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스크랩] 무심코 / 복효근

tlsdkssk 2019. 2. 26. 13:16


    * 무심코 / 복효근

    서먹하니 마주한 식탁
    명이나물 한 잎 젓가락으로 집어 드는데
    끝이 붙어 있어 또 한 잎이 따라온다
    아내의 젓가락이 다가와 떼어준다
    저도 무심코 그리했겠지
    싸운 것도 잊고
    나도 무심코 훈훈해져서
    밥 먹고 영화나 한 편 볼까 말할 뻔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 콩나물에 대한 예의 / 복효근

    콩나물을 다듬는답시고 아무래도 나는 뿌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무슨 알량한 휴머니즘이냐고 누가 핀잔한대도 콩나물도 근본은 있어야지 않느냐
    그 위를 향한 발돋움의 흔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하지는 못하겠다
    아무래도 나는 콩나물 대가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죄 없는 콩알들을 어둠 속에 가두고
    물 먹인 죄도 죄려니와 너와 나 감당 못할 결핍과 슬픔과 욕망으로
    부풀은 대가리 쥐뜯으며 캄캄하게 울어본 날들이 있잖느냐 무슨 넝마 같은 낭만이냐
    하겠지만 넝마에게도 예의는 차리겠다 그래, 나는 콩나물에게 해탈을 돕는 마음으로
    겨우 콩나물의 모자나 벗겨주는 것이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운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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