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스크랩] 몽십야/나쓰메 소세키

tlsdkssk 2005. 8. 21. 22:20

 

 

제3야

이런 꿈을 꾸었다.

여섯 살 난 아이를 업고 있다. 확실하게 내 아이다. 다만 이상스러운 일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아이는 눈이 먼 상태였다. 머리는 까까머리다. 내가 아이에게 네 눈이 언제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느냐고 묻자, 아이는 옛날부터라고 대답할 뿐이다. 목소리는 아이지만, 말투는 어른이다. 더욱이 나와 아무 거리낌 없이 반말을 쓰고 있다.

좌우는 푸른 논이다. 길은 좁다. 해오라기의 그림자가 가끔 어둠 속에 비친다.

“논 가까이 왔군.” 아이가 등에서 말했다.

“어떻게 알지?” 나는 얼굴을 뒤로 돌리며 물었다.

“해오라기가 울잖아.” 아이의 대답이 이어졌다. 그 순간 해오라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이가 내 자식이면서도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이런 녀석을 업은 내 자신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어딘가에 이 녀석을 버릴 곳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며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둠 속에 큰 숲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이라면 하고 생각하는 순간, 등뒤에서 흥흥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왜 웃는 거냐?”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단지 “나 무거워?” 하고 묻는다.

“무겁지 않아” 하고 대답하자 “이제부터 무거워질 거야”라고 말한다.

나는 숲을 목적지로 삼아 말없이 걸었다. 논길이 제멋대로여서 내가 생각한 대로 나아갈 수가 없다. 한참 앞으로 나아가자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나는 갈림길에서 잠시 멈추어 섰다.

“돌이 서 있을 거야.” 아이가 말했다.

아이의 말대로 네모난 돌이 허리 높이 정도로 서 있었다. 돌의 표면에는 왼쪽은 히케구보, 오른쪽은 홋다하라, 라고 쓰여 있다. 어둠 속인데도 붉은 글씨가 선명하다. 도롱뇽의 배 색깔과 같은 붉은 글씨였다.

“왼쪽이 좋을 거야.” 아이가 명령조로 말했다. 왼편을 보자 조금 전 지나온 숲이 검은 그림자를 만들어 우리 머리 위를 휘감고 있었다. 나는 멈칫거렸다.

“염려하지 않아도 돼.” 아이가 말했다. 나는 방법이 없어 아이가 말하는 대로 숲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아이가 장님인 주제에 무엇이든 잘도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해가며 숲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장님은 불편해. 구제불능이지.” 등 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업어주는 거지. 그걸로 된 거야.”“업히는 것도 이제 진절머리가 나. 사람들은 물론이고, 부모마저도 나를 바보 취급하니까 말이야.” 나는 아이가 갑자기 싫어졌다. 빨리 숲으로 들어가서 아이를 내버릴 생각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좀더 가면 알게 돼. 바로 이런 날 밤이었지.” 등에서 아이가 혼잣말을 하고 있다.

“뭐가?”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라니? 알고 있잖아.” 아이는 조롱하는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자 무언가를 내가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확실하게는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이런 밤이었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조금만 가면 무언가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알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아이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아이를 버려야 한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길은 점점 어두워진다. 나는 거의 정신을 잃었다. 무아지경이라고나 할까. 내 등에 붙어 있는 아이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내 과거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손거울에 낱낱이 비추고 있다. 그 아이는 내 자식이다. 또 장님이다. 나는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여기다. 여기야. 바로 저 삼나무 뿌리 근처!”

빗속에서도 아이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린다. 나는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어느덧 나는 숲 속에 들어와 있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검은 물체는 아이가 말한 대로 분명 삼나무로 보인다.

“아버지. 분명 저 삼나무 뿌리 근처였어.”

“음. 그랬었지.” 나는 생각 없이 대답했다.

“분카(文化) 5년 용띠(1809년) 해였지.”

과연 분카 5년 용띠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놈이 나를 죽인 것은 지금으로부터 꼭 백 년 전이었지.”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분카 5년 어두운 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 삼나무 뿌리 근처에서 장님 한 사람을 살해했던 기억이 추억과도 같이 떠올랐다. 나는 살인자였었구나! 나는 처음으로 내가 살인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등 뒤의 아이가 돌부처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출처 : 몽십야/나쓰메 소세키
글쓴이 : 비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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