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곳간

[스크랩] 동초 심청가 완창가사

tlsdkssk 2017. 12. 17. 13:28

(아니리)
송나라 원풍 말년에 황주 도화동 사는 한 소경이 있으되, 성은 심이요, 이름은 학규라. 누대 잠영지족으로 문명이 자자터니, 가운이 영체하여 이십에 안맹허니, 낙수청운에 발자취 끊어지고, 금장자수에 공명이 비었으니, 향곡에 곤헌 신세 강근한 친척 없고, 겸하여 안맹하니 뉘가 대접하랴마는, 그 안해 곽씨부인 또한 현철하여, 임사의 덕과 장강의 고움과 목란의 절행이며, 예기 가례 내칙편과 주남 소남 관저시를 모를 것이 바이없고, 봉제사 접빈객과 가장 공경, 치산범절, 백집사가감이나, 이제의 청렴이요, 안연의 가난이라. 야외에 편토 없고, 낭하에 노비 없어, 가련한 곽씨부인 몸을 바려 품을 팔 제,

(자진모리)
삯바느질 관대 도복 행의 창의 직령이며, 섭수 쾌자 중치막과 남녀 의복의 잔누비질, 상침질 꺾음질과 외올뜨기 꽤땀이며, 고두누비 솔올리기 망근꾸미기 갓끈접기 배자 토수 버선 행전 포대 허리띠 다님 줌치 쌈지 염낭으 필낭 휘양 볼치 복건 풍채이며, 천의 주의, 갖은 금침 벼갯모에 쌍원앙 수놓기와 화관 원삼 장옷, 문무 백관의 빛난 흉배 외학 쌍학 범 그리기. 명모 악수 제복이며, 질쌈을 논지허면 궁초 공단 수주 선주 낙릉 갑사에 운문 토주 갑주 분주 표주 명주 생초 통경의 조포 북포 황저포 춘포 문포 제추리며, 삼베 백저 극상세목 삯을 받고 맡어 짜기. 청 황 적 백 침향 회색을 각색으로 염색허기. 초상난 집 상복 제복, 혼대사에 음식 숙정, 갖인 증편 중계 약과 백산 화전에 다식 전 냉면 화채으 신선로, 각각 찬수 약주빚기, 수팔련 봉오림과 배상허기 고임질을, 일년 삼백육십일에 하로 반 때 놀지 않고, 품 팔아 모일 적에, 푼을 모아 돈이 되고, 돈 모아 양을 짓고, 양을 모아서 관돈 되면, 착실헌 곳 빚을 주어, 일수 체계 장리변으로 실수 없이 받어들여, 춘추시향의 봉제사와 앞 못 보는 가장 공경 시종이 여일허니, 상하촌 사람들이 곽씨부인 어진 마음 뉘가 아니 칭찬허리.

(아니리)
이렇듯 지성으로 공대를 허건마는, 심봉사 하루는 우연히 설음이 발허여 신세자탄 허는 말이, “우리 연당사십에 슬하 일점혈육 없어 선영 향화를 끊게 되니, 그 아니 원통허오? 옛 글을 보더라도, 공자님 어머니는 이구산에 치성하여 공자님을 낳으셨다니, 마누라도 지성으로 공이나 좀 드려보오.” 곽씨부인 이 말 듣고 그날부터 공드릴 제,

(중모리)
품팔어서 모은 재물 왼갖 공을 다 드린다. 명산대찰 영신당과, 고묘 총사 성황당과, 석불 보살 미륵님께 허위허위 다니면서, 칠성불공 나한불공 백일산제 제석불공 신중맞이 가사시주 인등시주 창호시주 다리권선 질닦기와, 집에 들어 있는 날도 성주 조왕으 당산 천룡 중천군웅으 지신제를 지극 정성 다 드리니,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심든 나무가 꺾어지랴. 갑자 사월 초팔일밤 한 꿈을 얻은지라. 천기 명랑허고, 서기 반공터니, 선인 옥녀 학을 타고 공중으로 내려온다. 몸에난 채단이요, 머리에는 화관이라. 월패를 느짓이 차고, 옥패소리가 쟁쟁터니, 계화가지 손에 들고 부인전 배례허며, 앞에 와 앉는 거동 뚜렷한 달정신이 품안에 떨어진 듯, 남해 관음이 해중에 다시 온 듯, 심신이 황홀허여 진정키 어렵더니, 선녀의 고운 태도, 호치를 반개허여 쇄옥성 맑은 소리로 알연히 허는 말이, “서왕모의 양녀로서 문창성과 정혼허여, 미처 행례 못 허여서, 문창이 천명 받어 천하 창생 건지기로 인간하강허옵기로, 따러 내려오옵더니, 몽은사 부처님이 댁으로 지시허여 바래고 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품안으로 안겨들어 깜짝 놀래 깨달으니, 남가일몽이 분명쿠나.

(중략)
(아니리)
이렇듯 즐길 적으, 그때여 곽씨부인은 해복헌 초칠일이 다 못 되어, 찬물에 빨래허기, 조석취반 허느라고 외풍을 과히 쐬어 산후별증이 나는디, 만신이 두루 붓고 호흡 천촉허여, 식음을 전폐허고 정신없이 앓는구나 “아이고, 배야.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가군님! 만신이 이렇게 아퍼, 아매도 나는 못 살겄소. 심봉사 겁을 내어 문의하여 약도 쓰고, 백 가지로 서둘러도 사병에 무약이라. 죽기로 난 병이니 일분 효차 있으리오? 병세 점점 위중허니, 곽씨부인 또한 살지 못 헐 줄 짐작허고, 눈물을 지으며 유언을 허는디,

(진양조)
가군의 손길을 부여잡고, ‘후유’ 한숨 길게 쉬며, “아이고 여보, 가군님. 내 평생 먹은 마음, 앞 못 보신 가장 일신 해로백년 봉양타가 불행 망세 당허오면, 초종장사 헌 연후어 뒤를 쫓아 죽쟀더니, 천명이 그뿐인지, 인연이 끊쳤는지 하릴없이 죽게 되니, 내가 아차 죽게 되면, 사고무친 혈혈단신 의지헐 곳 바이없어, 지팽이를 찾어 짚고 때를 찾어 다니다가 돌에 채여 넘어지나, 구렁에도 떨어져서 신세자탄 우는 모냥을 나 죽은 혼백인들 차마 어찌 듣고 보며, 명산대찰 신공 드려 사십 후에 낳은 자식 젖 한 번도 못 먹이고, 얼굴도 채 못 보고 원통히 죽게 되니, 멀고먼 황천길을 앞이 맥혀 어이 가리. 천행으로 저 자식이 죽지 않고 자러나서 제 발로 걷거들랑, 앞세우고 길을 물어 내 무덤을 찾어와서, ‘악아, 이 무덤이 너의 모친 분묘로다.’ 가르쳐 모녀상봉을 시켜주고, 천명을 못 어기어 앞 못 보신 가장으게 어린 자식 끼쳐두고, 영결허고 죽어가니, 가군의 귀허신 몸 애통허여 상케 말고 천만보중허옵소서. 차생의 미진한을 후생으나 다시 만나 이별 없이 사사이다.” 잡었던 손길을 시름없이 놓더니마는, 한숨 쉬고 돌아누워, 어린 아해를 끌어달여 혀도 차고, 얼굴도 문지르며, “천지도 무심코 귀신도 야속허다. 네가 진즉 삼겼거나, 내가 좀 더 살거나, 너 낳자 나 죽으니, 죽난 어미 산 자식이 생사간의 무삼 죄냐? 내 젖 망종 많이 먹고 후사를 전허여라.”

(중모리)
“아차, 내가 잊었내다. 이 자식 이름일랑 청이라고 불러주오. 저 주랴고 지은 굴레 오색 비단 금자 박어 진주느린 부전 달어 신행함에 두었으니, 그것도 씌워주고, 내가 쪘던 옥지환이 내 손에 적삽기로 경대 안에 두었으니, 심청이 자라거든 날 본 듯이 찌워주오. 헐 말이 무궁허나 숨이 가뻐 못 허겄소.” 이렇듯이 유언을 허더니, 자는 듯이 숨이 지는구나.

(중략)
(중중모리)
우물가 두레박 소리 얼른 듣고 나설 제, 한 품에 아이 안고, 한 손에 지팽이 걷더짚고, 더듬더듬 더듬 더듬 더듬더듬이 나간다. 우물가 찾어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뉘신 줄은 모르오나 초칠 안에 어미를 잃고 젖을 주려 죽게 되니, 이 애 젖 쪼끔 멕여 주오.” 우물가 오신 부인 철석인들 아니 주며, 도척인들 아니 주랴. 젖을 많이 먹여주며, “여보시오, 봉사님.” “예.” “이 집에도 아이가 있고, 저 집에도 아이가 있으니 어려이 생각 말고, 내일도 안고 오시고, 모레도 안고 오시면, 내 자식 못 먹인들 차마 그 애를 굶기리까?” 심봉사 좋아라, “허허, 감사허오. 수복강녕허옵소서.” 젖을 얻어 먹이랴 이 집 저 집을 다닐 적으, 그 때여 심봉사가 젖동냥에 이골이 나서, 삼베 질쌈허노라 ‘히히 하하’ 웃음소리 얼른 듣고 들어가, “이 애 젖 좀 멕여주오.” 오뉴월 뙤약볕에 김매고 쉬는 부인 더듬더듬 찾어가, “이 애 젖 좀 먹여주오.” 백석청탄 시냇물에 빨래허는 부인들께 더듬더듬 찾어가, “여보시오, 부인님네. 댁에 귀헌 아이 먹고 남은 젖 있거들랑, 이 애 젖 쪼끔 멕여주오.” 젖 없는 부인들은 돈돈씩 채워주고, 돈 없는 부인들은 쌀되씩 떠주며 맘쌀이라 허라허니, 심봉사 좋아라, “허허 감사허오. 은혜 백골난망이오.” 젖을 많이 먹여 안고 집으로 돌아올 적, 어덕 밑에 쭈구려 앉어 아기를 어른다. “둥둥 내 딸이야!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어허 내 딸 배불렀다! 흐흐, 아, 인자 배가 뺑뺑허구나. 아, 거 날마다 이렇게 배가 불렀으면 오직이나 좋겠느냐, 음! 둥둥 내 딸이야. 이 덕이 뉘 덕이냐. 동네 부인의 덕이라. 어려서 고생을 허면 부귀다남을 헌다드라. 너도 어서어서 자라나, 너희 모친 본을 받어 현철허고 얌전허여 아비 귀염을 네 보여라. 둥둥 두우웅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자진모리)
“둥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 내 새끼지야, 내 새끼. 어허 둥둥 내 딸. 눈 비 산천에 꽃봉이, 새벽바람에 연초록, 얼음 궁기 수달이로고나. 둥둥둥 내 딸. 댕기 끝에는 준주실, 옷고름에는 밀화불수, 어덕 밑에 귀냄이로구나. 슬슬 기어라, 어둥둥 내 딸. 쥐얌쥐얌 잘깡잘깡 엄마 아빠 도리도리 어허 둥둥 내 딸. 아나,올룰룰루루루. 아, 이것이 발써 나를 보고 빵긋빵긋 웃네그려. 허이, 참. 아, 그 웃는 입모습 영락없이 늬 어머니다. 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 서울 가, 서울 가, 밤 한 줌 사다가 살강 밑에 넣어놨더니마는, 머리 깜은 새양쥐가 들랑달랑 다 까먹고 밤 하나 남은 것을, 찬지름에 달달 볶아 너허고 나허고 둘이 먹자. 어허 둥둥 내 딸. 둥둥 두웅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아니리)
아해 안고 돌아와 포단 덮어 뉘어놓고, 아해 자는 틈을 타서 동냥차로 나가는디,

(중중모리)
삼베 전대 두 동 지어 왼 어깨 드러메고 동냥차로 나간다. 한 편에는 쌀을 받고, 한 편에는 나락 동냥. 어린 아해 맘죽차로 감을 사고 홍합 사, 왼 어깨 드러메고 허유허유 돌아온다. 그 때여 심청이는 하늘의 도움이라 잔병 없이 자러날 제, 세월이 여류허여 육칠 세가 되어가니, 부친의 지팽이 잡고 앞길을 인도허기, 모친의 기제사와 부친의 봉양사를 의법이 허여가니, 무정세월이 이 아니냐.
(중략)
(진양조)
그 때여 심봉사는, 적적헌 빈 방안으 더진듯이 홀로 앉어 딸 오기를 기다릴 제, 배는 고파 등에 붙고, 방은 치워 한기드는디, 먼 데 절 쇠북을 치니, 날 저문 줄 짐작허고 혼잣말로 탄식헌다. “우리 딸 청이는 응당 수이 오련마는, 어이 이리 못 오는그나. 아이고, 이것이 웬 일인가. 부인으게 붙들렸나, 길에 오다 욕을 보느냐? 풍설이 자자허니 몸이 치워 못 오는가?” 새만 푸르르르르르 날어가도 심청인가 불러보고, 낙엽만 퍼썩 휘날려도, “악아! 청이 오느냐? 악아! 청아!” 아무리 불러봐도 적막공산의 인적이 없어지니, “허허, 내가 속았구나! 아이고, 이 일을 어찌를 헐끄나. 내가 분명히 속았네그려.”

 (자진모리)
심봉사 거동 보아라. 속에 울화가 버쩍 나서, 닫은 방문을 후닥딱! 지팽이 흩어짚고,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이 나가는디, 그때으 심봉사가 딸의 덕에 몇 달을 가만히 앉어 먹어노니 도량출입이 서툴구나. 그저 더듬더듬 더듬더듬이 나가면서, “아이고, 청아! 어찌허여 못 오느냐? 에이? 이거 어쩐 일인고, 응?” 그저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이 나간다. 급히 다리를 건너다가 한 발 자칫 미끄러저 질 넘은 개천물에 밀친 듯이 “풍!” “아푸! 아푸! 아이고, 사람 죽네!” 나오라면 미끄러져 무진무진 들어가고, 나오라면 미끄러져 풍 빠져 들어가니, 심봉사 겁을 내어, 먼 눈을 희번쩍 희번쩍 번쩍거리며, “아이고, 사람 죽네! 아푸! 도화동 심학규 죽네!” 아무리 소리를 지른들, 일모도궁허여 인적이 끊쳤으니, 뉘라 건져주겠느냐.

(아니리)
그 때 마침 몽은사 화주승이 절을 중창허랴 허고, 권선문 드러메고 시주집 다니다가 그렁저렁 날 저물어 절을 찾어 올라가는디,

(엇모리)
중 올라간다. 중 하나 올라간다. 저 중의 거동 보아라. 저 중의 호사 봐. 세구라죽감투 호홉뽁 눌러쓰고, 백저포 장삼으 진홍뛰 뛰고, 백팔염주 목에 걸고, 단주 팔에 걸고, 구리 백통 반은장도 고름에 느짓이 차고, 용두 새긴 구절죽장 쇠고리 많이 달아 처절철 철철 처절철 툭탁 짚고, 흔들 흔들 흐늘거리고 올라갈 제, 원산은 암암허고 설월이 돋아오는디, 먹물 얄포시 들인 백저포 장삼은 바람결에 펄렁 펄렁. 염불허며 올라간다. 염불허며 올라가. 중이라허는 게 절에 들어도 염불이요, 속가에 나도 염불. 염불허며 올라갈 제 목탁을 ‘또드락 딱’ 치며,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상래소수공덕해 회향삼처실원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허며 올라갈 제, 한 곳을 당도허니 어떠한 울음소리가 귀에 얼른 들린다. 저 중이 깜짝 놀래, “이 울음이 웬 울음? 이 울음이 웬 울음? 마외역 저문 날에 하소대로 울고 가던 양태진의 울음인그나. 이 울음이 웬 울음? 이 울음이 웬 울음? 호시절 찬바람에 송통군을 이별허던 소중랑의 울음이냐? 이 울음이 웬 울음? 이 울음이 웬 울음? 이 울음이 웬 울음? 여호가 변화허여 나를 호리랸 울음인그나? 이 울음이 웬 울음?” 이리 끼웃 저리 끼웃 한 곳을 당도허니, 어떠한 사람인지 개천물에 떨어져, “아푸! 어푸!” (자진엇모리) 저 중의 급헌 마음, 저 중의 급헌 마음 굴갓 장삼 훨훨 벗어 되는 대로 내던지고, 행전 다님 끄르고, 버선을 얼른 벗고, 고두누비 바지가래 따달딸 딸딸, 따달딸 딸딸 걷어 자개미 떡 붙치고, 소매를 훨훨 걷고, 물논에 백로격으로 징검 징검 징검거리고 들어가, 심봉사 꼬드래상투를 에후리쳐 담쑥 안고, 에뚜루미쳐

(아니리)
건져놓고 살펴보니, 전에 보던 심봉사라. 심봉사 정신차려, “거 뉘가 날 살렸소? 날 살린 게 뉘기요?” “예. 소승은 몽은사 화주승이옵더니, 시주집 나려왔다가 절을 찾어가다가 다행히 봉사님을 구원허였나이다.” “그렇지! 활인지불이라더니, 죽을 사람 살려주니 은혜 백골난망이로구만.” “그것을 무슨 은혜라고야 허오리까마는, 아 그, 소승이 아니었드면 참 큰일 날 뻔허였습니다.” “큰일나다니? 물 한 모금만 더 먹었으먼 나는 오늘 그냥 갔지, 갔어!” 심봉사 쪄붙들고 집으로 돌아와 젖은 의복 갈아 입힌 후에, 물에 빠진 사연을 물으니 낱낱이 말을 허거늘, “가긍헌 말씀이오. 심봉사 형편이 웬만만허시면 그 참 좋은 수가 있소마는.” “좋은 수면 무슨 술꼬?” “우리 절 부처님이 영험이 많으시사 빌면 아니 되는 일이 없고, 고하면 응하오니, 공양미 삼백 석만 불전에 시주허시면 삼 년 내로 눈을 꼭 뜰 수 있으시리다마는!” 심봉사 이 말을 듣고 어찌 마음이 기쁘던지, 후사는 생각지 않고 대번에 일을 저지르는디, “여보소, 대사! 정녕코 그럴진대 공양미 삼백 석을 권선에 적어 가소, 적어 가!” 저 중이 어이없어, “봉사님! 아, 가세를 생각허면 삼백 석은 고사허고, 서 홉 곡식이 없는 이가 아, 어쩔라고 그러십니까?” 심봉사 홰를 벌컥 내어, “무엇이 어쩌? 너 이녀르저석! 네가 사람을 업수이여겨도 분수가 있지, 네가 내 속을 어찌 알고 허는 말이냐, 이저석! 삼백 석 적으라니깨, 제 손수 뚝 떨어져서 서 홉 곡석이 어쩌? 잔소리 말고 적어 가! 어떤 놈이 부처님전 헌사를 헐까!” “예. 그럼 적겠습니다. 그러면 내월 십오일 내로 삼백 석을 올리셔야 헙니다.” “그럴 터니 염려 말소!” “봉사님! 박절헌 말씀 같사오나, 부처님전 허언을 하면은 눈 뜨시는 건 고사허고, 도리어 앉은뱅이가 될 터이오니 부디 명심하십시오.” “여보게! 불가 오계 중에 거짓말이 제일 큰 죄인 줄 내 번연히 아는디, 내가 일구이언허까! 걱정 마소, 걱정 말어!” 중은 권선책에 기재허고 올라갔것다. 심봉사 중을 보내놓고 혼자 앉어 곰곰 생각터니, “이놈이 환장헌 놈이 아닌가, 여! 이놈이 어쩔라고 이렇게 미쳐! 쌀 삼백 석! 쌀 삼백 석?”
(중략)
(진양조)
눈 어둔 백발부친 영별허고 죽을 일과 사람이 세상에 나 십오세으 죽을 일이 정신이 막막허여 눈물로 지내더니, “아서라, 이게 웬 일이냐? 내가 하로라도 살았을 적 부친 의복을 지으리라.” 춘추 의복 상침 겹것을 박어 지어 농에 넣고, 동절 의복 솜을 두어 보에 싸서 농에 넣고, 헌 겹것 두덕누비 가지가지 빨어 집고, 헌 보신 볼을 받어 단님 접어 목 매 두고, 헌 전대 구녁 막어 동냥헐 때 쓰시라고 실겅 우에 얹어 놓고, 갓 망건 다시 꾸며 쓰기 쉽게 걸어놓고, 행선날을 생각허니, 내일이 행선날이로고나. 달 밝은 깊은 밤으 메 한 그릇 정히 짓고, 헌주를 병에 넣고, 나무새 한 접시로 배석 얹어 받쳐 들고, 모친 분묘 찾아가서 계하에 진설허고, 분향사배 우는 말이, “아이고, 어머니! 어머니! 불효여식 청이는 부친의 원한 풀어드릴랴고, 남경 장사 선인들께 몸이 팔려 내일 죽으러 떠나오니, 망종 흠향허옵소서.”

(자진모리)
사배 하직헌 연후에 집으로 돌아오니, 부친은 잠이 들어 아무런 줄 모르는구나. 사당에 하직차로 후원으로 돌아가서, 사당문을 가만히 열고 통곡 사배 우는 말이, “선대조 할아버지, 선대조 할머니! 불효여손은 오늘부터 선영 향화를 끊게 되니 불승영모허옵니다.” 사당문 가만히 닫고 방으로 들어와서, 부친의 잠을 깰까 크게 울 수 바이없어 속으로 느껴 울며, “아이고, 아버지! 절 볼 밤이 몇 밤이며, 절 볼 날이 몇 날이오? 제가 철을 안 연후으 밥 빌기를 놓았더니, 이제는 하릴없이 동네 걸인이 될 것이니, 눈친들 오직하며, 멸시인들 오직허오리까. 하이고, 이를 어쩔끄나! 몹쓸년의 팔자로다.”

 (중모리)
“형양낙일수운기는 소통천의 모자 이별, 편삽수유소일인은 용산의 형제 이별, 서출양관무고인은 위성의 붕우 이별, 정객관산로기중의 오희월녀 부부 이별, 이런 이별 많건마는, 살어 당헌 이별이라 소식 들을 날이 있고, 상봉헐 날 있건마는, 우리 부녀 이별이야 어느 때나 상면허리. 오늘밤 오경시를 함지에 머무르고, 명조에 돋는 해를 부상에다 맬 양이면, 가련허신 우리 부친 좀 더 모셔 보련마는 인력을 어이 허리.” 천지가 사정없어 이윽고 닭이 ‘꼬끼요!’ “닭아, 닭아 닭아, 우지를 마라. 반야 진관의 맹상군이 아니로다.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는 섧잖으나, 의지 없는 우리 부친 어이 잊고 가잔 말이냐?”

(아니리)
이렇듯 설리 울 제 동방은 점점 밝아오는디, 이날인즉 행선날이라, 발써 선인들은 문전에 당도하여 길때를 재촉허니, 심청이 가만히 나가 선인들께 허는 말이, “오늘 응당 갈 줄 아오나, 부친을 속였으니, 부친의 조반이나 망종 지어드리고 떠나면 어떠하오리까?” 선인들이 허락커늘, 심청이 들어와 눈물 섞어 밥을 지어 상을 들고 들어오며, “아버지! 진지 잡수세요!” 심봉사 일어나며, “허, 아이구, 야야! 오늘 아침 밥은 어떻게 이리 일찍 했냐? 아, 그런디 거 참 꿈도 이상허다.” “무슨 꿈을 꾸셨는데요?” “간밤에 내가 꿈을 꾸니, 네가 큰 수레를 타고, 아, 어디로 한없이 가더구나. 그래 내가 너를 붙들고 뛰고, 울고, 궁굴고 야단허다가, 꿈을 깨가지고 내 손수 해몽했지야. 수레라허는 것은 귀헌 사람이 타는 것이라, 아무래도 오늘 승상댁에서 너를 가마 태워 갈 꿈인가부다.” 심청이 더욱 기가맥혀 아무 말 못허고 진지상 물려내고, 담배 붙여 올린 후에 문을 열고 나서보니, 선인들이 늘어서서 물때가 늦어간다 재촉이 성화같은지라. 아무리 생각허여도 부친을 영영 속일 수는 없는지라,

(자진모리)
닫은 방문 펄쩍 열고 부친 앞으로 우루루루루루루. 부친의 목을 안고, “아이고, 아버지!” 한 번을 부르더니, 그 자리에 엎드려져서 말 못허고 기절헌다. 심봉사 깜짝 놀래, “아이고, 이게 웬 일이냐? 악아, 이게 웬 일이여? 어허, 여 아침 반찬이 좀 좋더니 뭣 먹고 체했느냐? 체헌 디는 소금이 좋느니라. 소금 한 주먹 먹어 봐라. 악아, 악아. 아니 이것 기절허였는가? 악아. 아니, 어느 놈이 봉사 딸이라고 정개허드냐? 에이? 이거 어쩐 일이여? 아이고, 갑갑허다, 말허여라!” 심청이 정신 차려, “아이고, 아버지! 천하 몹쓸 불효여식은 아버지를 속였내다.”

(아니리)
심봉사 듣더니, “원, 이 자식아. 아, 네가 나를 속였든들, 효성 있는 네 마음에 뭘 그렇게 큰 일을 속였을리라고, 아, 이렇게 애비를 깜짝 놀래게 헌단 말이냐? 네 뭘 어쨌단 말이냐?” “하이고, 아버지! 공양미 삼백 석이 어디 있어 바치리까? 남경 장사 선인들께 제수로 몸이 팔려, 오늘이 행선날이오니 저를 망종 보옵소서!” 심봉사가 천만 의외 이런 눈 빠질 말을 들어노니, 정신이 아득허여 한참 말을 못허다가 실성발광 미치는디, “아니, 무엇이 어째야? 이것이 다 말이라고 허느냐? 허허!”

(중중모리)
“허허, 이게 웬 말이냐? 아이고, 이것이 웬 말이여! 여봐라, 청아! 네가 이것이 참말이냐? 애비다려 묻도 않고 네가 이게 웬 일이냐? 이 자식아! 자식이 죽으면은 보든 눈도 먼다는디, 멀었던 눈을 다시 떠야? 나 눈 안 뜰란다! 철 모르는 이 자식아, 애비 설음을 네 들어라. 너희 모친 너를 낳고 칠일 안의 죽은 후에, 눈 어두운 늙은 애비가 품안에다 너를 안고 이집저집 다니면서 동냥젖 얻어먹여 이만큼이나 장성키로, 너희 모친 죽은 설음을 널로 하여 잊었더니, 네가 이것이 웬 일이냐? 못허지야! 눈을 팔아 너를 살디, 너를 팔아서 눈을 뜬들 무얼 보랴 눈을 떠야? 나 눈 안 뜰란다!” 이 때여 선인들은 물때가 늦어간다 성화같이 재촉허니, 심봉사 이 말 듣고 밖으로 우루루루루루, 엎더지며 자빠지며 것둥거려 나가면서, “네 이 무지한 선인놈들아! 장사도 좋거니와 사람 사다 제하는 것 어디서 보았느냐? 눈먼 놈의 무남독녀 철 모르는 어린것을, 날 모르게 유인하여 값을 주고 샀단 말이냐? 돈도 쌀도 내사 싫고, 눈 뜨기도 나는 싫다. 네 이놈, 상놈들아! 옛 일을 모르느냐? 칠년대한 가물 적으 사람 죽여 빌랴허니, 탕임군 어진 말씀 ‘내가 지금 비는 배는 사람을 위험이라. 사람 죽여 빌 양이면 내 몸으로 대신허리라.’ 몸으로 희생되어 전조단발 신영백모 상림뜰 빌었더니, 대우방수천리으 풍년이 들었단다. 차라리 내가 대신 가마! 동네 방장 사람들, 저런 놈들을 그저 둬?” 내리둥굴 치둥굴며, 가삼을 쾅쾅 치고, 머리 지끈 부듲치며 죽기로 작정허니, 심청이 기가맥혀 우는 부친 부여안고, “하이고, 아버지! 지중헌 부녀천륜 끊고 싶어 끊사오며, 죽고 싶어 죽사리까? 저는 이무 죽거니와 아버지는 눈을 떠 대명천지 다 보시고, 착실헌 계모님 구하여 아들 낳고, 딸을 낳어 후사를 전케 허옵소서.”
(중략)
(중모리)
오색 채운이 벽공에 어리더니, 요량헌 선악 소리 수궁이 낭자하며, 우편에 단계화요, 좌편에 벽도화라. 청학 백학 옹위허고, 공작은 춤을 추며, 앵무로 전어하여 천상선녀 앞을 서고, 용궁선녀 뒤를 따러 엄숙히 오는 거동 보든 바 처음이라. 심청을 반겨 보시고, 와락 뛰어 달려들어 심청을 부여안고, “악아, 청아! 네가 나를 모르리라. 내가 너의 어미로다. 나도 본시 선녀로서 적하인간 수십 년의 너를 낳고 죽은 후으, 광한전 후토부인으로 상제의 명을 모아 오늘까지 지내더니, 내 딸 지극한 효성, 부친의 눈 뜨시기 위하여 이 수궁에 왔다기로 모녀상봉허쟀더니, 오늘 예서 보겄구나.” “아이고. 어머니! 어머니는 세상에서 쓰지 못할 저를 낳고 그 길로 상사 나서, 근근한 소녀 몸이 부친 덕에 아니 죽고 이만큼 자랐으나, 모친도 못 뵌 것이 철천지한이옵더니, 오늘 예서 모시오니 저는 한이 없사오나, 외로우신 아버님은 뉘게 의지허오리까.”

(중모리)
옥진부인이 이 말 듣고, “기특허구나, 내 딸이야. 이슬같은 네 목숨이 동냥젖 얻어 먹고 이만큼 자랄 적으, 앞 못 보신 너희 부친 고생 오즉 허셨으랴. 세상에서 못 먹은 젖 오늘 많이 먹고 가거라.” “어머님이 가신 길은 머나먼 황천이요, 소녀가 죽어 온 곳은 깊고깊은 수궁이오라, 황천 수궁이 달렀삽기 모친도 못 뵐 줄로 주야장천 한이옵더니, 어머님 덕택으로 예 와서 모셨으니, 부친 이별은 허였사오나 모친 따러가겠내다.” “애정은 그러허나, 내 딸 지극 효성 명천이 감동허사 환송인간 헐 것이니, 세상을 나가거든, 너희 부친 뵈옵는 날 날 본 말을 올린 후으, 전생에 미진한을 후생에 만나자고 세세히 아뢰어라. 유명이 다른 고로 사세가 부득하여 나는 올라간다마는, 내 딸 너도 부디 잘 가거라.” 눈물지며 이별헐 제, 문득 채운이 두르더니 공중으로 행허신다.

(중략)

(진양조)
일일은 황제께서 심신이 산란허시고, 잠을 이룰 길이 없어 화계에 배회터니, 명월은 만정허고, 미풍이 부동헌디, 강선화 꽃봉이가 완연히 요동허며, 사람소리가 두런두런. 천자님이 고이 여겨 동정을 살펴보시니, 뚜렷한 선인옥녀 꽃봉을 반만 열고 얼굴을 들어 엿보다가, 인적 있음을 짐작허고 경각에 몸을 움쳐 꽃봉을 닫더니마는, 다시는 동정이 없는지라.

(아니리)
황제 보시고 심신이 황홀하여 무한히 주저하시다, 가까이 들어가서 꽃봉을 열고 보시니 일위 소저와 양개 시녀라. “너희가 귀신인다, 사람인다?” 시녀등 내려와 복지하여 여짜오되,

(중모리)
“남해 용궁 시비로서 낭자를 모시옵고 해상에 나왔다가 황극전에 범했사오니 극히 황송허여이다.” 천자님 내념에 옥황상제께서 좋은 인연을 보내심이라. 시녀등을 명하사, “내궐에 옮겨 두고 모든 궁녀로 시위허되, 만일 꽃봉을 열고 보면 죽기를 면치 못허리라.” 날이 밝어 다시 보시니 낭자 부끄러워 아미를 숙이고 앉았거늘, 보고 다시 살펴보시니, 만고의 처음 보는 짝이 없는 일색이라. 황제 더욱 기뻐허사, 조회를 파허신 후 제신에게 의논헌즉, 제신이 복지주왈, “국모 없으심을 상제께서 알으시고 좋은 인연을 보냈사오니, 종사의 주부시요, 조정의 모후시라, 응천순민허옵시와 가례를 행케 허옵소서.”
(중략)
(중모리)
“주나라 때 태임 태사 이남덕화 장허시고, 우리 나라 선대 황후 여중요순 송덕이오나, 신첩은 무슨 덕으로 만민국모 되었는지 부끄러운 주야 근심 천려일득허였사오나, 아뢰옵기 황송하와 섭유불발허옵더니, 하교가 계시오니 감히 주달허옵니다. 주 문왕은 첫 정사가 노자 안무허시옵고, 한 무제는 방춘화시 가긍헌 환과고독 사궁을 진휼허셨으니, 백성 중에 불쌍헌 게 나이 많은 병신이요, 병신 중에 불쌍헌 게 앞 못 보는 맹인이라 공부자도 일렀으니, 천하 맹인 다 모아서 주효를 먹인 후으, 그 중에 유식 맹인은 좌우에 모시어서 성경을 읽게 허시고, 늙고 병든 맹인이며 자식도 없는 맹인들은 황성에다 집을 주어, 한 데 모다 모아 두고, 요를 주어 먹이오면, 무고한 그 목숨이 전학지환 면헐 테요, 덕화만방 미칠 테니 깊이 통촉을 허옵소서.” 황제 듣고 기뻐허사, “장허도다, 국모 말씀. 과인이 생각 못헌 바를 황후가 도우시니 만복의 근원이라. 소회대로 허오리다.”
(아니리)
이렇듯 황후를 칭찬허시고, 이튿날 즉시 하교허사, “천하에 있는 맹인 궐내에서 백일잔치를 허되, 방방곡곡 지시문에 국경연으로 기송하라.” 이렇듯 어명이 나리시니, 각 성으로 차사들을 보내는디,

(중략)
(아니리)
이렇듯 방아 찧고, 밥 얻어먹고, 사랑방에서 편히 잘 자고, 아침밥까지 얻어먹고 또 황성을 올라가는디, 또 석양을 당도하여 한 모롱이 돌아드니, 어떠한 여인인지, “저기 가시는 게 심봉사시오?” “거 뉘기오? 아, 그 이 근방서 나를 알 만헌 사람이 없는디, 괴이헌 일이로다.” “심봉사시먼 이리 좀 오십시오.” 여인을 따러가니, 집안으로 들어가 외당에 앉히고 저녁을 잘 대접헌 연후에, 여인이 다시 나와, “봉사님, 내당으로 들어가십시다.” 심봉사 듣더니, “아니, 여보시오. 내당으로 들어가다니? 거 이 댁 주인 유무는 모르지마는, 거 이댁에 혹시 무슨 우환 있소? 나는 봉사만 되었지, 점도 못 치고, 독경도 못 허요.” “아니오. 그런 염려 말으시고 나를 따러가옵시다.” 심봉사 마지못해 따러가며, “이것 암만해도 내가 여, 보쌈 당하는 것 아니라고, 여? 어찌 여, 위태위태허다.”

(자진모리)
내당으로 들어가니, 내당에 어떤 부인 시비를 부르더니 좌를 주어 앉힌 후에, 그 부인 허는 말이, “당신이 분명 심봉사시지오?” “어찌 그렇게 아십니까?” “아는 도리가 있답니다. 내 성은 안가옵고, 십 세 전 안맹허여 점치는 법을 대강 배웠삽기, 삼십오 세 금년이라야 방년인 줄 내 이무 알었으나, 간밤의 꿈을 꾸니, 일월이 떨어져서 물에 가 잠긴 것을 첩이 선뜻 건져내어 품에다 안었으니, 천상의 일월이란 사람의 안목이라, 내의 배필 날과 같은 맹인인 줄 알었으며, 물에 가 잠겼기로 심씨인 줄 짐작하와 당돌히 청했사오니, 첩이 비록 용렬하오나, 버리지 않으시면 평생 한이 없겄내다.”

(아니리)
심봉사 듣고 어떻게 좋던지 속으로 두부자루 터지는 웃음을 한 번 웃더니마는, “흐, 말이사 좋은 말이지마는, 그 그렇게 되기가 쉬우까 몰라?” 그날밤 심봉사와 안씨맹인과 동방화촉에 호접몽을 꾸었것다. 모든 근심 다 잊어뻐리고 잠시라도 즐기더니, 그날밤 몽사가 괴이헌지라. 이튿날 일어 앉어 심봉사 걱정수심으로 한숨쉬고 앉었거늘, 안씨부인 묻는 말이, “우리가 백년가약을 맺인 후 첩은 평생 소원을 이뤘는가 허옵는디, 무슨 걱정이 있으신지, 첩이 도리어 불안허오이다.”

(중략)
(아니리)
이렇듯 애통허실 적으, 이날도 대궐문을 활짝 열어제쳐 놓고 각 영문 군졸들은 봉사들을 인도허고, 내관은 지필 들고 오는 소경 거주 성명이며, 연세 직업 자녀유무와 가세빈부 유무식을 일일이 기록허여 황후전에 올렸것다. 황후 낱낱이 받아보실 적으,

(자진모리)
각기 직업이 다르구나. 경을 읽어 사는 봉사, 신수 재수 혼인궁합 사주 해몽 실물 심인 점을 쳐 사는 봉사, 계집으게 얻어먹고 내주장으로 사는 봉사. 무남독녀 외딸에게 의지허고 사는 봉사, 아들이 효성 있어 혼정신정 편한 봉사, 집집이 개 짖키고 걸식으로 사는 봉사, 목만 쉬지 않는다면 대목장에는 수가 난다 풍각쟁이로 사는 봉사. 아들이 앉은뱅이라 지가 벌어다 멕이는 봉사. 그 중에 어떤 봉사 도화동 심학균디, 연세는 육십오세, 직업은 밥만 먹고 다만 잠자는 것뿐이요, 아들은 못 낳아 보고 딸만 하나 낳었다가 제수로 팔어먹고, 출천대효 딸자식이 마지막 떠날 적에 앞 못 보신 늙은 부친 말년 신세 의탁허라고 주고 간 전곡으로 가세는 유여터니, 뺑덕이네란 계집년이 모두 다 털어먹고, 유무식 기록에는 이십 안맹허였기로 사서삼경 다 읽었다 뚜렷이 기록이 되었구나.

(아니리)
심황후 낱낱이 읽어가실 적으 오죽이나 반가웠으며, 그 얼마나 기뻤으리오마는, 그러나 흔적 아니허시고 내관 불러 분부허시되, 맹인 성책 내어주시며, “이 중에 심맹인이 계시거든 이 별궁으로 모시어라.” 내관이 영을 듣고 나가, “심맹인! 심학규씨 있으면 이리 나오시오! 심맹인!” 심봉사 듣더니, “심맹인이고 무엇이고 배 고파 죽겄구만! 술이나 있으먼 한 잔 주제.” “아, 술도 주고, 밥도 주고, 떡도 주고, 집도 주고, 돈도 주고 헐 터이니 이리 나오시오.” “거 실없이 여러 가지 것 준다. 근디 어찌서 꼭 해필 날만 찾으시오?” “상을 줄지, 벌을 줄지는 모르지마는, 우에서 심맹인을 모셔오라 허셨으니, 어서 들어가십시다.” 심봉사 듣더니, “상을 줄지, 벌을 줄지? 놈 용케 죽을 데 잘 찾어왔다. 내가 딸 팔어먹은 죄가 있는디, 이 잔치를 배설키는 날 잡어 죽일라고 배설헌 것이로구나. 에라! 내가 더 살어 무엇허리! 갑시다.” 주렴 밖에 당도허여, “심맹인 대령이오!” 황후 자서히 살펴보시니, 백수풍신 늙은 형용 슬픈 근심 가득찬 게 분명한 부친이라. 황후께서 체중허시고, 아무리 진중허신들 부녀천륜을 어찌허리!

(자진모리)
심황후 거동 보아라. 산호 주렴을 걷혀버리고 우루루루루루루루루루. 우루루루 달려나와, 부친의 목을 안고, “아이고, 아버지!” 한 번을 부르더니 다시는 말 못허는구나. 심봉사 부지불각 이 말을 들어노니, 황후인지, 궁녀인지, 굿 보는 사람인지 누군 줄 모른지라. 먼 눈을 희번쩍 희번쩍 번쩍거리며, “에이? 아버지라니? 아니, 누가 날다려 아버지래여? 나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소. 무남독녀 외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 지가 우금 수삼년이 되었는디, 누가 달다려 아버지래여?” 황후 옥루 만면하여,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인당수 빠져 죽은 불효여식 청이가 살어서 여기 왔소.” 심봉사 이 말 듣고, “에이? 이게 웬 소리? 이것이 웬 말이여? 심청이라니? 죽어서 혼이 왔느냐? 내가 죽어 수궁을 들어왔느냐? 내가 지금 꿈을 꾸느냐? 이것이 웬 말이여? 죽고 없는 내 딸 심청, 여기가 어디라고 살어오다니 웬 말이냐? 내 딸이먼 어디 보자. 아이고 이놈의 눈이 있어야 보제. 아이고 답답허여라. 이런 놈의 팔자 좀 보소. 죽었든 딸자식이 살어서 왔다해도 눈 없어 내 못 보니, 이런 놈의 팔자가 어디가 또 있느냐?” 이 때의 용궁 시녀 용왕의 분부인지, 심봉사 어둔 눈에다 무슨 약을 뿌렸구나. 뜻밖에 청학 백학이 황극전에 왕래허며 오색채운이 두르더니, 심봉사 눈을 뜨는디, “아이고, 요 어찌 눈갓이 이렇게 근질 근질 근질 근질허고 섬섬섬섬허냐? 웟다, 이놈의 눈 좀 떠서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이놈의 눈 좀 떠서 내 딸 좀 보자 아!”

(아니리)
“아니, 여기가 어디여? 심봉사 눈 뜨는 바람에 천하에 있는 맹인과 각처 맹인들이 모도 눈을 뜨는디, 심봉사는 약이나 뿌려 눈을 떴지마는, 다른 봉사는 어떻게 눈을 떴는고 허니, 이 약은 용궁 조화가 붙은 약이라, 약 기운이 별전에서 쫙 퍼지더니, 방방곡곡으로 꼭 맹인 있는 곳만 찾아다니면서 모다 눈을 띄이는디,

(자진모리)
만좌 맹인이 눈을 뜬다. 만좌 맹인이 눈을 뜰 제, 전라도 순창 담양 세갈모 띄는 소리라. 짝 짝 짝짝허더니마는 일시에 모다 눈을 뜨는디, 석달열흘 큰 잔치에 먼저 와서 참례허고 내려간 맹인들은 저희 집에서 눈을 뜨고, 병들어 사경되야 부득이 못 온 맹인들도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 못헌 맹인도 노중에 눈을 뜨고, 천하 맹인이 일시에 눈을 뜨는디,

(휘모리)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서서 뜨고, 앉어 뜨고, 실없이 뜨고, 어이없이 뜨고, 홰내다가 뜨고, 성내다가 뜨고, 울다 뜨고, 웃다 뜨고, 힘써 뜨고, 애써 뜨고, 떠보느라고 뜨고, 시원히 뜨고, 일허다가 뜨고, 앉어 놀다 뜨고, 자다 깨다 뜨고, 졸다 번뜻 뜨고, 눈을 끔적거려보다가도 뜨고, 눈을 부벼보다가도 뜨고, 지어비금주수라도 눈먼 짐승은 일시에 눈을 떠서 광명 천지가 되었는디, 그 뒤부터는 심청가 이 대문 허는 소리만 들어보아도 명씨 백여 백태 끼고, 다래끼 석 서는 디, 핏대 서고, 눈꼽 낀 데, 원시 근시 궂인 눈도 모도 다 시원허게 낫는다고 허드라.

출처 : 장문희 명창 팬카페
글쓴이 : 산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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