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피아니스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다룸에 있어서 음악은 필수적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의 심리상태에 따라 다양한 곡들이 삽입되었다.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의 글로리아(Gloria) 중 <세상엔 진실한 평화 없어라(Nulla in mundo pax sincera)>는 비발디 세속 칸타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데,한 피아니스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다룸에 있어서 음악은 필수적인 것이다. 곡의 평온한 분위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일요일 아침과 같은 느낌을 주는 곡이다.
대지의 모든 사물을 깨우는 듯 한 바이올린의 선율,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소프라노 성부가 자아내는 평온함에 감동 받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발디의 이 곡은 기막힌 선곡이다. '아픔이 없다면, 세상엔 참 평화 없어라...'라는 가사가 말해주듯이, 데이빗 헬프갓의 삶을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아픔이 씻어지는 느낌까지 받게 하였다. 비발디의 칸타타 '세상엔 참 평화 없어라'의 음반은 그다지 흔한 앨범이 아니다. 하지만 엠마 커크비(E. Kirkby)의 음반은 더 이상 훌륭한 음반을 찾기 힘들만큼 뛰어나다. 비브라토를 거의 쓰지 않은 커크비의 청아한 목소리는 작품의 평온함을 훌륭하게 살려내고 있다. 호그우드(C. Hogwood)가 이끄는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Academy of Ancient Music)의 연주 또한 일품인데,단정한 반주는 커크비의 목소리와 잘 들어맞는다.
영화 전반에 걸쳐 흐르는<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의 피아노 협주곡 3번(Piano concerto No. 3, Op. 30)>. 라흐마니노프는 낭만시대까지의 정통적인 서법에 기초하여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특히 피아노 협주곡에서 거둔 업적은 생전에 작곡가로서의 확고한 지지 기반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화려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후기 낭만주의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비속한 센티멘탈리즘을 표현한 살롱음악 작곡가로 오랫동안 평가절하 되기도 했다. 또한 음악이 너무 보수적이라든가 시대 착오적이라는 말을 듣는 일도 적지 않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알 수 있듯이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라흐마니노프는 1943년까지 살았지만, 작품의 경향으로는 19세기적인 낭만주의에 머무르고 있다. 2살 위인 스크랴빈(A. N. Skriabin)이나 1살 아래인 쇤베르크(A. Schonberg)와 같이 새로운 시도를 해 볼 기미도 볼 수 없다. 시종일관 흘러간 옛날의 향수를 노래하였던 것인데, 그 점이 현대 작곡가로는 보기 드문 대중성을 갖게 된 이유인 것 같다.
Piano concerto No. 2, Op.18 전곡감상
라흐마니노프는 4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는데, '피아노 협주곡 2번(Piano concerto No. 2, Op. 18)과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랩소디(Rhapsody on a Theme by Paganini, Op. 43)는 영화의 주제음악과 팝으로 빈번하게 편곡될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협주곡 3번은 2번에 가려 인기를 못 누리고 있었지만, 이 영화로 인해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쓰기 2년 전쯤부터 심한 노이로제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Rhapsody on a Theme by Paganini, Op. 43
만약, 라흐마니노프의 팬이었던 정신과 의사가 없었다면 30세의 나이로 폐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내용과 일치하는 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이 곡은 고도의 테크닉이 요구되는 부분이 많아 독주자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는 난해한 곡이다. 일설에는 라흐마니노프가 2번 보다 3번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 곡을 들을 수 있는 음반은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녹음한 음반부터 호로비츠, 베르만, 아르헤리치와 최근의 질버스타인과 키신의 연주 앨범이 있다.
하지만 밀란 호르바트(Milan Horbatt) 지휘의 코펜하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Copenhagen Philharmonic Orchestra)와 영화의 주인공 데이빗 헬프갓(David Helpgott)의 연주 음반을 들어보는 것도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하다. 이 음반에 대한 평가는 양분화 되어있다. 영화 <샤인>에 의해 헬프갓은 최고 인기의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영화로까지 만들어질 정도의 극적이었던 삶만큼 화려하고 신비로운 실력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음악을 향한 열정과 함께 기본을 갖춘 수준급의 피아니스트인 것이다. '실력으로도 충분히 주목받을 수 있는 피아니스트'라는 평가이다. 그리고 '거품을 넘지 못한 헬프갓의 인기의 한계이다'라는 평가이다. 단적으로 말해 헬프갓의 연주는 지극히 평범하다. 영화 덕분에 우리에게 전혀 무명이던 한 피아니스트에 대해 깊이 알게 된 것은 행운이지만, 상업적인 거품을 걷어낼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베르나르트 하이팅크(Bernard Haitink) 지휘의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Concertgebouw Orchestra)와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Vladimir Ashkenazy)의 연주 음반을 좋아한다. 관현악단과의 친밀한 융화력은 떨어지지만 피아노 파트에 독자적인 개성과 자발성이 강조되어 생명력이 넘쳐흐른다. 아쉬케나지 특유의 따스한 감정의 풍부함과 느긋하게 노래하는 선율의 아름다움이 전체 악장을 지배한다.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 앨범에는 34개의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다. 쇼팽(F. Chopin)의 피아노곡으로는 폴로네이즈(The Polonaise, Op. 53), 전주곡 15번(Prelude No. 15, Op.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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