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스크랩] 남자도 울어야 한다 / 인문학 살롱

tlsdkssk 2018. 12. 20.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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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홍 신
소설가, 민주시민정치아카데미 원장



남자도 울어야 한다


자유롭다는 것은 생긴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한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세상에는 ‘남자는 울면 안 된다’라는 말처럼 사람의 개성을 무시하고 틀에 맞추려 하는 위험한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우리가 원하는 자유와 평화, 행복은 자연스러움을 회복하고 상대방을 위해주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일상 속 소소한 자유의 의미


경보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 본 적이 있다. 선수들은 무릎을 구부리지 않은 채 매우 빠른 걸음으로 운동장을 쉴 새 없이 돌았다. 선수들을 안내하는 코치는 가볍게 뛰면서 계속 시간을 확인했다.

코치들의 몸놀림은 가벼웠지만 선수들은 두 팔을 앞뒤로 흔들면서 안간힘을 다해 빠르게 걸었다. 구경하는 내 마음이 안타까운 것은 무릎을 구부리지 않고 걷는 게 얼마나 답답하고 힘겨울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경보선수 흉내를 내며 따라 걸었다. 조금만 걸어도 자세가 흐트러지고 자꾸 무릎이 굽혀졌다. 일정한 거리를 한쪽 발이 땅에서 떨어지기 전에 다른 발을 닿게 하여 빨리 걷는 운동이기 때문에 무릎을 굽힐 수가 없는 것이다.
일반인들 눈에는 경보선수들의 동작이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경보선수들 훈련모습을 따라 해보면서 자유롭다는 게 참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생긴 대로 자연스럽게 걷고 숨 쉬고 눕고 일어나고 웃고 우는 게 자유인 것을.


자유라는 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았으니 내가 나를 그물에 가두어두었던 셈이다. 일상에서 생긴 대로 움직이고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면서 내 몸과 마음이 생긴 대로 행동하는 게 자유이며 행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젊은 시절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화를 가라앉히지 못할 때는 슬픈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그럴 때는 차라리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털어버리는 게 낫지 청승맞게 왜 그러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슬픈 영화를 보면서 유달리 눈물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같이 관람하는 사람의 놀림감이 되곤 했다.

<스잔나>, <러브스토리>처럼 여주인공이 병고에 시달리다가 죽는 영화를 본 뒤에 하도 울어서 눈두덩이가 퉁퉁 부어 한참이나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를 해야만 했다.


요즘도 더러 영화를 보거나 TV에서 슬픈 장면을 보면 눈물샘이 터지곤 한다. 감정이 예민한 것인지 감성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본디 눈물샘이 그 모양으로 생겼는지 모른다. 사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 듣기를 ‘사내 녀석은 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울고 싶을 때는 슬픈 영화를 보고 실컷 울었던 것이다.


마음대로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


‘남자는 일생동안 세 번 운다.’는 말은 남자다움과 듬직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말 그대로 남자는 남자답게 언제나 자신감 있고 활발하며 속이 넓고 그리고 여자는 여자답게 조신하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습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속 좁게 행동하거나 의사 결정도 잘 하지 못하는 남자가 있으면 좀 남자다워지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과 태도는 각 개인의 개성을 무시한 규격화된 남자, 여자로 만드는 무서운 생각이다.


어쨌거나 울지 않는 사내로 자라면서 정말 울고 싶은 걸 참아내느라 쌓인 감정을 털어내려고 슬픈 영화나 슬픈 소설을 파고들었는지 모른다. 철이 든 뒤에 나는 ‘사내도 울 줄 알아야 아름답다’는 글을 쓰거나 ‘자기에게 웃고 남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멋지다’라는 주장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전문가의 글을 읽으며 혼자 흐뭇하게 웃었다. 램지 재단의 ‘알츠하이머 치료 연구센터’는 남성보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긴 이유 중 하나는 남성보다 여성이 잘 울기 때문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성은 남성보다 5배나 잘 울고, 여성 83%와 남성 73%는 실컷 울고 난 뒤에 심신 상태가 호전 되었다고 한다. 우리사회가 점점 각박해지는 게 설마 남자들이 울 줄 몰라서 그럴 리야 있겠냐마는 자기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세상은 평화롭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행복하려면 걸림 없는 바람 같은 자유와 무엇에든 스며드는 물 같은 평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에게 먼저 도닥이며 웃어주는 게 자유라면 남을 위해서 울어주는 것은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을 위해 실컷 울어주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영혼에도 신비스런 치료제가 될 것이다.


/ 금융


금융.

전국은행연합회 (http://www.kfb.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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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ing & Culture_ 건강하게 100세까지


잘 울어야 건강하다


1997년 8월, 영국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자 영국 국민은 비탄에 빠졌다. 눈물을 흘리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 후 이상하게도 영국의 정신병원과 심리상담소에 우울증 환자 방문이 한동안 절반으로 줄었다. 정신과 의사들은 다이애나의 장례식 때 실컷 울고 카타르시스를 느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이를 ‘다이애나 효과’라고 불렀다.
웃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해서 억지로 웃게 하는 ‘웃음 치료’가 주목 받고 있지만 잘 우는 것도 웃는 것만큼 건강에 도움이 된다. 웃음이 면역력을 높여 주는 것처럼 울음 역시 스트레스를 없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슬픔을 참지 말고 울어라


슬플 때 잘 울 수 있는 사람이 병에 덜 걸린다는 사실은 임상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팀이 건강한 사람과 위궤양이 있는 남·녀 137명을 나눠 조사했더니 위궤양 환자보다 건강한 사람들이 우는 것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필요한 경우 더 잘 우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슬퍼도 울음을 참는 사람이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위궤양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동맥경화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우는 사람보다 소리를 내서 “엉~엉~” 우는 사람의 심장마비 발병률이 더 적은 것으로 연구된다.


아이들의 울음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할 때는 울음이 유일한 의사 표현 수단이다. 그런데 말을 할 만큼 큰아이의 경우에도 울음은 나름의 의사 표현 수단으로 사용된다. 예컨대 아이가 병원에 갔을 때 우는 것은 병원에 대한 공포를 울음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운 아이들이 오히려 병원에 대한 공포가 표출돼서 병에서 회복되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억지로 울음을 그치게 하면 회복도 늦고 병원에 대한 공포감도 지속한다고 알려졌다. 잘 울지 않는 아이는 걱정거리가 있을 때 땀이나 침을 과도하게 흘리는 등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아이가 운다고 야단부터 치는 것은 곤란하다.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울음을 참는 남자는 고통이 길다


눈물은 스트레스 물질 배출 통로다. 슬픈 영화를 볼 때와 양파를 썰 때 눈이 매워 나오는 눈물을 비교한 실험에서 ‘영화 눈물’에서 ‘양파 눈물’보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카테콜아민이 더 많이 빠져나갔다.

카테콜아민은 혈관을 수축시켜 심혈관 부담을 주는 물질이다. 즉 눈물이 스트레스 호르몬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다.


미국 통계로는, 여성들은 한 달 평균 5.3회 우는 반면, 남자는 1.4회 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남자는 태어날 때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등 평생 3번만 울어야 한다고 배웠다. 남성이 눈물에 관한 한 불평등 대우를 받아왔다. 남자의 평균수명이 여자보다 짧은 이유 중 하나가 여자보다 덜 울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울고 나서 심신의 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느끼는 것은 똑같다. 오죽하면 중국에서는 남자들 이목 때문에 울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눈물 방’이 나왔을까. 울음을 참는 남자다움이 고통을 길게 끌고가는 요인이 된다.


울음을 터뜨리면서 치유가 시작됐다


살면서 가족을 잃는 상실처럼 슬픈 일이 어디 있겠나. 아무리 나이 든 부모가 돌아가셔도 다시는 부모를 볼 수 없는 죽음이다. 자식들에게 호상(好喪)은 없다. 하물며 분신처럼 여기는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은 어쩌겠나.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게 요즘 부모의 마음이다. 더욱이 자살로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괴로움은 상상 이상이다. 밥숟가락 드는 것 자체가 죄스럽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어떻게 그다음 인생을 살아갈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면서 치유가 시작됐다고 한다. 고통을 짊어진 사람일수록 먼저 울기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눈물은 신이 인간에게 준 치유의 정화수이다. 슬프면 울어야 한다. 자주 웃는 것만큼 잘 우는 것이 면역력 유지에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 남자의 평균수명이 여자보다 짧은 이유는 남성이 여성보다 덜 울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컷 울었을 때 괴로운 현실을 왜곡된 시각으로 보지 않게 된다.


우리의 수명이 늘어날수록 사는 기쁨도 길어지지만, 별의별 상실과 슬픔도 겪게 된다.

웃음과 울음 다 주고 너무 이르게 이별하는 사람들, 성대한 애도로 잘 보내야 한다. 제대로 울지 않으면 몸이 대신 앓는다.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
영상의학과 전문의



흙사랑 물사랑

한국농어촌공사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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