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추리의 한자 이름은 암순(鵪鶉)이다. 『시경』 용풍(鄘風)에 「순지분분(鶉之奔奔)」이란 시가 있다.
메추리는 쌍쌍이 날고
鶉之奔奔
까치도 짝지어 노는데
鵲之彊彊
옳지 못한 사람을
人之無良
내가 형으로 여겨야 하나!
我以爲兄
위나라 선강(宣姜)이 공자 완(頑)과 음란한 짓을 한 것을 풍자한 시로 알려져 있다. 메추리는 분분(奔奔)하다 했는데, 분분이란 말은 짝이 날면 따라 나는 모양을 나타낸다. 메추리나 까치는 늘 제 짝에 대한 믿음을 지켜 신의롭게 행동한다. 자기 아내를 둔 채 다른 여자들과 음란한 짓을 하고 다니는 형에 대한 원망을 메추리에 얹어 노래했다.
이시진은 『본초강목』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순(鶉), 즉 메추리는 성질이 순박(醇朴)하다. 얕은 풀밭에 숨어 사는데, 일정한 거처는 없지만 정한 짝이 있다. 어디서든 만족하며 산다. 장자가 말한 ‘성인순거(聖人鶉居)’라는 것이 이를 일컫는다. 가다가 작은 풀을 만나도 돌아가 피하니 또한 순박하다 할 만하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만족하며 사는 자족의 마음, 작은 풀과 마주쳐도 뚫고 지나가는 대신 돌아서 가는 순박한 자세 등 메추리가 지닌 여러 덕성을 들었다.
메추리와 관련된 성어에 ‘현순백결(懸鶉百結)’이라는 말이 있다. 메추리는 깃털에 무늬가 있고 꽁지깃이 없다. 그 모습이 마치 누덕누덕 기워 입은 옷 같아서 해져서 기운 누더기옷, 달리는 가난한 살림을 뜻하는 의미로 쓰였다. 신라 때 백결(百結) 선생도 입고 있던 의복을 여러 군데 기운 것이 마치 메추리 깃털 같대서 붙여진 별명이다. 『본초강목』에서 ‘어디서든 만족하며 산다’고 한 말을 떠올리면, 메추리는 안빈낙도(安貧樂道), 안분자족(安分自足)을 상징하는 새임을 알 수 있다.
들밭의 메추리
野田鶉
들밭 가운데서 언제나 사네.
生在野田中
억새 덤불 속에다 둥지를 트니
結巢蒿荻叢
무성한 숲 의탁한 것 비록 아녀도
雖非托茂林
제 한 몸 숨기기엔 충분하다오.
亦足藏其躬
해 저물고 날씨 추워 북풍 매운데
歲暮天寒北風勁
주린 매 부리 갈며 서리 하늘 떠 있네.
飢鷹厲吻當霜空
들밭의 메추리
野田鶉
네 몸이 미약하다 한하지 말아라
莫恨爾身微
발톱에 낚아채여 매 먹이 됨 면하리니.
得免爪攫充朝飢
알겠구나 크고 작음 제각기 쓸모 있어
乃知大小各有用
만물이란 모두 다 하늘이 낸 것임을.
萬物皆天機
홍세태(洪世泰, 1653~1725)의 「야전순행(野田鶉行)」, 즉 들밭 메추리의 노래다. 무성한 숲이 아닌 억새 숲속에 둥지를 틀고 산다. 사는 곳이 누추하고 보잘것없지만 겨울의 텅 빈 숲 위에는 배고픈 매가 부리를 갈면서 주린 배를 채우려고 선회하고 있다. 하지만 메추리가 숨어 있는 덤불 속까지는 매의 매서운 눈초리도 미치지 못한다. 메추리가 비록 하찮게 보여도 그 하찮음으로 인해 매의 먹이 되는 불운은 면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세상 모든 것은 제가끔의 쓸모가 있음을 알 수 있겠다. 역시 안분자족의 새로 그려져 있다.
화락하고 편안하게
새 그림 중에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메추리 그림이다. 조선 후기의 화가 최북(崔北)은 특히 메추리 그림을 즐겨 그려 ‘최 메추리’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추순탁속(秋鶉啄粟)」에서 보듯 메추리 두 마리가 고개 숙인 조 이삭 아래서 낟알을 주워 먹고 있다. 또 송나라 때 이안충(李安忠)이 그린 「야훼추순도(野卉秋鶉圖)」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산초나무가 등장한다. 두 그림 모두 할미새의 경우처럼 꼭 두 마리가 함께 나온다. 특이한 점은 반드시 가을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조 이삭 아래서 낟알을 먹는 모습이거나 산초 열매 아래의 모습을 포착하는데 국화를 함께 그려 계절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무슨 의미를 담은 그림일까?
메추리 그림에서 두 마리가 함께 나오는 것은 앞서 보았듯 한번 정한 짝을 바꾸지 않는 이 새의 성질에 바탕을 둔 것으로 부부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메추리 그림에 왜 반드시 조 이삭이 등장하는 걸까? 조(粟)는 당나라 이신(李紳)이 「고풍(古風)」이란 시에서 “봄날 한 알 조를 심어서, 가을엔 만 낱의 결실을 얻네(春種一粒粟, 秋成萬顆子)”라고 한 데서 보듯 풍성한 결실을 뜻한다. 한 알의 씨앗이 1만 개의 열매로 맺어지듯 자식을 많이 낳아 풍성하고 넉넉한 삶을 누리시라는 축복의 뜻을 담은 것이다. 메추리 그림 위에 그려진 산초나무도 같은 의미다.
한편으로 조는 벼과의 곡식이다. 메추리와 조를 함께 그린 그림을 흔히 안화도(安和圖)라고 한다. 안(安)은 암(鵪)과 중국 음이 같고, 화(和)는 화(禾)와 소리가 같기 때문에, 편안하고 화락하게 복을 짓고 살라는 축원의 뜻으로도 읽었다.
또 국화의 국(菊)은 거처한다는 뜻의 거(居)자와 중국 음이 같다. 그래서 메추리와 국화를 함께 그린 암국도(鵪菊圖)는 발음상 안거도(安居圖)가 된다. 채용신의 메추리 그림은 전형적인 안거도다. 만일 여기에 낙엽까지 그려 넣으면 낙엽(落葉)과 낙업(樂業) 역시 발음이 같은지라 「안거낙업도(安居樂業圖)」가 된다. 말 그대로 메추리처럼 만족하며 살면서 주어진 일을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다시 메추리를 아홉 마리 그리면 ‘구세안거도(九世安居圖)’가 된다. 당나라 때 장공예(張公藝)란 사람은 9대가 한집에 살고 있었다. 임금이 그 집에 행차하여 비결을 물으니, 그는 참을 인(忍)자를 백 번 써서 바쳤다. 흔히 덕담으로 많이 쓰는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太和), 백 번 참는 집에는 큰 화평이 있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왕성화의 그림에도 제목을 「안거도(安居圖)」라고 붙여놓았다. 「화조초충화첩」의 ‘추순도(秋鶉圖)’처럼 요화(蓼花), 즉 여뀌꽃과 함께 그리면 벼슬을 마치고요(蓼)는 마친다는 뜻의 요(了)와 발음이 같다 만년에 편안히 지내시라는 그림이 된다.
조선 전기에도 메추리 그림을 즐겨 그렸던 모양이다.
대나무 울 갇혀서 구경거리 괴롭구나
苦遭人玩困籠樊
앵무새는 말 잘하고 꿩은 무늬 곱다지만
鸚鵡能言雉以文
하찮은 새 어이하여 줄에 묶인 신세 됐나
何謂微禽還受紲
붓끝에 묘한 기운 그림 함께 우러르네.
筆頭傳妙畫俱尊
신광한(申光漢, 1484~1555)의 「제화암순장자(題畫鵪鶉障子)」란 작품이다. 메추리를 그린 가리개 그림에 써준 것이다. 그림 속 메추리는 아마도 대나무로 엮어 세운 울짱 안에 묶인 채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메추리가 묶여 있었던 것은 예전에 메추리 고기를 즐겨 먹었던 까닭이다. 신광한의 다른 시를 보면 친구가 메추리 열다섯 마리를 보내온 것을 사례하는 내용이 나온다. 소세양(蘇世讓, 1486~1562)의 「사인혜암순(謝人惠鵪鶉)」은 벗이 보내온 메추리를 받고 고맙다며 보낸 답장이다.
눈 속의 짧은 꼬리 기름기 외려 많아
雪中短尾轉多脂
쑥대 아래 그물 치자 절로 걸려들었네.
蓬底張羅也自罹
혼자서 술 마실 때 그 맛이 딱 좋으니
風味正宜供獨酌
이제부턴 게나 자라 좋은 안주 필요 없네.
蟹鼇從此不須待
메추리 고기를 두고 기름기가 많으며 맛이 좋아 최고의 안줏감이라고 칭찬한 내용이다. 메추리가 잘 다니는 덤불 아래에 그물을 쳐서 메추리를 잡았던 것도 이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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