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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사랑학 개론(13)]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중산층 여성이 귀족 남성과 ‘밀당’ 끝에 결혼한 스토리
…오늘날 영국·한국 결혼 풍속도에도 많은 생각거리 던져
제인 오스틴 원작을 영화로 한 로맨스 영화 [오만과 편견]의 한 장면. 이 소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행한 결혼이냐 아니면 행복한 독신이냐.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흑백논리(false dilemma)다.
사랑이 있는 행복한 결혼이나 불행한 독신도 있다.
[오만과 편견]은 독신자가 쓴 사랑과 결혼 이야기다.
영국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초상화.
어떤 글의 ‘리드(lead)’, 즉 도입부는 독자가 그 글을 계속 읽어나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하는 데 결정적이다
(물론 글쟁이는 독자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글 전체의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락 한 단락을 마치 리드처럼 공들여 쓴다).
신문기사건 소설이건 에세이건 서평이건 마찬가지다. 리드가 결정적이다. [뉴욕타임스(NYT)] [이코노미스트] 등 세계의 유명 매체들의 제작 매뉴얼은 하나같이 리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힘찬 리드 중 하나인 [안나 카레니나]의 “모든 행복한 가정은 대동소이하다. 모든 불행한 가정은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만큼 유명한 리드는, 아니 어쩌면 더 유명한 리드는, 제인 오스틴(1775~1817)의 [오만과 편견]에 등장하는 다음 첫 문장이다.
“상당한 재력가인 미혼 남자는, 반드시 아내가 필요하다는 게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진리다
(It is a truth universally acknowledged, that a single man in possession of a good fortune, must be in want of a wife).”
왜 세계의 독자들은 첫 문장, 혹은 소설 전체에 매료된 것일까. 짧고 쉬운 대답은 ‘사랑과 결혼에 미치는 계급·신분 차이 라는 핵심 문제를 재미있게 건드렸기 때문이다’일 것이다.
[오만과 편견]은 19세기 초반 버전의 신데렐라 이야기다. 21세기 초반 독자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오만과 편견]을 중학생 눈높이에 맞게 축약·번역한 한글판.
다시 집안은 정복왕 윌리엄(1028~1087)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시는 창문이 1000개나 되는 집에 산다.
다시의 연간 수입은 오늘날 가치로 1850만 달러에 해당한다는 추산도 있다. 잘하면 최소한 딸 두 명의 배필을 마련할 인생일대의 기회가 베넷 부인에게 온 것이다.
상당히 섹시한 중년 부인인 베넷은 딸 다섯의 엄마다. 제인·엘리자베스·메리·캐서린·리디아다. 아들은 없다.
그래서 당시 영국법과 관습에 따라 재산은 남자 친척에게 상속된다. 남편이 죽으면, 잘못하면 자신과 딸들은 알거지 신세.
우리 속담에 “내 딸이 고와야 사위를 고른다” 고 했다. 엄마의 딸 다섯은 모두 개성 있고 매력 있다.
그런데 인품은 훌륭하지만 좀 냉소적인 기질이 있는 남편은 아내의 애타는 노력에 ‘나 몰라’ 한다. 딸들의 결혼을 위해 아내가 워낙 열심이라 남편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엄마는 이 소설 속에서 딸 다섯 중 3명을 좋은 데로 시집보낸다. 나머지 두 명도 좋은 신랑을 얻는다는 후문. 가상의 인물이지만 이 엄마는 자신의 꿈을 이뤘다.
유식하건 무식하건 일단 꿈이 있는 게 장땡이다.
[오만과 편견]은 전 세계에서 최소 2000만 부가 팔린 책이다. [오만과 편견]은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일종의 ‘산업’이라는 주장도 있다. 저작권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영화·드라마 등으로 리메이크되기 때문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먼 조상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결혼은 두 사람이 아니라 두 가문이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가족 소설’이기도 하다.
영화 [오만과 편견]의 배경인 채츠워스 하우스 앞에 선 데본셔 공작부인(오른쪽)과 영국 모델 스텔라 테넌트.
프라이드(pride)는 엄연히 우리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는 외래어다. 외래어도 일단 우리 사전에 등록되면 우리말이다.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은 프라이드를 이렇게 정의한다.
“자신의 존재 가치, 소유물, 행위에 대한 만족에서 오는 자존심.”
우리말 프라이드는 자존심·자존감·긍지 등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하지만 영어 pride는 이에 더해 자만심·우월감·오만을 의미한다. 오만(傲慢)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 또는 그 태도나 행동”이다.
[Pride and Prejudice]의 Pride에는 이중 의미(double meaning)가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자존심·자존감·긍지로서의 프라이드가 지나치면 자만심·우월감·오만이다. 과유불급인 것이다.
또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일 수도 있다. 내 프라이드를 남은 오만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제목이 [Pride and Prejudice]이니 남성 주인공을 ‘pride’, 여성 주인공을 편견을 상징하는 인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적어도 겉으로는 좀 오만한 한 남자를, 자신은 사람을 잘 파악한다고 자부하는 편견에 사로잡힌 한 여자가 만나, 각기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고 결혼해 ‘그들은 그 뒤 쭉 행복하게 살았다(And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의 시작으로 끝난다는 투의 해석이다.
20세인 여성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Elizabeth Bennett)은 평범한 시골 지주(젠트리), 요즘으로 말하면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귀족도 중산층도 나름 프라이드가 있다. 또 서로에 대한 편견도 있다.
둘은 처음 춤추는 자리에서 만났다. 다시는 엘리자베스와 춤추기를 거부한다. 엘리자베스는 모욕감을 느낀다. 다시는 엘리자베스의 생김새가 별로라고 생각한 듯하다.
배우 이민우와 김희선이 출연했던 드라마 [춘향전]. 이몽룡의 프러포즈를 성춘향이 받아들이면서 러브스토리가 시작된다.
다시의 이런 오만한 태도에 엘리자베스는 그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된다.
‘귀족놈들은 다 이래’라는 식으로 느꼈을 수도. 한마디로 남주인공에 대한 여주인공의 첫인상은 ‘밥맛’.
엘리자베스에 대한 다시의 첫인상은 ‘괜찮지만 아름답지는 않다’였다.
호감과는 거리가 먼 첫만남은 과연 어떻게 사랑과 결혼으로 골인할 것인가.
첫눈에 반하는 사랑도 있지만,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사랑은 서서히 타오르는 사랑이다.
두 주인공은 옥신각신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신데렐라의 리메이크라고도 할 수 있는 [오만과 편견]은 공주님과 왕자님의 러브스토리는 일사천리가 아니다(‘첫눈 사랑’과 ‘서서히 사랑’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지는 알 수 없다. 온갖 시시콜콜한 문제를 다루는 미국이나 유럽 학계에서 결정타를 날리는 학술 논문이 이미 나왔을 수도 있다).
엘리자베스·다시와 달리 언니인 제인과 빙리는 첫눈에 서로 좋게 여긴다. 언니 제인은 인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다. 베넷 부인의 막내 딸 리디아가 조지 위컴이라는 장교와 ‘눈이 맞아 함께 달아나는(elope)’ 대형 사고를 친다. 15세에 불과한 리디아가 겉만 번지르르한 남자의 꼬임에 빠진 것.
당시 혼전 관계는 어마어마한 스캔들이었다. 본인뿐만 아니라 나머지 딸도 결혼하기 힘들어지는 곤란한 상황이다. 게다가 그 나쁜 남자는 막내 딸과 결혼할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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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뮤지컬 공연에서 빨간 모자 소녀가 인형 그림자로부터 프러포즈를 받고 있다.
[오만과 편견] 교훈은 무엇일까? 아마도 ‘사람은 겉만 봐선 모른다’는 게 반드시 포함돼야 할 듯하다.
[오만과 편견]의 원 제목은 ‘첫인상(First Impressions)’이었다. 첫인상은 맞는 경우도 있고 틀린 경우도 있다.
[오만과 편견]에서도 ‘의사소통의 실패(communication failure)’가 큰 문제다.
사랑에 성공하려면 자신의 의사를 잘 전달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엘리자베스의 언니인 제인은 성격이 내성적이라 사랑을 잘 표현을 못해 하마터면 빙리와 헤어질 뻔했다.
‘오만과 편견’은 사랑에만 장애물이 되는 게 아니다.
학벌이나 지연, 남녀 차이에 대한 오만과 편견은 우리에게 수많은 기회를 빼앗는다.
‘오만과 편견’은 국제 관계나 다른 나라 문화를 바라볼 때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남북통일 과정에서도 ‘오만과 편견’은 뛰어넘어야 할 장벽이 아닐까.
월간중앙>문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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