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고독하게 떠난 사람들, 그 흔적 어루만지는 '마지막 동반자'

tlsdkssk 2018. 3. 3. 08:16

Why]


 

소통 단절의 시대에 급성장하는 특수 청소·유품 정리업체
전문 특수 청소업체 10여곳
냄새 없애는데 최대 2~3주.. 하루 몇 번씩 샤워하고
처음 몇 달간은 악몽 꿔.. 담력만큼 중요한 건 '보안'
유품 정리인이 본 실태
유산부터 다이어리까지.. 정리 매뉴얼 책 1권 분량
공통점은 주변과의 단절.. 먹을 게 없어 죽거나 빈부 차이 있는 것 아니야
지난해 고독사 2010명
4년만에 57%나 늘었지만 사실상 정확한 통계 없어
日선 신문배달·검침원이 고독사 징후 땐 바로 신고

서울 홍은동 어느 다가구주택에서 한 남성(44)이 아사(餓死)했다. 이혼과 사업 실패로 생긴 빚더미가 이 40대 남성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 혼자 살던 10평(33㎡) 남짓한 공간에는 외롭고 추웠던 말년을 방증하듯 생활 쓰레기가 넘쳐났다. 음식 쓰레기는 말라붙었고, 수도관과 계량기는 한파에 얼어 터져 제구실을 못 한 지 오래였다. 바닥엔 각종 고지서와 요금 청구서가 뒹굴었다. 시신을 수습해간 지 몇 주 지났지만, 지난달 21일 찾아가본 집 안에선 시취(屍臭·주검에서 나는 냄새)가 진동했다. 유황 타는 냄새 같았다.

길해용(34)씨는 약 1주일 가까이 이 공간에 머물며 홀로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는 고독사나 자살 현장의 혈흔과 악취, 구더기 등을 제거해 현장을 '원상 복구'하는 특수 청소 업체의 대표다. 살인부터 사연 있는 고독사까지 8년 넘게 수백여 현장을 누빈 베테랑. 그는 "시취를 완벽하게 없애고 작업을 끝내기까지 최대 2~3주가 걸린다"고 했다.

악취의 제1 원인은 시신에서 나오는 부패액이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 면적의 부패액만 묻어 있어도 온 집 안에 악취가 풍긴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작업한 날은 하루에 2~3번씩 샤워를 해도 냄새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하늘색 작업복으로 온몸을 두른 길씨는 부패액으로 오염된 이불과 매트리스를 우선 들어냈다. 바닥 곳곳에는 혈흔 제거제와 크레졸(화학약품)을 발랐다. 길씨는 "시신에서 나온 수분이나 지방이 장판 안쪽으로 스며들 때 가장 골치 아프다"고 했다. 약품을 쓰고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으면 장판을 뜯어 바닥 밑의 콘크리트까지 들어낸다. 문틈과 싱크대 밑 등 구더기가 숨어들 만한 장소를 찾아 원천 봉쇄하는 것도 중요하다.

작업 현장엔 개조한 공기청정기와 자외선·오존 살균소독기 등 그가 '첨단 장비'라 부르는 것들도 등장했다. 화학약품을 사용하고 나면 벽과 바닥을 살균 청소한다. 이후 공기정화제와 산업용 탈취제를 집 안 곳곳에 살포한다. 단계별로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둔다.

일러스트 이철원

1인 가구 증가와 함께 성장

통계청에 따르면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비율은 27.2%(2015년 기준)에 달한다. 이웃과의 교류가 뜸해지면서 뒤늦게 알려지는 죽음이 많아졌다. 지난해 11월엔 배우 이미지씨가 서울 강남의 오피스텔에서 홀로 숨진 지 2주 만에 발견되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 현장의 뒤처리를 해야 한다. 2010년을 전후해 등장한 특수 청소 업체들은 1인 가구, 고독사의 증가 추세와 함께 비약적으로 성장해왔다. 한국유품관리사협회 등에 따르면 전문 장비를 갖추고 오염물과 악취를 제거하는 업체가 국내에 10곳 안팎이다. 유품 정리, 재활용·이삿짐 업체, 고물상 등 관련 기업까지 더하면 1000여곳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보다 앞서 고독사 문제를 겪어온 일본에선 특수 청소 업체만 30곳, 관련 업체 숫자는 3000곳이 넘는다.

경찰에서 사인(死因)을 확정하면 그때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의뢰인들은 왕래가 거의 없었던 유족이나 고인을 세입자로 둔 집주인들이다. 비용은 최소 20만~30만원에서 최대 수천만원대까지 천차만별. 망자가 머물던 공간의 넓이, 유품의 양과 현장 훼손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봄과 여름에 특히 의뢰가 몰린다고 한다.

현장에는 구더기가 들끓고, 두피째 벗겨진 머리카락이 장판에 들러붙어 있다. 강한 담력이 필수다. 장례지도사 출신으로 특수 청소업을 하는 김모(30)씨는 "비슷한 일이라 생각해 뛰어들었지만, 처음 두세 달은 종종 악몽에 시달렸다"고 했다. 보안 의식도 중요하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의뢰인들이 많다. 소문이라도 나면 향후 방을 세놓거나 건물을 팔기 어려울까 봐 걱정돼서다. 전화 통화로만 일을 진행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고인의 시간을 되돌리는 사회적 부검의"

특수 청소에서 유품 정리까지 '원스톱'으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도 있지만, 한 분야에만 특화한 곳도 있다. 김석중 키퍼스 한국 지점 대표는 2000년대 후반 건너간 일본에서 유품 정리업을 처음 접했다. 2011년 국내에 들여와 지난 8년 동안 고인의 유품들을 정리해왔다. 그는 "한국은 일본보다 고독사 증가세가 더 빠르다"며 "더 많은 업체가 더 나은 서비스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신이 죽으면 유품을 정리해 달라며 '사전 예약'을 하는 의뢰인도 최근 등장했다고 한다.

유품 정리인은 유족의 동의를 받고 고인의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 있다. 권리관계 서류와 유언장 등 중요한 문서부터 다이어리와 메모, 필요하면 휴대폰의 문자 수신·발신 내역까지 본다. 모든 일은 책 1권 분량의 매뉴얼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도시가스와 관리비 정산 등 간단한 일부터 시작한다. 집 안에 남은 가전제품 등의 가치를 판단해 판매나 기부, 폐기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유품을 정리하다 보면 사진 앨범 등 추억의 물건들이 나오기 마련. 그는 "유족들은 현금과 귀중품, 부동산을 제외하면 유품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사회적 부검의'라고 말했다. 유품 정리는 "고인의 시점으로 돌아가 시간을 역(逆)으로 돌리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년은 어떻게 보냈는지 되짚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불행한 죽음에는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지만,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건 주변과의 소통 단절"이라고 했다. 최근 찾은 한 기초생활수급자의 보증금 200만원짜리 집에는 쌀 여섯 포대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는 "현관문에 잠금장치가 없었을 만큼 집 안 어디에도 왕래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했다.

독거노인에게 집중됐던 고독사는 이제 빈부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평당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아파트를 가진 부유한 노인도 고독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난해 3월 서울 방배동의 한 아파트에 살던 60대 남성이 죽은 지 한 달 만에 발견됐다. 아내와 아들이 있었지만 외국에 살아 교류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주방 수납장엔 즉석밥과 라면 봉지만 가득했다. 그는 "한국에선 고독사 이면의 원인을 짚으려 하지 않는다"며 "우리 주변에 고립돼 있는 사람들을 찾아 그 '발화점'을 제거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했다.

고독사 관련 통계도 없고 대책도 없어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는 2010명. 2013년 1280명에 비해 57% 늘었다. 복지부가 집계하는 무연고 사망은 유가족이 없거나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에만 국한된다. '고독사'는 1인 가구가 가족·이웃과 교류 없이 홀로 숨지는 것으로 범위가 더 넓다. 하지만 법적으로 확립된 개념이 아니라 정확한 통계가 없다. 이 때문에 각 지자체는 무연고 사망자를 '고독사'로 추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 대표는 "인구가 1억명에 가까운 일본에선 고독사 인원만 연 3만명에 달한다"며 "우리도 실태 파악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고독사 예방을 위해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삶을 사는 독거노인과 1인 가구를 중점적으로 관리·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독사는 가족과 사회적 관계의 단절 탓에 발생한다"며 "혼자 사는 사람이 가족, 지역사회와 어우러질 수 있도록 연결 고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일본에선 복지 공무원 외에도 우편·신문 배달원이나 전기·가스 검침원이 고독사 징후를 확인하면 곧바로 신고한다. 국내에서도 최근 일부 지역에서 청·장년층 고독사 방지에 관심을 갖고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안부 확인 요구르트 배달 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부산 서구에선 배달원들이 주 1회 이상 취약 계층에 요구르트를 배달하며 안부를 확인한다.

고독사가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1인 가구가 증가하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가족과 친구를 포함한 타인과의 유대가 약해지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개개인의 삶을 존중하되 공원과 도서관 등 공동체 내 최소한의 커뮤니티를 복원하는 것도 하나의 해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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