 것은 사람에게는 신기한 광경이다. 꼬끼리가 의사소통을 하는 초음파의 소리는 주파수가 너무 낮아 사람의 귀로는 감지될 수 없으나 그 파장은 십리 넘어까지 간다는 것이다.
인간의 가청 주파수는 20Hz-20KLz인데 꼬끼리와 박쥐는 이 주파수대를 벗어난 소리를 내는 것이다.현대과학의 발달은 주파수의 특성을 이용하여 인간이 개발하는 기계의 소음을 없애는 데에까지 이르고 있다. 즉 시끄러운 기계의 전력주파수를 고추파로 변환시키는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그 기계가 내는 소음을 없앤다. 엄밀히 말하면 없앤다기보다 인간의 가청주파수대를 피하게 하는 것이며 그 기계가 내는 소리는 존재하므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은 그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귀는 주파수대역이 무한대일 것이므로 하느님은 단 한순간도 조용할 수 없는 소음 속에서 사실 것이다.
아이슬란드 포피(화초 양귀비)가 꽃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꽃망울이 벌어지기 시작해서 꽃잎들이 만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5초였다. 그 꽃잎들에 공기가 살랑인 소리를 나는 들을 수 없었지만 구도자나 시인의 귀에라면,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속에서 우주를 본다는 그들의 세계에서라면 그 소리도 들릴 것이다.
소리는 그것을 듣는 정황에 따라 매우 다른 느낌과 의미를 부여한다.천둥 소리를 예로 들자면, 나는 어느 여름날 낮잠에서 깨어나면서 먼 천둥 소리를 듣다가 문득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저 천둥 소리 나는 곳에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가까움이 현실이요 생활이라면, 멂은 원천이요 본질일 것이다.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는 먼 천둥소리의 영역이 아닐까 하고.....
나는 밤의 정적을 가르며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듣기를 좋아한다.질주하는 소리를 남겨놓고 가는 그 소리의 의미를 나는 "지나감"에 둔다. 인생은 만남과 머무름의 연속이지만 그것은 결국 지나감이며, 나는 밤의 적막속에서 나의 인생을,나의 지나감을 음미해보곤 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먼 비행기 소리의 아련한 추억이 있다.그것은 6.25 동란이 일어난 여섯 살 때의 기억이다.
우리 집이 있던 대구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전화(電禍)를 입지는 않았지만 비행기는 쉬지 않고 하늘을 누볐는데,대개는 먼 하늘을 지나가는 수송기였다. 마당이 넓고,우물이 깊고,큰 감나무가 있었던 우리 집에서 나는 긴 여름날의 반나절동안 혼자서 집을 지키곤 했다. 아마도 어머니는 가계를 도우시느라 막내둥이인 나를 자주 혼자 내버려둘 상황이셨던가 보다. 나는 친구들을 불러다 마당에서 구슬치기와 땅뺏기,숨바꼭질 등을 하였고 그런 것들이 시들해지거나 점심때가 가까워 오면 우리는 으레 닭싸움을 하였는데 그러다가 한꺼번에 친구들이 다 가버리면 나는 꼼짝없이 외톨이가 되었다. 그 때 멀리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그 외로움과 서러움과 무서움이란!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는 신통하게도, 우물물을 길어 걸레를 빨고 마루를 닦기 시작했다. 마당에 물을 뿌려 빗자루로 쓸고 대문 밖까지 빗자루 쓴 자국을 남긴 다음 누나와 형들과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마당에 뿌린 물이 마르면 물을 자꾸 뿌리면서 조마조마해 했다. 어린 마음에 칭찬이 듣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누나에게 여러번 칭찬을 들었고 동네 아주머니들에게서도 착한 아이라고 칭찬받았던 기억이 난다.
혼자만 있는 공간을 창조적 공간이라고 했던가 .생각해 보면, 마당이 넓고 큰 감나무가 있는 빈 집, 그곳은 어린 나에게 창조적 공간이었음에 틀림없다.그 때 들었던 "착한 아이"의 자긍심은 외로움 속에서 이루어낸 창조였을 터이다.그 외로웠던 비행기 소리의 기억은 지금 내 의식 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주의 수많은 소리들 속에서 나는 나의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고 있다. 내가 지나가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남들이 듣기 싫은 소리만 내면서 지나가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다 한 번씩은 남의 추억에 남을 소리를 내기는 하는 것인지....
나는 먼 천둥 소리 나는 곳에서 태어났고, 한밤의 비행기 소리처럼 지나가고 있으며, 아련한 비행기 소리의 외로움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남에게 작은 감동이나마 안겨줄 수 있는 소리를 내고 싶다.그 소리는 크거나 요란하지 않아도 좋고,아이슬란드 포피의 꽃피는 소리만큼이나 작아도 괜찮겠다. 그것이 인정(人情)의 기미(機微)를 느끼게 할 수만 있다면,미세한 정(情)의 흐름을 감지하여 전달시켜주는 소리이기만 하다면....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질주한다. 나는 지금 그 소리를 듣고 있다.
내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밤이다.
출처 : 내가 지나가는 소리 / 서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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