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레미제라블

tlsdkssk 2020. 1. 19. 20:04

빅토르 위고가 쓴 불후의 명작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굶주리고 있는 조카들을 먹이기 위해 빵 한조각을 훔쳤다는 이유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빵 한 조각을 훔친 대가치고는 지나치게 혹독한 형벌이다. 물론 단일한 사건으로만 19년의 형벌이 내려진 것은 아니죠. 그리고 빵 한 조각은 프랑스의 앙시앙 레짐, 19년간의 감옥살이는 억압적 국가질서를 상징하는 문학적 장치이다.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은 프랑스혁명 때 타도의 대상이 된 구 체제를 일컫는 말로, 1789년 일어난 프랑스혁명 이전 루이 1416세 시대 절대주의 하에서 관습에 의한 신분계층이 분명하고, 국민의 정당한 자유와 권리를 유린했던 절대왕정체제를 가리킨다. 앙시앙 레짐은 왕 및 귀족성직자 등 소수의 특권계층에 대한 다수 국민들의 불만으로 인해 발생한 프랑스혁명에 의해 타도되었다. 

빵 한조각을 훔친 대가로 감옥살이를 하게 된 장발장은 출소 후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미리엘 신부를 만난다. 조용한 성당에서 일상의 평온한 삶을 되찾은 장발장은 그러나 은쟁반을 훔치다가 경찰에 붙잡혀 또 다시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미리엘 신부가 이 때 장발장을 구해준다. 은쟁반과 함께 은촛대까지 선물로 줬는데 왜 은촛대는 놔두고 갔냐며 장발장을 변호해준다.

미리엘 신부에게서 절대자의 구원의 손길을 느낀 장발장은 그 후 개과천선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이름을 마들렌으로 바꾼 장발장은 사업에서 크게 성공한다. 그리고 그 후 정치적으로도 발판을 넓혀 어느 도시의 시장이 된다. 장발장에서 마들렌 시장으로의 변신은 완벽했다. 그러나 그의 주위에는 쟈베르 경감이 있었다. 푸코 식으로 말하면 쟈베르는 감시와 처벌을 상징하는 국가의 물리적 폭력, 사법권력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쟈베르는 장발장에게서 단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그를 추적한다. 국가의 사법질서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것이 자신의 사회적 책무라고 쟈베르는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고 다닌다.

그 후 장발장은 판틴이라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공장에서 저임금과 노동착취로 시달리던 판틴은 결국 자신의 몸을 팔고, 머리카락까지 잘라서 파는 신세로 전락한다. 사회의 밑바닥으로 추락한 것이다. 판틴은 가치의 배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프랑스의 구질서를 시장의 측면에서 상징하는 인물이다. 판틴에게는 코제트라는 어린 딸이 하나 습니다. 판틴이 몸을 팔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관에 맡겨둔 코제트의 양육비때문이었다. 결국 판틴은 건강을 헤쳐 죽음을 맞게 되고, 장발장은 판틴을 대신해 코제트의 양육을 책임지게 된다. 코제트는 장발장의 보살핌으로 어여쁜 아가씨로 성장하고 마리우스라는 늠름한 청년을 만나게 된다. 마리우스는 소설의 사회적 배경이 되는 1832년 시민혁명의 리더였다. 영화나 뮤지컬에서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라는 노래는 이 혁명의 주제가다. 혁명이 실패로 끝나고 정부군과 전투 중 총상을 입은 마리우스를 장발장이 들쳐업고 파리 시내의 하수구를 질주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소설의 말미에서는 두 사람의 죽음이 그려진다. 레미제라블에서 빅토르 위고가 설정한 두 축인 국가(사법질서)와 시민사회(시민의 자유)를 대표하는 쟈베르경감과 장발장의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쟈베르경감이다. 쟈베르는 학생들의 혁명조직에 침투해 들어와서 염탐하다가 학생들에게 붙잡혀 총살을 당할 지경에 이른다. 이때 장발장이 나서서 쟈베르를 용서하고 목숨을 구해준다. 그러나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쟈베르 경감은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다. 마리우스를 무사히 구출해서 코제트와 맺어준 후 장발장도 두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는다. 개인의 죽음보다 국가의 죽음을 먼저 설정한 위고의 의도는 유럽의 문화를 지배하는 중요한 가치의 표현이다. 그걸 위해 그들은 피를 흘리고 투쟁했다.

쟈베르 경감을 용서하는 장발장에게서 우리는 사랑과 용서, 관용에 의해 치유되는 국가의 폭력적 감시기구라는 메시지를 읽는다. 이것이 바로 위고가 그리는 소설의 핵심적인 주제다. 똘레랑스. 프랑스의 국민정신이라고 하는 관용의 정신이 빅토르 위고가 장발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던지는 영혼의 테라피(therapy)이다.

위에서 소개한 라과디아 판사의 판결에서도 우리는 위고가 던지는 것과 같은 메시지를 읽는다. 국가가 자베르 경감과 같이 딱딱한 법집행자, 감시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보수주의자들의 생각도 틀린 바는 아니지만, 법을 지키면서도 개인의 사회적 책임을 통렬하게 반성하는 라과디아 판사에게서 우리는 따뜻한 보수주의자의 진면목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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